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포용정책 이끈 李통일의 초라한 퇴장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사의를 표명, 장관직을 떠나 학계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를 공식 표명했고, 이에 노무현 대통령도 수용할 뜻을 밝혔다. 이로써 이 장관은 취임 9개월 만에 통일부 장관자리를 내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2003년 초 참여정부 인수위원회에 참여할 때까지만 해도 진보적 성향의 소장학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노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해 3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기용되면서 공직생활에 입문, 통일부 장관에 이르렀다.

노 정권의 대북정책 브레인으로 불리던 그의 공직생활은 외롭고 험난했다. ‘적(敵)’이 많기로 소문난 이 장관은 보수진영에게는 ‘친북좌파’로, 진보진영에게는 ‘독주한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자주파의 선봉’ ‘탈레반’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NSC 사무차장 시절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미 고위관리로부터 “탈레반인 줄 알았는데 두건을 안썼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특히 올해 초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한달여 동안 쉼없이 쏟아져 나온 이 장관에 대한 공격은 야당은 물론 여당에도 그의 반대세력이 상당히 존재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줬다.

야당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았던 이념논란과 함께 청와대와 여당 내의 공격도 그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장관을 어렵게 한 것은 장관 취임 후 성과 없이 이어지는 남북관계였다. 일 중독자라 불릴 만큼 성실하다고 알려진 그였지만 남북관계를 성과적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비판을 빈번히 들어야 했다.

4월과 7월 두 차례 열렸던 남북장관급 회담은 오히려 남북관계에서 뒷걸음질쳤다는 지적이 나왔고, 5월에는 경의선·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을 북한측이 일방적으로 연기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경공업 원자재 제공 등의 대북지원으로 성급히 해결하는 등 국민 요구에 반해 대북 포용정책 기조를 고수해온 것도 그에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7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지난 9일에는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이 장관은 벼랑 끝으로 몰렸다. 핵실험 이후 이어지는 포용정책 비판 목소리는 견디기 어려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핵실험 이후에도 여론과 국제사회 태도변화를 읽지 못하고 끝까지 대북 표용정책을 고집했다. 그것은 노 대통령과 함께 쌓아온 정치적 결과물이기도 했다.

결국 이 장관은 노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의 빛깔과 방향을 상징하는 ‘아이콘’임에도 불구하고 장관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그는 다시 학자의 길로 돌아가 북한전문가로서의 연구에 몰두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실패와 전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통일부 장관으로서 대북정책 수행과정에서 큰 과오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대북포용정책이 거둔 성과들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해 여전히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감쌌다.

정권 출범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던 이 장관의 공직생활은 북한 핵실험과 함께 초라하게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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