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왜 다람쥐 쳇바퀴인지 아세요?

지난 3월 9일 정부의 한 고위인사가 현 정부의 북한인권정책과 관련하여 실로 주목할 만한, 필자가 보기에는 실로 놀랄만한 발언을 하였다.

그것은 신언상 통일부차관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사장 임종석) 창립 2주년 기념 특별강연에서 한 발언들이다. 그의 발언의 핵심은 다음 3가지다:

첫째, 국민차원의 남북교류의 목적과 관련하여, 북한사람들은 “자유로운 남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체제에 대한 회의와 지휘부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될 것”이라는 점, 즉 교류의 목적은 북한체제를 흔들어 바꾸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둘째, 정권차원의 교류방식과 관련하여,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북한 핵문제,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노벨상 5개도 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굴욕과 수모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대북지원의 성격과 관련하여 “북한을 강압하면 조폭으로 변한다. 북한의 변화 없이는 우리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다”며, 현 정권의 대북지원은 조폭 경향이 있는 북한 정권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신차관의 진실고백(?)

신차관의 이 발언들이 놀라운 점은 그것이 처음 알려진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하거나 비판한 것을 일체의 변명 없이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옹호하였다는 점이다.

우선 현 대통령부터 외교통상부장관, 통일부장관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대사, 그리고 수많은 좌파 시민단체,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거론 자체가 국제적으로는 미 제국주의자들과 그의 동조자들, 국내적으로는 한국의 수구보수 세력이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려는 데에 있다고 격렬히 비난하던 것과는 달리, 신차관은 남북의 인적교류가 실은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 넣는 데’에 있다고 밝힌 것이다.

둘째, 서해교전은 물론 그동안 수많은 정권차원의 남북접촉에서 보인 한국정부의 저자세 비판에 대하여 “협상이나 접촉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는 소극적 변명 대신, “굴욕과 수모 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고 적극적으로 나온 것이다.

셋째, 대북지원과 관련, 2차 대전 前 영국수상 챔벌린이 추구하였으나 실패한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과 같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 현 정권은 지금까지 “포용(engagement)과 유화는 다르다”고 변명하였으나, 신차관은 노골적으로 북한정권의 폭력(위협)성향을 돈과 물자로 무마하고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신차관의 이런 발언들이 대북정책에 대한 현 정권의 최고결정권자들의 협의와 묵인 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 자신의 개인적 견해인지 필자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차관의 언행을 볼 때 적어도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자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5급 특채로 시작한 관료생활을 통해 차관직에 오른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가 새로 모시는 이종석 장관님은 한 시대의 역사를 설계하신 남북관계 전문가”라며, “제 청춘을 바친 통일부에서 차관으로 봉사할 기회를 주신 데 대해 대통령님과 장관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리면서 “앞으로 장관님 지침을 정확하게 받들면서 여러분과 장관님의 중간에서 통일업무 발전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을 다짐한다”고 할 정도로 감격어린 충성을 장관 개인에게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이종석장관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대북정책의 실상과 숨은 목표를 신차관이 자의로 말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금까지 이들이 극력 부정해왔던 속셈을 털어 놓도록 만들었을까?

암수론, 근거 있을까

필자는 지금까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현 정권과 좌파 지식인들의 접근방법을 비판해 오면서도 항상 두 가지 점에서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그것은 첫째,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포괄적 대안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비판적 야당으로서 정책정당을 지향한다는 한나라당은 한 번도 단순한 구호 이상의, 도덕적 성찰과 거시적 전략, 그리고 현실적 가능성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 대북정책을 제시해 본 적이 없으며, 차라리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듣기 좋은 소리로 적당히 희석한 정체불명의 정책을 갖고 있지 않나 의심될 때가 많다.

그것은 김대중의 햇볕정책 이후 대북강경정책이 더 이상 국민들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선거에서 젊은 세대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한 검사출신 한나라당의원의 고백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포괄적 대북정책 수립의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보수세력 역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데에 전념하다 보니, “무엇무엇을 하자” 보다는 “무엇무엇을 하지 말자”로 기울어지고, 따라서 내용적으로는 그 외견상의 ‘씩씩함’과는 달리 매우 소극적이 되어 버렸다.

둘째로, 아직 정리되지 못한 점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표면상의 유화성과는 달리 실은 내심으로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노리는 가시를 품고 있다는, 이른바 “암수론(暗手論)”이다. 실제로 김정일 정권은 김대중의 햇볕정책의 초창기에 이를 암수론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하였고 현 정권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공개적으로 천명되지 않는 정책은 결코 정책일 수 없다는 점에 비추어 암수론 논의를 필자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좌파, 진보 지식인들 상당수가, 그리고 고위 관료들 중 몇몇은 북한인권문제에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서라도 암수론을 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현 정권 외교안보팀의 핵심당국자가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에게 했다는 말 중에;

“정말 북한이 개혁·개방되기를 원하십니까? 金正日이 진짜 개혁·개방해서 남한 국력의 70~80%가 되면 통일이 가까워지는 걸까요? 아니죠. 힘이 대등해지면 통일은 더 멀어지는 거죠. 햇볕정책은 북한을 외부의 지원에 의존해서 사는 「앵벌이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북한체제는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상태입니다. 이만하면 햇볕정책이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 아닙니까.” (2005 11월호)

따라서 신언상차관의 위 발언은 햇볕정책에 대한 ‘몰지각한 비판’을 “분골쇄신”의 각오로 몸을 던져 막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유화정책이 설사 ‘김정일이라는 조폭 달래기’라 하더라도 자기들이 볼 때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 그리고 이런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현 정권은 묵묵히 북한의 체제변화와 자유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그 속마음을, 즉 암수(暗手)를 햇볕정책의 비판자들은 너무나 알아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차관의 발언에 적지 않은 감상(感傷)이 섞였지만 정직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개되지 않은 정책은 정책 아니다

그러나 암수에 의한 대북정책이란 공개되지 않는 한 “정책”이 될 수 없으며, 북한에 공개되는 순간 더 이상 “암수”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암수를 공개하는 순간 이 정책은 사실상 포기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그것은 더이상 대북용이 아니라 대남용임을 천명한 것이다.

실제로 신차관이 북한체제 변화를 목적으로 “자유의 꽃가루”를 전파하고 돌아왔다는 8만 명의 북한 방문객들에게 무엇을 전파했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8만 명 중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금강산 관광객들이 봄날에 날리는 금강산의 꽃가루를 남한으로 묻혀 왔는지는 몰라도, 금강산에서 남북한 간의 인적교류란 오로지 북한 안내원들과의 접촉뿐이다. 한마디로 등산은 그냥 등산일 뿐이고, 평가절상도 평가절하도 필요 없다.

또한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이 조폭이 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신차관의 발언은 정확히 원인과 결과가 도치된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햇볕정책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조폭이니까 두 정권이 대북 퍼주기를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왜냐하면 돈을 안주면 때려 부수겠다는 것이 조폭의 행동방식이지, 다 때려 부순 다음에는 돈을 뜯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차관은 조폭에게 돈을 뜯기는 상점 주인들에게 한번 물어보라. 조폭에게 돈을 주는 이유가 이들 조폭이 조폭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를. 신차관은 아마 “제 정신이냐?”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북한인권 방치의 모순구조

그러나 신차관의 발언에서 무엇보다도 문제인 점은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굴욕적 대북정책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무지의 소치도 아닌, 그저 새빨간 거짓말이다. 현 정권의 북한인권문제 방조와 묵인이 다음과 같은 구조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 구조에서 북한인권문제가 절대로 개선될 수 없다는 점을 “통일부에서 청춘을 바친” 신차관은 잘 알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첫째, 북한인권문제 해결의 시작은 남북한 정권간의 접촉을 통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둘째, 김정일 정권과 계속 접촉하기 위해서, 인권문제라는 김정일의 치부를 들출 수는 없다.

셋째, 북한인권개선을 위해서는 김정권의 변화를 유도해야 하며, 그렇기 위해서는 대북지원을 계속해야 한다.

첫째와 둘째로부터 “북한인권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인권문제를 묵인, 방조해야 한다”는 모순적 결론이 나오고, 실제로 대북정책의 최고 입안자들이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원래 어떤 전제들로부터 모순적 결론이 나오면 그 전제들을 바꿔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세 번째 주장인 “북한체제 변화유도를 위한 대북지원”을 근거로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일방적]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북한체제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북한이 결정할 일이지 한국이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역시 햇볕정책의 원인과 결과가 뒤집혀진 구조와 일치하는데, 북한은 이른바 남한이 주는 ‘체제변화 유도비’만 받아먹으면 될뿐더러,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남한으로부터 계속 더 ‘체제변화 유도비’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유도당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따라서 위의 전제 3가지로부터 얻어지는 결론은;
북한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남북한 정권 간에 적당한 접촉과 상징적 교류만 유지하면, 한국정부의 북한인권문제 거론도 완전히 봉쇄할 수 있고 막대한 돈과 물자도 자동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환상적인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모든 게임이 오로지 한국 정부 스스로 내세운 잘못된 대북정책의 전제들로 인한 논리적 결론이라는 점이다:

북한인권문제를 위해 남북접촉을 해야 하지만, 남북접촉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해야 하고, 이러니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한 이렇다 할 결과도 있을 수 없고, 그렇다면 북한체제 변화유도를 위해 대북지원을 계속해야 하지만, 지원이 계속되는 한 북한의 입장에서는 체제변화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고, 따라서 북한인권문제도 하나도 개선될 것이 없으니 굴욕적이라도 다시 남북한 정권간의 접촉을 시도해야 하고…etc.

이렇게 보낸 세월이 지난 8년이다. 북한인권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현 정권은 북한 탓을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물론, 국가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운 지 오래된 현 정권이 북한 탓을 할 이유도 없겠지만.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대북정책은 실패했고 또 실패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관건은, 앞에서도 강조하였지만 자유민주주의세력은 포괄적이고 현실적이며 도덕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대북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말자주의”만 갖고는 더 이상 안 되며 “~하자주의”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도움으로 북한인민을 아우르는 대승적 차원의 변화 없이는 저 다람쥐 쳇바퀴 같은 현 정권의 대북정책이 바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홍성기/ 아주대 특임교수(철학박사)

홍성기(洪聖基)
-서울출생(1956)
-경기고, 서울대 독문과 졸업
-뮌헨대 철학석사
-자르브뤼켄대 철학박사(논리학, 동서비교철학)
-아주대 특임교수(현)
-주요논문 : <용수의 연기설><괴델의 불완정성 정리 비판>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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