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가 北核해결 키워드인가?

▲ 지미 카터 前 미국 대통령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반기문 유엔 차기 사무총장 내정자와 박근혜 전 대표의 ‘대북특사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반 총장은 외교통상부장관직을 떠나면서 “안보리제재와 6자회담 속개 과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사무총장으로서 특사를 임명해 협의를 시작하고, 필요하면 북한을 직접 방문해 협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박 전 대표도 “단순히 한반도 안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대북특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이런 시각의 연장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비중있는 인사를 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대북특사’ 논의는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김일성-카터 미국 전 대통령의 회동이 가져온 북핵 타결국면을 모델로 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시 김일성 카터 회동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전략에 말려든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카터는 전 세계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인기를 위해 ‘해결을 위한 해결’을 하고 다니는 것으로 국무부 내에서 악명이 높았다.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국제학대학원(SAIS) 소장은 자신의 저서 ‘두 개의 한국’에서 “(94년 방북해) 카터가 전달해 온 북한의 핵동결 의사는 미국 내 친북한 학자들을 통해 미국 정부에 이미 전달된 내용이었다”면서 “핵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먼 제안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IAEA 사찰관의 잔류 허용만이 새로운 내용이었으나 그것은 핵동결을 하자면 당연히 수반돼야 할 조치에 불과했다. 결국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달라진 것은 카터가 이를 생방송으로 발표한다는 사실뿐”이라고 밝혔다.

대북특사를 자임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당시 주석과 담판함으로써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전면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경수로와 중유를 제공하고 양측간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내용의 기본합의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안보리 대북결의안 통과를 앞두고 궁지에 몰린 북한이 체면도 잃지 않고 협상카드로 포기하지 않으면서 위기를 모면할 방도를 카터가 제공한 것이었다. 북한은 카터를 이용해 위기를 탈출하고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 과거 핵의혹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북한의 비밀 핵개발로 파기되고, 결국 핵실험에까지 이르게 됐다.

부시 행정부가 다자회담을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제네바합의와 같이 이행의 보장이 없는 공허한 양자합의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같은 결과가 주는 교훈은 북한 핵이 대북 특사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점이다. 중요한 것은 김정일 정권이 ‘핵(核)’무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6자회담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현재의 대북특사는 북한의 공염불 같은 ‘핵포기’ 선전을 대외적으로 전달해주는 창구 역할에 그칠 공산이 크다. 또한, 미국과의 회담 중재라는 핑계로 북한의 시간벌기에 끌려다닐 수도 있다.

1차 북핵위기 해결과정에서 카터의 역할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김정일의 핵전략에 다시금 휘말려 제2의 카터가 나온다면 비극의 재연이 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일치된 단호한 대응이 필요할 시점에서 특사 제안은 6자회담에 대한 집중력만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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