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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한인권운동은 ‘공론화 단계’를 넘어 심화 단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북한주민의 인권과 생활수준을 포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윤현 이사장(사진)은 향후 북한인권운동의 전망에 대해 ‘새로운 접근(New Approaches)’이라는 의제를 제시했다.
윤 이사장은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실태 폭로와 여론 형성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전체 북한주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문제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며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을 주문했다.
또한 “그동안 ‘직거래’ 방식으로 진행된 한국과 중국의 대북지원정책이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국제기구의 분배 모니터링을 거부하도록 만들었다”며 “앞으로는 경제, 기술분야에 대한 조건부 지원을 통해 북한의 인권수준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UN인권고등판무관실 동북아사무소를 서울에 유치한다면 북한인권운동에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아시아인권운동의 중심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윤 이사장은 1970년대 양심수 석방운동을 시작으로 37년간 북한 및 아시아지역 인권운동에 헌신해 왔으며 현재 아시아인권센터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다음은 윤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제8회 북한인권·난민국제회의’에서 논의된 ‘새로운 접근’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접근(New Approaches)’은 2년 전 노르웨이 국제회의부터 제안됐다. UN총회에서 대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될 정도로 세계 각국 정부와 NGO에서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으니 국제적 공론화는 일정한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접근’은 공론화 수준을 뛰어넘어, 실질적인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심화과정이 필요하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한다.
정치범 수용소나 재외탈북자 문제 등에 대한 폭로, 고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전체 북한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문제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조건부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통해 종합적인 인권수준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방안도 동원되면 좋을 것이다. 냉전시대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에 경제지원을 보장해 주면서 인권개선을 유도했던 헬싱키 프로세스를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도 ‘헬싱키 프로세스’에 대한 검토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과연 북한 당국이 이런 방식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북한 당국의 정책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 북한 당국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각국 정부나 의회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한쪽으로는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려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각국 정부와 의회가 북한 당국을 직접 상대하도록 견인하는 방식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물론 북한 당국이 쉽게 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항의도 하고 대화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 당국은 각국 정부의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무턱대고 거부할 만한 여유가 없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하면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외국 정부에서 ‘새로운 접근’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진행하는 사례가 있는지?
북유럽 국가들이 대단히 의욕적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노르웨이 적십자를 통해 연간 200만 달러 이상을 북한에 지원한다. 스웨덴의 대북지원 액수는 연간 500만 달러 수준이다. 식품, 의약품, 농촌 보건소 및 학교 개량사업 등에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덴마크나 아이슬란드도 비슷한 수준이다.
노르웨이에서는 북한의 젊은 기술자를 초청해 기술교육을 실시하는데, 기술교육의 조건으로 매달 1회 북한 기술자들에 대한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결국 장기적인 효과를 노리는 방식이다.
북유럽 사람들은 북한이 민중봉기에 의해 하루아침에 변화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북한체제 붕괴시기에, 개혁에 반대하는 위치에 서지 않는 기술관료를 양성하는 것이 의미있는 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의 변화에 대해 미국 사람들은 단기적 해결책에 관심이 많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중장기적 대책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국제연대를 통한 북한인권 개선에 힘을 많이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인권운동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모두 소중히 하고 현재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간 UN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도 만들어졌지만, 실제 북한주민들과 탈북자들의 생활이 획기적으로 변모했다고 볼 수는 없다.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인권운동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시민연합’의 원칙이다. 우리는 국제연대활동 뿐만 아니라 재외탈북자 및 한국 내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활동, 청소년들에 대한 인권교육 등 현장 활동에도 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서울에 UN인권고등판무관실을 유치하자는 제안 배경은 무엇인가?
UN인권고등판무관실은 전 세계에 8개 지역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있는데 ‘동북아 사무소’를 서울에 유치하려고 한다. 이명박 정부에게 유치활동에 앞장서라고 주문하고 싶다. 동북아 사무소가 서울에 들어서면 북한인권운동 차원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만약 성사된다면 인권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일 뿐만 아니라,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 인권운동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개편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너무 방향성 없이 일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이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좋고, 일하는 사람들의 긍지와 사명감도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인권운동은 국민들보다 항상 한걸음만 앞서가야 한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동안 너무 앞서 갔다. 이 점은 신임 대통령이 인사(人事)를 잘하면 된다. 국가인권위가 어떤 조직체계를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보다는 국가인권위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가 더 중요한 논점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 운영에 대해 조언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정부의 대북지원은 주로 북한 당국과 ‘직거래’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러한 ‘직거래 방식’은 국제사회의 대북지원 방향과 크고 작은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새 정부는 앞으로 UNDP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지원물자를 보내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지원물자에 대한 분배와 관련된 국제기구의 모니터링을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국제기구 책임자들은 “한국과 중국이 북한 당국과 직접 거래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해왔다. ‘국제공조’는 핵문제 뿐 아니라 대북지원 및 남북경협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