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 최고 베테랑 ‘김찬구의 16년 경험’ 연재

▲16년간 대북사업을 해온 김찬구씨

북한 전역에 뿌려진 나의 땀과 기술, 동포에 대한 애정의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내가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만 해도 북한은 회색 안개로 덮여 있던, 쉽게 갈 수 없는 동토(凍土)의 나라였다. 이제 나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서툰 글 솜씨를 무릅쓰고 지난 16년간의 세월 동안 숨어 있던 북한 땅을 정신없이 드나들면서 무엇을 했는지 써보기로 했다.

영사 부장의 ‘주의 사항’

1988년 7월 7일 대한민국 정부는 소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계기로 해외거주 교포들에게 북한을 자유롭게 방문해도 좋다는 법적 허가를 내렸다.

1989년 1월 19일, 우여곡절 끝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북경대사관’에 입국비자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북한 대사와 상견례가 있었다.

대사관 관계자는 “미주 동포 여러분들의 조국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며 “내일이면 평양으로 가시게 되는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우리 영사부장동지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라며 영사부장에게 말을 넘겼다.

“첫째는, 신문을 보시고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의 초상화를 접히게 하거나, 뒤 호주머니에 넣거나, 휴지통에 버리면 절대로 안 됩니다.
둘째는, 수령님의 동상이나 김정일 동지의 사진을 가리킬 때 손가락질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손바닥을 위로 하고 손바닥을 펴서 가리켜야 합니다.
셋째는, 안내원의 허가 없이 아무 곳에나 다니거나 사진을 찍어도 안 됩니다. 예를 들면, 관광지에서 지나가는 인민에게 사진을 갈이 찍자거나 말을 시켜도 안 됩니다.
조국 방문에 불편함이 없도록 이상의 사항들을 각별히 주의해 주시고, 평양에 가시면 안내원의 안내 지시에 협조하여 무사히 잘 다녀오시기를 바랍니다”

16년간의 대북 사업, 성과 없이 끝나

이렇게 평양과의 인연이 시작된 지 어언 16년, 같은 동족이며 말이 통한다는 편안함 때문에 나 혼자만 북한 사업을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또한 내 자신이 기쁨과 슬픔, 배신감을 느낄 때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무작정 정신없이 평양을 드나들었다.

나는 평양에 가면 내 집처럼 따뜻했고 편안했기에 뭐가 되었든 더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실망스런 일들이 생기기도 했지만 깨우쳐 주고 바깥세상을 알려주며 양심껏, 진실된 내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언젠가는 사업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사업은 약속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정체되어 지금까지 흘러 왔다. 돌이켜 보면, ‘혁명 1세대’들이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북한사업이 차질이 생겼다. 발전은커녕 후퇴했고 세계정세와 남북관계의 영향으로 북한 사업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나는 사업을 냉정하게 하지 못했고 북한 사업에 대한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 나도 이제 물러날 때가 되었나보다”
좀 더 함께 웃고 울고 싶었다. 다른 나라로 가는 아까운 사업들과 기술들을 북한 땅에 심어주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진실이었고 그리하여 같이 잘 살고 싶었다. 통일이란 단어는 아예 멀리 두고 우선 잘 살아 보자고 했었다. 이 일들을 꼭 내가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부지런히 다녔다.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재물에는 욕심 없이 열심히 일만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제풀에 지치지는 않았지만 여력이 없어졌다. 앞으로 뭘 하고 어떻게 해야 평양을 다시 살릴 것인가?

논리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나라

▲김찬구씨는 16년간 대북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사연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했다

장소만 제공하면 모든 걸 다 가져가서, 기술도 가르치고 외화벌이 방법까지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는데, 뭐가 그리도 불편하고 사업에 마음이 안 맞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일반적인 상식이 안 통하는 그곳, 논리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나라, 너무나 고통스런 경험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구조, 어긋난 생각들, 진실을 가슴속에 안고 최선을 다하는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 속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자리 잡고 있으며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지 상념이 든다.

평양을 나쁘게 몰아칠 의도는 전혀 없다. 나 자신의 성공을 목표로 미친듯이 일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진실을 서로가 알아야하기에 허무하고 명예롭지 못한 지난 세월을 쓸 뿐이다.

한국전쟁을 어린 나이에 경험한 나로서는 동족상잔의 아픔을 잊고 북한에 진출하려고 결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기’가 아니라 ‘잠시 멈춤’일 뿐이다

최근에 공개된 납북 어부들의 사진을 보면서 또 한번 지난 세월에 대하여 과연 내가 잘한 일인지, 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그러나 마음을 과거에 묶어 둘 수는 없다. 지난 일일 뿐이다. 긴 세월의 경험을 정리는 하지만, 이것이 결코 ‘포기’가 아니라 ‘잠시 멈춤’일 뿐이다.

지난 세월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안타까움은 너무 많다. 진실을 몰라준 동족이면서 다른 동족 같은 슬픔을 안겨 준 동족, 꾸준한 설득과 노력조차 허무하게도 배신감에 떨게 하는 지난 세월, 남은 생명까지 낭비하고 싶지 않아 이제는 거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고 싶다.

긴 해상 생활과 해외 이민생활로 평생을 떠돌이처럼 사느라 어머님 제대로 한 번 모시지 못한 지난 세월, 그래도 내 동생 부부가 잘 모시고 효도해주어 진심으로 고마워 여기에 나의 마음을 남겨 전하고자 한다.

이제 나는 나의 대북사업 16년 경험을 이곳에 모두 털어 놓으려고 한다. 물론 남북관계도 바뀌었고, 북한의 태도도 일부 바뀌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대북 관광사업에 보여준 태도를 보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음을 느꼈다.

남북 경협에 대한 나의 모든 경험을 정부와 대북사업 참여자들과 나누고 싶다. 북한이 변화해야 할 지점과 우리가 도와야 할 지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그것이 내가 가고자 했던 북한의 개혁과 개방에 작은 보탬이라도 된다면 다행스럽게 여길 뿐이다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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