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수해지원, 룡천지원과 어떤 차이

정부가 20일 대한적십자사(이하 한적)를 통한 대북 수해지원 규모를 밝히면서 2004년 4월 평안북도 룡천역 폭발사고 당시 지원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대규모 구호물품이 북송될 전망이다.

이번 수해 지원은 룡천 지원과 비교할 때 분위기나 규모 등에 있어서 사뭇 다르다.

우선 룡천사고 당시에는 민간.당국이 즉각 지원의사를 밝혀 구호물품이 전달됐지만 이번 수해에는 민간단체 주도의 지원이 이뤄진 뒤 당국이 뒤늦게 나서는 모양새가 됐다.

룡천사고 때는 정부와 민간의 즉각적인 지원의사와 더불어 대북 긴급지원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북한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의사를 밝혔다.

북한 조선적십자회 장재언 중앙위원장은 사고 다음날인 2004년 4월23일 평양에서 이윤구 당시 한적 총재를 만나 지원을 공식 요청했고 한적은 이튿날 곧바로 ’룡천재해지원대책본부’를 설치했으며 정부의 양곡 5천t 지원 결정에 이어 개성에서 ’룡천재난구호회담’이 열렸다.

여기에 성금과 물품기증이 계속되면서 개인.단체.정부에서 ’룡천돕기 붐’이 일었다.
그러나 이번 수해지원의 경우 통일부는 민간단체가 3일부터 물자지원에 나서고 인도지원에 대한 찬성 여론이 일기 시작하자 민화협, 북민협, 6.15남측위, 한적 등과 면담을 실시해 11일 대북지원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수해 지원을 위한 남북 적십자 회담도 19일에야 성사, 지난달 14-16일 집중호우로 수해가 나고 한 달이 넘어서야 남북 당국이 한자리에 앉은 셈이다.

정부가 수해지원에 ’뜸’을 들인 데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7.11-13, 부산)이 남측의 대북 쌀.비료 지원 유보로 파행 속에 종결되면서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여론이 크게 악화된데다 남쪽에서도 대규모 수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룡천사고 때에는 남측에 신속하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남측의 쌀.비료 지원 중단 조치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선뜻 지원을 요청하지 못했다.

그러다 대북지원단체를 중심으로 구호물자가 전달되고 우리 정부도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고 지원요청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17일에야 한적에 수용 의사를 전해왔다.

미사일 발사 여파로 비록 이번 재난구호는 다소 뒤늦게 결정됐지만 이를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지원액 규모는 5배가 넘는다.
룡천사고는 반경 4㎞의 한정된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한적을 통해 421억원이 집중 투입했지만 이번 수해는 4개 도(道) 14개 시.군.구의 지역에서 발생한 점을 감안, 2천210억원 상당의 물자를 지원한다.

정부는 이번에 쌀과 시멘트 각 10만t, 철근 5천t, 덤프트럭 100대, 굴착기 50대, 응급구호세트 1만개, 의약품 등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1천950억원 상당의 쌀을 포함해 2천210억원 가량의 물품이 대거 북송된다.

2004년에는 쌀과 밀가루 각 5천t, 시멘트 5만t, 철근 500t, 덤프트럭 20대, 굴착기 5대 등 421억원 상당의 물품이 한적을 통해 지원됐다.

한적은 룡천사고 당시 정부와 민간대표들로 구성된 ’국민성금위원회’를 조직해 활발한 모금운동을 폈지만 올해는 별도의 모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적을 통한 물자 구입이 남북협력기금과 양곡관리특별회계 등 정부 자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또 룡천 지원 때는 5월7일 판문점-개성 육로 지원을 시작으로 그해 8월까지 20차례 지원물자를 수송(해상 19차례)했으나 올해는 이달 말부터 해로를 이용해 물자를 전달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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