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많은 양보’ 뭘 의미하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9일 북한에 대해 많은 양보를 하겠다며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조건 없이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많은 양보’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몽골에서 열린 동포 간담회에서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며 “국민이 보기에 따라 자존심 상하게, 원칙없이 양보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 뒤 “다른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원칙을 지키면서 제도적, 물질적 지원을 사실상 아낌없이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는 총론 차원에서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양보’를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까지 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때문에 이런 방침은 종전 대북지원 기조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미묘한 변화의 조짐도 감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발언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경협의 다기화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물론 규모의 측면에서도 커질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상황 변화에 따라 대북 경협에 대한 접근법이 달라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대북 경협 구상의 대표적인 것은 이른바 ‘포괄적.구체적 경협’ 프로젝트.

이는 작년 초부터 구상됐지만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나온 뒤부터 노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 내 관련 태스크포스가 꾸려지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9.19성명이 나온 다음 날인 작년 9월20일 “남북문제 해결의 큰 안목에서 접근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의 방법과 비전이 나올 것”이라며 “북한의 경제발전을 도울 수 있는 포괄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핵심은 이 프로젝트가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거나, 해결될 경우를 전제조건으로 깔고 있었다는 점이다. 북핵 해결에 맞춰 경협을 늘리고 네트워크 인프라사업으로 그 폭을 넓혀 남북경제공동체의 기반을 닦는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이날 울란바토르 발언은 ‘많은 양보’도 눈에 띄지만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려고 한다”며 ‘조건 없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접근법의 변화를 점칠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서 ‘조건’을 ‘북핵’으로 해석할 경우 북핵 해결에 진척이 없더라도 경협을 확대해 나간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 조짐은 북핵 문제가 방코델타아시아(BDA)와 위폐 공방으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상황 인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과적으로 6자회담의 진전 가능성이 있을 때는 북핵과 남북관계가 두 개의 수레바퀴가 됐지만 북핵이 막힌 지금으로서는 남북관계가 북핵 해결을 이끄는 견인차 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인 셈이다.

명시적인 조건은 없지만 경협을 바탕으로 북한의 인식이나 태도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속마음이 깔려 있어 보인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남북 경협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종전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연결 등 3대 사업이 경협의 주류였다면 올해부터 농업, 광업, 경공업, 임업, 수산업 등 이른바 5대 신(新)경협의 진척을 위해 획기적인 양보조치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측이 지난 달 제18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한강하구 공동이용이나 함경남도 단천 자원특구 지정안을 제안한 것도 이런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물론 개성공단사업은 남북경협이 지향하는 공동번영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철도도로 연결사업은 추후 남북 물류 인프라 구축의 시발점이라는 의미에서 각각 최우선으로 추진되고, 금강산관광 역시 개발을 본격화할 공산이 크다.

이런 측면에서 도로 연결사업은 이미 경의선.동해선이 연결돼 차량이 오가는 만큼 물류의 경제적 가치가 큰 경의선 철도 북측 구간에 대한 개보수 사업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수차례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못한 철도 운행 문제는 외견상 작년 제11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때부터 북측의 경공업 원자재 지원 요청과 맞물려 있는 모양새인 만큼 우리측의 양보가 가능한 대목이다.

신발, 의류, 비누 등 3대 경공업 원자재의 물량을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맞춰주는 대신에 철도 시험운행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 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우리측이 200만kW 대북 직접송전 계획을 ‘중대제안’으로 내놓았던 것처럼 제2의 중대제안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포괄적.구체적 경협계획에 포함됐던 통신, 물류, 전력 등 3대 네트워크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방안의 일부가 의외로 빨리 수면 위로 급부상할 수도 있어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