정부의 대북 ‘현금차단’ 조치가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천안함 대응조치로 정부는 대북 현금차단을 위한 남북교역 축소와 무기 수출을 막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훈련에 참여하는 것을 비롯해 미국, 일본과의 공조로 다각적인 ‘현금차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대북 현금차단이 북한의 핵무기 등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을 막는 데 강력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 미국도 북한의 불법 위폐, 마약, 위조 담배 거래 등을 주시하면서 제재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살상무기 부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현금 차단이 무기 개발을 막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또한 식량, 연료 등은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현금을 차단하면 김정일 정권에 직접적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일 정권이 외화획득을 위해 노동당 산하 ’39호실’을 설치하고 1970년대 말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슈퍼노트(100달러 위폐) 제작, 담배 위조, 마약 등을 거래해온 만큼, 이를 통제하면 보다 강력한 현금 차단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한미 양국의 판단이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천안함 책임을 묻기 위한 비군사적 조치로 북한으로 유입되는 현금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미국은 기존 제재장치를 엄격히 적용하는 한편, 북한의 위폐, 마약, 담배 거래 등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 장관은 이어 “미국은 이미 북한의 무역, 금융, 무기거래 등을 제재할 체계를 거미줄처럼 갖추고 있다”며 “현재 이를 100% 가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적용 강도를 높여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한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돈이 연간 3억∼3억 5000만 달러로 가장 크며, 일본도 조총련의 송금을 제한하기 위해 1회 송금 한도액을 1000만 엔에서 300만 엔으로 제한했다”면서 “한일의 현금 차단조치로도 강력한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 현금차단 조치와 별도로 진행 중인 안보리 대응조치도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응 수위는 제재결의안보다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일반 결의안쪽으로 기울고 있다. 중국의 태도에 따라 의장성명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유엔결의안 1874호와 1718호 제재조치가 취해져 있는 상황이지만 북한의 대남도발에도 유엔의 경고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현실적으로 이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추가적인 대북 제재안을 도출하기 어렵다”면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압박하는 조치는 한미일이 담당하고, 국제사회의 상징적인 경고를 담은 일반결의안도 북한에 상당한 압박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외교통상부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천영우 제2차관이 미국을 방문해 안보리 회부에 앞서 유엔과 상임이사국 관계자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러시아를 방문해 최종 설득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위 본부장은 2일 러시아 출국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미중일과는 이미 충분한 협의가 있었고 지금은 러시아와 협의가 필요할 때”라며 “당면한 현안이 천안함 문제이기 때문에 천안함에 초점을 맞춰 안보리에서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 본부장은 오는 3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을 만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문제를 비롯한 천안함 사건의 향후 대응방안을 협의한다.
그는 특히 북한에 안보리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안보리 회부에 앞서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러시아 전문가들이 천안함 조사 결과를 검토하러 방한했지만 여전히 확실한 입장 보이지 않고 있어 막판까지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외교소식통들의 지적이다.
방미 중인 천 차관은 1일(현지시간) “안보리 조치는 정치적, 상징적, 도덕적 메시지가 될 것”이라며 “안보리 추가 제재에 대해 아직 논의하는 것이 없지만 안보리 조치가 꼭 새로운 제재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천 차관은 안보리 결의안 수위와 관련 “방식과 실질적인 내용을 합쳐서 종합적인 부가가치를 갖고 판단해야 한다”며 “안보리가 결정할 내용이 무엇이냐가 현재로서는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느 정도 관련국들과의 협의가 마무리 되면 정부는 금주 중 유엔안보리에 공식 회부할 방침이다. 천 차관이 워싱턴에서 미국과의 최종 조율을 거친 2일 밤 유엔 본부가 위치한 뉴욕으로 이동해 안보리 회부 준비 작업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천 차관의 방미일정과 위 본부장의 방러일정이 모두 마무리되는 시점인 4일을 전후로 유엔안보리에 정식 회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발송하는 형식으로 회부절차에 돌입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