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경수로’ 조기에 쟁점되나

대북 경수로 제공문제가 약 4개월만의 재개를 앞둔 6자회담 프로세스에서 화두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북측은 지난 달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방문때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채 경수로 제공을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이 11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힐 차관보는 12일 한국 의원단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지고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한 이후 논의가 가능하다는 미 행정부 입장을 북측에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18~19일 수석대표 회담을 시작으로 6자회담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경수로 문제가 조기에 화두로 부각할 경우 초기단계 이후 조치의 핵심인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 관련 협의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수로 문제 연원 = 북한 비핵화의 `대헌장’ 격인 9.19 공동성명은 애매하게 명시되긴 했지만 대북 경수로 제공 관련 문구에 북한과 미국이 합의함으로써 채택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대북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했다”는 공동성명 문구에 대해 북.미간 입장차가 워낙 커 이 문제는 6자가 반드시 넘어야할 산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힐 차관보는 2005년 9월19일 9.19 공동성명 채택 직후 “`적절한 시기’라는 것은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IAEA의 안전조치를 이행할 때”라고 분명히 했다.

이에 반해 북한은 그 다음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신뢰조성의 기초로 되는 경수로를 제공하는 즉시 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핵폐기 이후에 NPT에 복귀할 것이라는게 외교가의 대체적 인식이고 보면 미국은 핵폐기후 경수로 제공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최소한 경수로를 제공해야 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양측의 이 같은 입장이 약 2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바뀌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북.미 경수로 놓고 서로 딴생각 = 북한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동결 문제와 마찬가지로 경수로 제공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여부와 연계하고 있다.

핵 억제력의 보유 원인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있는 만큼 이 정책의 전환이 분명해야만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고 그 정책 전환을 보여 주는 가시적인 조치가 경수로 제공이라는 게 북한의 논리다.

북한으로서는 또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이미 받기로 합의했던 신포 경수로 공사가 2차 북핵위기 발발 후 중단된 만큼 `원래 받기로 돼 있는 것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미측은 전임 클린턴 행정부가 남긴 `짐’으로 여기고 있는 제네바합의의 핵심이 경수로 제공이이었다는 점에서 본능적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 행정부내 강경파들은 경수로가 영변 5MW 실험용 원자로 같은 흑연감속로 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경수로를 통해서도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 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게 외교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그런 만큼 북한이 NPT체제에 복귀해 완벽한 검증체계 안으로 들어온 뒤에나 경수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립코너’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12일 한국서 가진 회견에서 “경수로가 됐건 다른 원자로가 됐건 간에 중요한 것은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느냐다”며 “원자로 자체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위험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제쯤 논의될까 = 정부 당국자들은 2.13합의에 경수로가 언급되지 않은 만큼 경수로 제공은 기본적으로 2단계 조치인 핵시설 `불능화’ 및 핵프로그램 신고 이후의 문제로 보고 있다.

2.13 합의에 경수로가 포함돼 있지 않은 만큼 만약 북한이 불능화 단계에 이르기 전에 경수로 제공을 행동의 조건으로 삼을 경우 그것은 2.13 합의 위반이라는게 정부 당국의 기본 인식이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불능화 등 2단계 이행방안을 협의하면서 경수로 문제를 본격 제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해 돌이키기 힘든 수준으로 핵시설 `불능화’를 하고 핵프로그램을 모두 신고하려면 경수로 제공에 대한 모종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경수로 문제에 대해 북한과 미국이 어느 정도 유연성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라고 외교가에서는 보고 있다.

“경수로 제공은 핵 폐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의제로 논의될 것이라는 게 관련국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지난 3월 발언에서 보듯 경수로 제공 논의 자체는 2단계 이후 비핵화 과정을 협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전망이다.

만약 북.미가 이 문제를 두고 조기에 마찰을 빚을 경우 북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보유 의혹 등 2단계의 여러 난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비핵화 논의 진전이 또한번 교착상태를 맞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때문에 `경제.에너지 지원 실무그룹’ 의장국이자 신포 경수로 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한국의 조정 역할이 또 한번 주목받게 될 전망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