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쌀 지원방침 배경과 전망

정부가 10일 북한에 쌀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인도적 지원이기는 하지만 이를 계기로 남북 당국이 대화를 재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꽉 막혀 있는 한반도 정세를 진전시키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지 주시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앞으로 지원책이 구체화되면서 지원규모가 사회통념을 넘어설 경우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여론이 뒷받침한 지원 결정 = 정부가 미사일 발사로 냉랭해진 남북관계 속에서도 쌀 지원을 결정하게 된 것은 북한의 수해 상황이 속속 전해지면서 시민단체나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 인도적 식량 지원을 촉구하면서 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 안팎에서 북한 수해 지원을 통해 지난 달 13일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 이후 경색 일로를 걸어왔던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풀어보겠다는 기류는 있었지만 정부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사일 발사에 따라 지극히 인도적인 사안인 대북 쌀 차관 50만t 제공과 비료 10만t의 추가 지원을 동결시켜놓은 상황에서 직접 나서서 쌀 얘기를 꺼냈다가는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측 지역에서도 같은 시기에 내린 비로 엄청난 액수의 수해 피해와 이재민들이 발생했다는 점은 정부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측 복구작업은 속도를 내며 안정을 되찾아가는 반면 북한의 경우 피해 규모가 속속 알려지면서 그 심각성을 더해 상황은 달라졌다.

이와 관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지난 7일 사상자가 4천명에 육박한다며 피해상황을 소개한 것도 일조했다.

북한이 조선신보를 통해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시민단체와 대북지원단체의 지원 목소리가 잇따르고 정치권에서도 식량도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정부는 그동안의 ‘눈치작전’을 끝내고 8일부터 민간단체의 의견 수렴에 이어 10일 한적을 통해 쌀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북 지원단체에 매칭펀드 방식으로 남북협력기금 투입하고 한적을 통해서는 쌀과 복구장비를 중점 지원하는 ‘투 트랙’ 접근법을 취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대북 지원단체가 분위기를 조성하는 ‘개미군단’에 가깝다면 한적은 덩치가 큰 ‘기관투자가’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 규모의 차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 지원규모 수만 t 될 듯 = 향후 지원과정에서 최대 관심사는 지원규모다.

정부는 우선 북한의 피해 상황을 파악한 뒤 규모를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농작물 피해규모를 놓고 많게는 세계식량계획(WFP)이 추정한 10만t에서, 적게는 3만2천t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 듯하다.

침수경지가 1만6천194정보(ha), 매몰경지가 4천250정보, 유실경지가 3천530정보라는 조선신보 보도에 근거해 피해규모가 5만t 안팎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매몰되거나 유실된 7천780정보에서 3만t 가량의 생산이 불가능해지고 침수 경지에서 30% 가량 수확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할 경우 2만t 안팎의 감소분이 생길 것이라는 계산이다.

정부는 우선 6.15공동선언실천 남.북위원회가 11일 금강산에서 만나는 자리에서 농작물 피해상황과 이에 따라 북한이 긴급하게 필요한 곡물 부족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한적이 적십자 채널을 통해 북측에 지원 용의를 전달한 뒤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지원 규모 산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쌀의 규모가 많다고 느껴질 경우 국내 안팎에서 논란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미사일 문제의 출구가 보일 때까지로 제공 시기를 유보한 대북 쌀 차관을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는 관측에 근거하고 있다.

특히 이번 지원은 이재민을 위한 ‘긴급 구호’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도 규모가 많아질 경우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5당이 10일 원내대표 회담을 갖고 대북 수해복구 지원을 촉구하면서 필요할 경우 추경예산 편성에도 동의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현재 남북협력기금에도 잔고가 많은 상황에서 추경 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은 대북 지원 규모가 예상보다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완상(韓完相) 한적 총재도 이날 지원 규모에 대해 “상징적인 규모가 아니다”고 말해 상당한 규모가 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쌀 뿐만 아니라 복구장비까지 감안한 발언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쌀의 규모를 예단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한 총재와 이종석(李鍾奭) 통일부 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모호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수해복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규모”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 만t 가량이 적정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는 1995년 북한의 자연재해가 극심했을 때 우리측이 처음 쌀을 지원하면서 15만t을 북송한 사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피해가 1995년보다는 적고 5천t이 지원된 2004년 룡천역 폭발사고 때보다는 크다는 점, 양이 많을 경우 외견상 쌀 차관과 오버랩될 가능성 등을 감안한 결과이다.

아울러 북측의 농작물 피해 규모가 10만t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수만 t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해 준다.

애초 우리 정부가 북측이 올해 요청한 쌀 차관 50만t 가운데 차관으로 45만t을 제공하고 나머지 5만t의 경우 국제기구를 통해 무상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점으로 미뤄 5만t 안팎이 될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관계 복원 씨앗 될까 = 북한이 지난 달 장관급회담 이후 이산가족상봉을 중단하고 금강산이산가족 면회소 공사를 멈춰세운 이유가 우리측의 쌀 차관 제공 유보조치 때문이라는 점은 이번 지원을 계기로 북측이 앙금을 털어낼 가능성을 엿보게 해 준다.

더욱이 이번 지원이 한적을 통한 것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상당 부분의 비용을 부담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직접 지원에 가깝다는 점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정부로서도 내심 이번 수해 복구 지원이 남북 당국 간 대화 재개로 이어져 미사일 발사 이후 긴장된 한반도 정세를 푸는 촉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실제 그동안 북측이 압박 국면에서는 대화에 나오지 않다가 긴장 구도가 조금씩 풀릴 무렵 회담 복귀 결단을 내린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도 이런 기대의 배경이 되고 있다.

한완상 총재도 이날 남북관계 전망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며 남북 간에 소통이 점차 이뤄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인도적 지원이 끊어진 대화의 맥을 이어줄 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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