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생존의 법칙만이 적용된 세계가 있다. 이성보단 본능이 앞서는 동물의 세계다. 약육강식 생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는 오직 강자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신은 약한 동물들에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강점 하나씩을 부여했다. 몸집은 작으나 치명적 독을 품거나 강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나름 빠른 발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한반도에 동물의 이 같은 세계를 뛰어넘는 집단이 있다. 정치 경제적으로 한 없이 약한 국가이지만 약한 동물이 신이 선사한 강점을 십분 활용하듯 북한 또한 이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번 ‘목함지뢰’ 도발사건은 북한정권의 이 같은 행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허술한 지뢰 두 개가 남북관계의 지축을 뒤엎었다. 당분간은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연평해전-천안함-연평도’가 거대한 테러라면 목함지뢰는 게릴라 전법이다. 아니 일본 전국시대에 암약한 닌자(忍者)의 수법과 유사하다.
여기서 반문해봐야 할 질문이 몇 개 있다. 남한은 여태까지 계속 당하기만 했다는 사실이다.
첫째, 목함지뢰는 피할 수 없었는가? 둘째, 북한은 왜 그랬을까? 셋째, 대한민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넷째,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
철책 문 바로 앞은 등잔 밑과 같다. 적은 주도면밀히 그곳을 노렸다. 사선을 넘어서는 첫 발자국에서 이를 발견하기란 무리다. 병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다. 애초에 그런 위치에 치명적 살상무기가 침투하지 못하게 만드는 억지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그것이 현실적이고 체제 방어전술이다. 경계실패의 원인은 현장의 군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이 침투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지 못한 전반적인 방어태세의 구조적 약점에 있다.
북한은 단 두 개의 지뢰로 뭘 어쩌자는 것이었을까? 북한 하전사의 용맹성을 자랑하기 위함이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작은 지뢰가 가져올 남북관계의 파장을 충분히 예측하고 실행에 옮겼다고 봐야 타당하다. 북한군의 지휘부는 정치군인(정치지도원)으로 채워져 있다. 군이 곧 국가를 지속시키는 핵심 요소인 체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목함지뢰에 담긴 대남 메시지를 찾는 일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묻는 두 번째 질문, ‘그들의 범행이유’를 추적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셋째, 넷째 질문의 답도 함의하게 된다.
늠름하고 잘 훈련된, 잘 생긴 두 하사관의 젊고 건강한 다리를 무자비하게 날린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원하던 실낱같은 희망의 다리를 무참히 무너트렸음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의 자유평화 통일 의지를 지독히 경멸한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는 대통령의 ‘통일대박’과 ‘경원선 복원’ 이벤트를 향해 북측이 갖고 있던 신경질의 완결판과도 같다. 5.24조치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 남북경협 활성화, 충분한 대북지원 개시 등 북한이 기다리고 기대하던 선물(?)을 이번 정권에서는 포기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북한은 핵을 쥔 김정은의 대내외적 자신감을 이 작은 목함지뢰 두 개에 담아냈다. 남북관계의 다리가 끊겼으니 무엇이 남았을까. 앞으로 그들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을 쏴도, 4차 핵실험을 해도, 새삼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하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군사 정무적 정치감각이 뛰어난 북한군 수뇌부(물론 여기에는 김정은 본인도 포함돼 있다)가 노린 기대이익은 바로 군사적 긴장의 일상화 분위기 조성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그저 많은 생각 속에 머리만 복잡해져 군인으로서의 단순 명확한 판단과 민첩한 행동원칙을 잃어버린 남한의 군 지휘부는 즉각 보복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이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는 군사적 공격에 정치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이상한 논리이다. 나는 피를 흘렸는데 적의 마음만 공격하겠다는 판단에 그치겠다면 그건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심리전은 교란술이지 응징이 아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형벌원칙의 기본인 ‘탈리오 법칙’이다. 군인의 판단력과 전문성은 어떻게 이것을 실현하느냐에 집중돼야 한다. 북한은 앞으로 더 강공책으로 나올 것이다. 그들의 오랜 노하우가 녹아있는 ‘통일전선전술’과 별개로 대남 군사적 대립각은 점점 날카로워질 기세다.
그때마다 우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신문과 방송에 온갖 작전 계획을 생중계하며 입으로만 떠들 것인가? 작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국가에도 군 작전은 최대한의 보안과 침묵 속에 결과로 나타나야 하며 누가 했는지 조차 불분명해야 고도의 공작이다.
초원의 왕이라는 사자도 방심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하이에나 무리에 당하는 것이 동물의 세계다. 힘 있는 사자에게는 누구도 덤비지 않는다. 사자는 자신의 힘이 세다는 것을 스스로 시위하지 않는다. 오직 약해지고 힘 빠진 사자를 적들이 먼저 알아볼 뿐이다.
한국군은 급소를 심히 아프게 한방 차였다.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것은 실은 약해졌다는 방증이다. 강한 사자는 눈으로 말하고 행동으로 되갚는다. 하이에나는 내쫓기지 않는다. 절대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음을 깨달을 때에라야 스스로 떠난다.
분노라면 가슴 속에 오롯이 담아두자. 지금은 북을 향해 펼쳐 내민 손을 거두고 주먹을 움켜쥘 때다. 그리고 응전의 기회가 다가온 순간 주저 없이 상대의 명치를 향해 전광석화처럼 강력한 펀치를 날리라. 그런 후에야 상대가 손을 펼쳐 내밀 것이다. 평화는 그 때 가서 그 손을 잡아줄 때에라야 가능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