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비서 간첩사건 둘러싼 보위부와 보위사령부 암투

남한에 와서 북한 김정일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그런데 북한과 연계해 간첩활동을 한 간첩들에게 징역 5년을 주는 것을 보고 더 놀랐다.


더구나 북한에 들어가 김일성 접견교시를 받고 내려온 조직원이 반국가단체 결성 사실을 증언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용(認容)하지 않았다. 간첩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라도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감청이나 촬영을 했으면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남한에서 간첩을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여전히 간첩을 만들어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3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2009년 9월 보위사령부와 회령시 보위부가 소위 ‘큰(대형) 간첩’ 검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대형간첩은 회령시 유선동 유선병원 당 비서였다. 그가 간첩으로 몰린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유선병원 당비서 딸들이 수십 만원에서 수백만 원의 돈을 아버지에게 보낸 것이 전부다.


북한에서 간첩사건은 국가안전보위부와 보위사령부에서 다룬다. 이를테면 보위부는 이곳의 국정원, 보위사령부는 기무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유선병원 당비서 사건은 중국을 오가는 화교의 신고가 발단이 됐다. 무역업을 하던 한 이 화교가 큰돈이 자주 유선병원 당 비서에게 전달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보위사령부와 회령시 보위부에 동시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보위사령부와 시보위부는 이를 ‘큰 간첩’ 사건으로 간주하고 ‘정치공작’을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간첩 혐의가 나오면 일단 정보원을 접근시켜 장기간 공작을 통해 관련 정보나 인물의 동향을 밀접하게 파악한다. 이것이 남한에서는 불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에서는 가장 정확한 수사기법으로 통한다. 시보위부는 가족 주변에 정보원을 투입시켰고, 보위사령부는 당 비서 본인에게 직접 정보원을 투입했다. 보위부는 신고를 접수하고 이를 ‘등록사건’으로 분류하고 공작을 시작했다. 그러나 보위사령부는 사건 등록을 하지 않고 정보공작을 진행했다.


보위부는 간첩수사 지휘는 보통 도보위부에서 관할한다. 시보위부에서 간첩 동향이 파악되거나 신고가 들어오면 먼저 사건을 등록하고 도보위부에 보고한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서 체포하면 일반사건, 장기간 정보원을 침투시켜 수사를 하면 등록사건으로 간주된다. 시, 군, 구역별로 보위부가 있는데 사건은 이런 구역에 제한을 받지 않고 사건으로 등록한 후 도보위부에 보고하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등록사건 한 건만 처리해도 담당보위지도원이나 간부들은 능력을 높이 평가 받아 출세가 보장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보위부가 유선병원 당비서에게 정보원을 접근시킨 사실을 눈치 챈 보위사령부가 즉시 체포해버렸다. 보위사령부는 이 당비서를 회령시에 있는 ‘백산초소(보위사령부 구류장)’에 감금하고 심문을 진행했다. 당비서가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자 7, 8명의 친척들이 사건에 연루되는 것을 두려워해 그 즉시 탈북했다. 자신은 딸 자식들이 그리워 통화하고, 돈을 받은 것 밖에 없었지만 친척들이 도망가 버리자 당비서는 별다른 항변도 하지 못했다. 보위사령부는 탈북한 사람들까지를 묶어 가족 간첩단 사건으로 만들었다. 당비서의 행방은 가족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눈 앞에 있는 실적 기회를 놓친 시보위부는 먼저 등록한 사건을 빼앗겼다며 국가보위부에 신소를 제기했다. 이후 각 도와 시 구역의 사건들은 그 지역의 보위부의 승인이 있어야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김정일의 방침이 내려졌다. 보위사령부가 임의대로 처리할 수 없도록 한 결정이었다. 당시 사건을 맡고 뒤처리를 담당했던 9군단 ○○여단 보위사령부 부장은 이 사건을 좀 웃기는 사건이라고 비웃었다. 보위부와 보위사령부가 경쟁이 붙어 사건이 커졌지 사실 유선병원 당비서는 간첩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잡으라면 이제라도 수십 명을 잡을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주민들도 “보위사령부와 시 보위부가 건수 올리려고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지금 회령시에는 많은 탈북자 가족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보안원, 당간부, 행정일꾼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한 때 탈북자 가족들이 간부직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간부들의 친인척 가운데 탈북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해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선병원 당 비서도 바로 이런 경우에 속했다. 딸들이 탈북했지만, 간부직을 수행할 사람이 없어 당비서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현실이 이러한 데도 북한 정권을 비호하고 남한 정부를 독재라고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