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냐?…”우린 특수부대다”

북한에서의 군생활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이제 남한에 와서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북한에서 살 때는 무덤까지 갖고 가야 했던 비밀이 있었다.

때는 1992년 겨울. 인민군 전연(전방) 군단내의 정찰부대들이 동계교방(국군 위장 침투훈련)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속한 조(10명)는 강원도 통천에서 고성까지의 산악지대를 시간당 10km 강행군으로 주파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캄캄한 밤길을 지도로 확인하면서 야간행군을 하고 있었다.

그해 따라 눈은 얼마나 많이 왔는지 강원도 산골짜기는 눈이 허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거기에 세찬 눈보라 땜에 한치 앞도 볼 수 없어 대원들은 지쳐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시간 내 목적지 도착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만약 지휘부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면 동계훈련평가에서 냉혹한 비판과 노동당 입당이나 대학진학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조장을 비롯한 고참 대원들은 명령을 완수하려는 열의가 매우 높은 편이다. 우리 조는 특단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통천-고성 간 고속도로로 내려가 도로를 따라 질러가는 것이었다. 지휘부가 지정해준 산악 길이 아닌 고속도로 행군이라는 변칙을 사용한 것이다.

자동차 운행이 거의 없다시피 한 통천-고성 간 고속도로를 우리가 뛰다시피 하며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눈 앞에 트럭 두 대가 나타났다. 고속도로여서 주변에 갑자기 몸을 숨길 만한 곳도 없고 헤드라이트에 이미 다 노출되었다. 이 순간에 나는 도리어 공세적으로 나가면서 대원들에게 차를 막게 하고 첫 번째 트럭의 운전석 쪽으로 갔다.

5톤짜리 냉동탑차 2대였는데 운전기사가 나를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 그럴까 했더니 우리 조원들이 모두 국군 전투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우린 인민군대이니 겁먹지 마시오” 하고 안심시켰다.

헌데 눈치 빠른 우리 대원들이 벌써 냉동탑차의 뒷문을 열고 위로 올라갔다.

“고급 어종입니다.”

벌써 대원들의 얼굴이 벙글벙글 해진다. 나는 “맛있는 어종으로 몇 상자 부려라”라고 지시했다.

“인민군대가 잘 먹어야 나라를 지킨다”

이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군인 동무, 소속이 어딥네까? 나 정춘실입니다” 라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정춘실’이라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두툼한 솜 동복에 수건을 머리에 두른 웬 아낙이 서 있는 게 아닌가.

북한의 TV와 신문에서 수없이 보았던 자강도 전천군 상업관리소장이며 노력영웅인 정춘실을 알아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일성을 ‘아버지’라 부르고 김정일을 ‘오라버니’로 부르는 유일한 북한 여자이며, 2중 노력영웅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유명한 여자 앞에서 나는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북한 최고의 특수부대 정찰조가 아닌가.

나는 스스로 위안을 하며 이미 저지른 일도 있고 해서 더 세게 치고 나가기로 했다. “쳇 정춘실은 무슨…. 이보십시오. 인민군대가 잘 먹어야 훈련도 잘하고 조국도 통일시킬 게 아닙니까?” 하며 큰소리를 탁 쳤다.

우리 대원들은 기세등등하여 20kg짜리 냉동 물고기판을 20여 개 정도 부려놓았다. 청어, 가자미, 광어, 도루묵 등 없는 게 없었다. 이어 나는 운전기사에게 ‘빨리 떠나라’고 다그치면서, 안 그러면 더 많이 부려놓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고 공포탄까지 두어 발 쐈다.

결국 정춘실과 운전기사는 차를 몰고 원산 방향으로 떠나고 우리는 썰매를 만들어 생선을 싣고 밀고 당기면서 집결지에 도착했다.

고달프고 힘든 정찰훈련장에 갑자기 구수한 생선냄새가 새벽하늘에 퍼져 나갔다. 우리 소대는 며칠 동안 그 생선 덕분에 훈련을 잘 마쳤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정춘실로부터 냉동 물고기를 빼앗은 지 보름쯤 지나서였다. 군단 산하 각 정찰부대들이 집결한 훈련장에 갑자기 인민군 총정치국, 작전국, 보위사령부, 정찰국 등의 합동 검열단이 들이 닥쳤다. 인민군대내 최고의 검열단이다.

합동 검열단은 “몇 날 몇 시경에 통천-고성 간 도로에서 훈련한 애들은 나와라. 다 알고 있으니 순순히 자수하라”고 했다.

우리 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산악 기동훈련을 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물론 우리 조 역시 산악행군을 하여 집결지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 생선을 먹은 우리 소대는 사전에 모두 입 단속을 굳건히 하기로 했기 때문에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검열단은 “남조선군 복장을 하고 훈련한 것이 너희들밖에 더 있느냐?”고 추궁했다. 우리부대 지휘관들은 “그 지역에 다른 경보병 여단과 806훈련소 부대들도 있다. 왜 하필이면 우리보고 그러느냐?”며 끝까지 부인했다.

그런데 아무런 냄새도 못 맡고 검열단이 돌아가면서 하는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정춘실은 그날 목적지인 자강도 전천군까지 가면서 총 3차례에 걸쳐 물고기를 뺏기면서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3차례에 걸친 ‘토벌’에 결국 빈손으로

1차는 우리에게 뺏기고 2차는 원산-평양 고속도로에서 휘발유를 빼앗으려던 군인들한테 당했다고 한다. 금강산발전소 건설에 동원된 군인들은 야밤에 트럭 두 대로 고속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거기에 정춘실이 걸려든 것이었다.

3차는 평양-전천 구간의 경비대 건설부대 애들한테 당했는데, 남은 물고기를 깡그리 빼앗겼다고 한다. 이들은 심지어 냉동탑차의 예비 타이어까지 빼앗아 갔다고 한다. 북한에서 정춘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텅빈 트럭을 끌고 도착한 정춘실은 즉각 노동당 중앙위원회에 정식으로 신소하였다. “어떻게 우리 인민군대가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강력한 검열조사단이 들이닥쳐 해당 사건의 주모자들과 가담자들을 색출하게 됐다.

금강산 발전소 건설부대 녀석들은 두 대의 트럭번호를 기억한 냉동탑차 운전기사 때문에 체포되었고 나머지 녀석들도 다 잡아냈다고 한다. 오로지 우리 쪽에서만 실패한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대략 10여명의 군인들이 군사규율 및 군민관계 훼손행위 등으로 군법에 회부돼 총살형을 당하고 소속부대 지휘관들은 불명예 제대 또는 노동연대 등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그날 밤 함께 사건을 저지른 조원들이 입을 꾹 다문 덕분에 우리 소대는 천만다행으로 불상사를 면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사고뭉치 동료들은 모두 잘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이라도 말할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러울 뿐이다.

이정연/북한군 정찰부대 출신(98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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