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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인권결의안이 유엔총회에 상정됐다. 유럽연합(EU)이 작성한 결의안 초안이 거의 수정 없이 상정되었다고 한다.
북한은 연일 선전매체를 통해 이에 반발하고 있다. 남한의 친북단체 <통일연대>는 지난 달 28일 대북인권결의안의 유엔총회 상정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북인권결의안의 내용과 제출배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다.
이번 대북결의안을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며 명쾌한 체계를 갖고 있다.
유엔총회 대북인권결의안, 최고 수준의 인권 압박책
결의안은 우선 북한이 각종 국제인권규약의 가입국임을 상기시킨다. 그러한 규약에 스스로 가입한 국가로서, 규약이 명시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서 유엔인권위원회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차례에 걸쳐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특히’ 북한이 유엔에서 임명한 특별보고관의 활동에 협력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결의안은 이어서 “다음의 사항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하면서 가장 먼저 ‘북한이 특별보고관의 임무를 인정 않고 협력도 하지 않은 점’을 앞세워, 특별보고관에 협력하지 않았음을 재차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이 대목이다. 뒤 이어 “북한에서 다음의 사항을 포함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가 행해지고 있다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북한의 인권침해와 탄압사례를 나열하고 있는데, 그보다 앞서는 것이 ‘특별보고관에 협력하지 않았음’이다.
유엔에서 특정국가의 인권문제에 개입하는 데에는 절차가 있다. 우선 유엔인권위는 각종 인권관련 규약에 의한 정기 보고서를 각국으로부터 제출받고, 문제가 있으면 추가보고서를 받거나 시정을 권고한다. 이것이 첫 단계다. 보통 국가들은 대체로 이 단계에서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있다고 의심되면 인권위 차원에서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다.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나라의 인권상황을 조사하여 보고할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을 임명한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다. 유엔인권위가 자체적으로 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압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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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에서 개최중인 제60차 유엔총회 |
특별보고관의 활동에 해당 국가가 협력하지 않거나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네 번째 단계로 재차 인권위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하고, 결국 유엔총회로 이 문제를 올려 보낸다.
결국 유엔총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은 최종 다섯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껏 이 네 단계를 거쳐왔다. 유엔총회에 대북인권결의안이 상정된 것이 어느 날 아침에 뚝딱, 무언가 대단한 음모 아래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북한의 실수, ‘특별보고관 현지조사 불허’
유엔 가입국이라면 가입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인권위의 결의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결정되었으면 일단 그에 따라야 한다.
자국에 인권문제가 없고 결의안의 내용이 순전히 허구라면, 특별보고관에게 그것을 보여줘 ‘우리는 그런 문제 없다’고 깨끗이 주면 된다. 간단한 문제다. 그러나 북한은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지 않아, 결국 화를 자초했다.
<통일연대>는 성명서에서 “북한이 특별조사관에게 협력하지 않은 것은 유엔에 대한 협력거부가 아니라 미국이 중심이 되어 벌이는 인권을 빌미로 한 대북정치공세에 대한 거부”라는 궁색한 변호를 했다.
구린 게 없다면 보여주면 된다. 특별보고관이 무슨 핵시설이나 군사시설, 김정일 집무시설을 보여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어느 지역에 정치범수용소가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한번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보여주면 된다. ‘어느 날 어느 때에 송환되었던 탈북자가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면담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그를 만나게 해주면 된다. 그래서 세간의 오해와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 특별보고관의 임무이며 역할이다. 이게 무슨 정치공세인가.
게다가 <통일연대>의 성명서는 유엔의 특별보고관에 대한 심각한 무지와 명예훼손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인권위는 여러 분야에 걸쳐 특별보고관을 두고 있다. 북한뿐 아니라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이라크, 쿠바, 수단, 브룬디, 콩고, 팔레스타인, 벨로루시 등 1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특별보고관이 임명된 바 있다. 국가별 보고관 뿐 아니라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 ‘아동 매매춘 담당 특별보고관’ ‘고문방지 특별보고관’ ‘식량권 담당특별보고관’ 등 사안에 따른 보고관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보고관을 임명할 때는 일체의 정치적인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그 나라와 직간접적 대립관계에 있지 않은 국가의 지극히 중립적인 전문가로 선정한다. 주로 국제법 전문가나 대학교수 등을 위촉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한국인 가운데에서도 서울대 법학과 백충현 교수가 아프간 문제 특별보고관으로 활동한 바 있고,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문제 특별보고관으로 현재 활동 중이다.
▲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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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엔의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인 비팃 문타폰 태국 출라롱콘대 법학과 교수는 아동인권 전문가로 꼽히며, 2004년에는 인권교육에 공을 세운 단체나 인사에게 수여하는 ‘유네스코 인권교육상’을 수상한 바 있다. <통일연대>의 주장대로라면 문타폰 교수는 미국의 ‘정치공세’에 동원된 사람이란 말인가?
<통일연대>는 성명서에서 “(북한인권침해의) 근거라는 것이 소위 기획 탈북자들의 과장된 증언과 확인되지 않은 선정적 사실들을 가감 없이 적시한 반북인권단체들의 ‘카더라’식의 보고서”라고 주장했다.
엉뚱한 이야기다. 문타폰 보고관은 북한에 여러 차례 방북조사 승인을 촉구했다. 그러나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으로 접근할 수 없으니 밖에 머무르면서, 안에서 살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조사의 방법이다.
따라서 <통일연대>는 문타폰 보고관에게 “왜 탈북자와 ‘카더라’식 보고서만 봤느냐”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게 “왜 진실을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는 것이 순리다. 북한이 특별보고관을 잘 활용(?)해 오해와 의문을 풀어주었으면 됐는데, 오히려 그의 입국을 막아 화를 더 키우고 말았지 않은가?
외부 형식 변화는 내부 개선 이끈다
<통일연대>의 성명서는 사실 북한인권문제의 ABC도 모르는 유치한 무지와 궤변으로 가득 차 있어 일일이 대응하기도 아깝다. 대표적으로, <통일연대>는 “북한은 (유엔의 인권)규약 관련위원회에 많은 보고서를 성실하게 제출하는 의무를 다해왔다”고 주장했는데,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북한은 유엔의 ‘시민적 ∙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B규약)에 1981년 9월에 가입했으며, 1983년 10월 이에 대한 1차보고서, 1984년 4월 추가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심의가 이어지자 2차보고서 제출을 계속 미뤄, 자그마치 16년 후(2000년 3월)에야 2차보고서를 제출했다. 유엔인권위에서 이렇게 보고서 제출을 미룬 나라가 없다.
그런데다 북한은 1997년 유엔인권소위에서 규약준수와 보고서 제출을 내용으로 한 결의안을 채택하자, B규약을 탈퇴하겠다고까지 선언했다. 유사 이래로, 인권규약에서 탈퇴하겠다고 협박한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다. 참고로 국제인권규약은, 가입국이 탈퇴를 무기로 해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 흥정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탈퇴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번에 <통일연대>는 좋은 이야기를 하나 했다.
<통일연대>는 북한이 유엔의 인권규약을 그동안 성실히 이행했다면서 “2004년 4월 북한의 형법개정은 유엔자유권위원회의 2001년 권고내용의 이행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주 좋은 지적이다. 그러니까 바로, 이번에 유엔총회에서 대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통일연대>가 말한대로, 북한은 국제사회의 지적에 반항하는 듯 하면서도, 또 그것을 이행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해왔다. 이번에도 유엔총회에서 대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되면, 북한이 겉으로는 초기에 반발하겠지만 어떻게든 개선의 제스처를 취할 것이다.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도대체 북한의 인권개선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북한은 유엔의 지적이 있자 형법에서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조항을 대폭 축소하기도 했고,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지적이 있자 헌법 조항을 약간 수정하기도 했다. 물론 그것으로 인권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지만, ‘외부로부터 형식의 변화는 내용의 개선을 강제하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북한이 어떻게든 고치고 변화하다 보면,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 북한과 같은 고집불통 국가에게는, 외부의 강제로 인해 쌓이는 이런 작은 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
北인권개선이 국제사회 진입 지름길
▲ 북한인권단체의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촉구 시위 |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일수록 북한의 인권개선을 적극 촉구하고, 유엔에서 대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에 대북인권결의안을 EU가 제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EU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EU는 지난 2000년 11월 ‘대북행동지침(EU Line of action towards North Korea)이라는, EU가 북한을 상대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을 정했다. 여기에는 북한과 수교를 하려면 인권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담고 있으며, 이때부터 EU와 북한간의 인권협상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사회와 정상적 교류를 하고, 그 관건이 EU와의 관계개선이라면, EU가 제시하는 인권의 척도에 북한이 빨리 따라올 수 있도록 재촉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그래서 북한을 ‘궁극적으로’ 돕는 길이며,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끄는 과정에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이다.
사실이 이러할진대 북한의 인권문제를 이야기하면 큰 일이라도 날 듯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제다.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을 어떻게든 피해가 보려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정부는 이번 대북인권결의안에도 기권할 방침인 듯하다. 아직 그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전례처럼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인 듯하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서강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통해 “(북한인권문제 해결 방도는) 북측을 국제사회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북한을 남한에게만 의지하며 사는 ‘어린양’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북한의 인권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고 오는 지름길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