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없는 北…물건너간 2.13합의 시한준수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정말 답답하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6자회담 ‘2.13합의’ 이행이 계속 지체되면서 한국과 미국의 주요 당국자들의 표정도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베이징(北京)에서 많은 기자들 앞에서 북한과 합의한 BDA해법을 공개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2.13합의 60일 이행시한을 이틀 앞둔 12일 서울에서 귀중한 시간을 사실상 허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이날 베이징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힐 차관보는 미국의 최종해법에 대한 북한의 답변을 기다리느라 서울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했다.

지난 8~11일 북한을 방문했던 빌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와 함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청와대를 방문한 그는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며 BDA 문제가 해결됐는 지 여부는 “북한이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 베이징에 가느냐는 질문에 “아직 알 수 없다”며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언제 온다는 얘기가 아직 없어 현재로서는 베이징으로 갈 지 워싱턴으로 갈 지 모르겠다. 오늘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주요 협상책임자가 북한의 결정에 자신의 동선(動線)을 맡긴 형국이 돼버린 셈이다.

피곤하기는 한국의 주요 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힐 차관보와의 오찬협의를 한 뒤 기자들에게 “이제는 북한이 움직일 차례”라거나 “북한이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기 전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틀 앞으로 다가온 2.13 합의 이행 시한을 넘기는 것은 이제 사실상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전날 리처드슨 주지사가 13일을 염두에 두고 ’BDA 해결 이후 하루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단을 불러 원자로 폐쇄조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갈수록 무게감이 떨어지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의 BDA 해법이 실제 가능한 지를 확인하려는 듯하다”면서 “이럴 경우 또 다시 하루 이틀내 북한의 답변이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시한(14일)을 넘긴 뒤 어떻게 하면 6자회담의 협상동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느냐가 고민거리로 등장한 느낌이다.

물론 한국과 미국 당국자들은 “BDA 문제 때문에 북한이 2.13 합의 이행을 하지 않는 것이지, 2.13합의 이행에 대한 정치적 의지는 여전히 강력하다”며 상황이 비관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14일까지 BDA 문제를 해결하고 초기조치 이행 가운데 한두 가지만이라도 북측이 이행하면 2.13 합의의 의미는 유지되는 것이라는 분석이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6자회담의 중요한 합의가 어떤 이유에서든 무색해지는 상황을 맞이해 외교 전문가들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6자회담에서 어떤 합의를 도출해내더라도 합의이행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 협상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은 자신들이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이슈가 나오면 이에 집착하면서 협상 상대방을 지키게 하는 전술에 매우 능하다”면서 “BDA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의 합의가 치밀하지 않게 마련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금융문제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불법자금이 포함된 2천500만달러의 자금을 북한에 돌려주는 과정을 보다 세밀하고 전략적으로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인 것이다.

물론 마지막 극적 반전의 기회가 남아있는 만큼 이런 비판의 강도가 강력하지는 않지만 BDA 문제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장애로 작용하거나 북한이 새로운 요구를 제기해 협상 국면이 더 복잡해질 경우 언제든 6자회담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될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 소식통은 “지금이라도 북한의 독특한 논리를 이해하고 또 다시 예기치 않는 돌발상황을 차단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의장국 중국 등과의 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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