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북한의 지뢰도발 이후 남북접촉 과정에서 대북 확성기를 비롯해 대북방송의 효과가 확인됐다. 때문에 향후 대북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이를 대북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그동안 북한의 변화뿐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북한에 끌려가거나, 북한의 ‘몽니’와 ‘떼쓰기’로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에서다.
특히 북한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억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북방송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대북정책이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통한 통일준비라는 측면이 있는 만큼 대북방송 강화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대북방송을 통한 북으로의 외부정부 유입이 북한 주민의 의식을 일깨우고 나아가 남북 간 문명 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라디오 방송, 대북정책으로 활용할 수 있어”=향후 대북정책을 효과적으로 펴는데 활용될 수 있는 대북방송으로는 크게 대북확성기 방송과 대북라디오 방송이 있다. 대북확성기 방송의 경우 최전선 비무장지대 등에 설치돼 북한 군인들의 의식 바꾸는데 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대북심리전 수단이다.
지난 8월 4일 북한지뢰 도발을 계기로 2004년 6월 남북합의 이후 중단됐던 대북확성기 방송이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서 재개돼 북한이 확성기 중단을 위해 적극적인 대화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당시 북한이 그동안의 모습과 달리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 대북확성기 효과 때문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남북은 대북확성기 방송을 북한의 도발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할 시 재개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또 다시 위협적인 도발을 할 경우 원칙에 따라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되, 이와 별도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대북방송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확성기 방송 재개라는 수단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남북한 주민의 격차를 줄이는 통일준비 차원에서의 일상적인 대북방송을 추진하는 ‘투트랙 대북방송’ 정책을 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에선 대북라디오 방송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대북정책의 주요 수단 삼는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의 대북방송은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비공식적으로 대북 민간방송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화행 동명대 방송영상학과 교수는 24일 데일리NK에 “북한이 대북방송에 큰 반감을 갖고 있어 정부 주도의 방송 송출이 어렵다면, 민간대북방송사의 역량을 적극 활용한 비공식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그간 민간대북방송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이 부족했으나, 앞으로는 중파 주파수 할당과 재정 지원 등을 통해 민간대북방송사의 역할을 더욱 제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이어 “당장은 어렵더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세계의 자유로운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리는 정부 주도의 대북방송도 언젠가 실시돼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 체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남북 간 문화 교류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공동 제작하거나 양자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해 이를 통일 준비 정책으로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하려면 대북라디오 방송과 당국 간 대화 제의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가 한 쪽에서는 북한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노력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민간대북방송사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공식적으로 대북방송을 송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자칫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대북방송을 대북정책으로 활용해도 되느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손 연구위원은 “대북방송은 북한 주민들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일깨워주고 정보 습득의 자유를 주는 일”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대북방송이 지속된다면 우리 정부가 추진해오고 있는 대북정책과도 부합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대북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다는 탈북자 최영석(가명·50) 씨도 “북한 주민들은 장기간 북한 정권의 세뇌와 선동으로 인해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보에 다소 방어적이고 의심을 갖는 경우도 있다”면서 “북한 체제의 모순과 허구성을 깨닫게 해 북한 주민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우리 대북정책의 방향이라면, 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대북라디오 방송을 더 강화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北관영 기자, 南에 상주 못시킬 이유 없어”=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북방송을 정부 정책화 하는데 있어서 내밀하고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북한을 향해 일방적으로 송출되는 현재의 대북방송 형태를 뛰어넘어 방송 콘텐츠부터 송출 방식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미디어 역할에 대해 연구한 이 교수는 “독일 통일 전 동서독 간 미디어 환경이 현재 남북한의 상황과 판이하게 달라 당시의 정책을 그대로 활용하긴 어렵다”면서도 “1973년부터 동서독의 합의 하에 행해진 ‘언론 교류’ 정책, 즉 특파원 상호 상주 체제는 당국 간 실무 협상 등을 통해 추진해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그는 “현 남북관계에서 가능성이 낮지만 북한 특파원을 한국에 공식적으로 상주하게 하는 다양한 노력을 정부와 민간이 해볼 수 있다”면서 “동서독 주민들도 이 체제를 통해서 서로의 실상을 확인했으며, 자발적으로 통일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분위기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통일 준비 과정부터 통일 이후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인 사회 통합과 재사회화를 위해서는 방송, 즉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현재의 대북방송을 활용하는 연장선에서 정부와 민간이 연계해 통일 전 시점, 통일 국면의 전환기 시점, 그리고 통일 이후 시점을 대비하는 공식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석승 서울교대 외래교수(前 통일부 정세분석팀장)도 “성공적인 통일을 비롯한 한반도의 안정적인 미래는 북한의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주민들의 의식이 변화해야 가능한 일”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묵묵히 대북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민간대북방송사들의 역할에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이어 “정부가 공개적으로 민간대북방송사를 지원하기에는 남북관계 등 여러모로 감안해야 할 사항이 많은 만큼, 북한인권 개선과 통일을 바라는 국민들이 민간대북방송사의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