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만 껴안고 있으면 굶어 죽는다’…”장사가 우리 희망”[2]

질문: 조선(북한) 경제 파탄의 근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립적 민족경제라고 선전돼온 우리 경제는 사실상 국제 ‘사회주의 시장’에 의존해야만 지탱할 수 있는 의존형 경제였다. 이것은 ‘고난의 행군’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당의 강연제강에서도 인정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진영은 간신히 유지되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은 와르샤와(바르샤바)군사조약, 쎄브경제공동체(동구 사회주의 경제협력체) 등으로 하나의 사회주의 진영에 의한 경제, 정치, 군사적 블럭을 형성하고 있었다.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조선이 소련과 중국 두 대국 사이에 끼게 된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은 정치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양 진영에 조선이 가입하지 않게끔 하였다. 그러면서도 조선을 두고 발생하는 중소관계의 대립과 모순을 잘 이용하여 쌍방으로부터의 대조선 원조를 근근이 실현시켰다.

현재 남아있는 발전설비와 공작기계 설비 등 생산시설들 중에는 이시기 사회주의 진영의 원조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일제 때 시설 아니면 70년대에 자본주의 시장에서 구입한 시설이다. 결국 그게 아직도 가동되고 있다.

자원도 중국과 소련으로부터의 원유와 콕스(용광로 사용 고체연료), 콩, 밀가루, 설탕, 면화, 양모, 원목, 농약, 의약원료, 고무, 플라스틱, 합금재료, 암염(巖鹽) 등 전략 물자 수입으로 경제를 유지해 왔다.

80년대부터 사회주의진영 국가들의 개혁, 개방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자 그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조선 경제는 심대한 자체 타격을 먹기 시작했다. 중소의 지원이 갑자기 끊기게 됐다. 교통운수, 전력 등 물질기반의 모든 부문이 사회주의 체계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도상 완전 공급체계(100% 국가공급체계)에 매여 있던 인민경제와 주민생활도 이로 인한 자체 타격을 이길 수 없게 됐다.

질문: 사회주의 진영의 원조 중단이 북한 경제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나?

완전 공급체계만큼 완전한 독재사회는 없다. 정치적으로 완전 독재사회를 수립 운영해 온 조선은 이때부터 그만 자활능력 제로(0)라는 치명적 역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가는 계획경제의 대혼란에 대비한 자체의 완충능력도 준비돼 있지 못했다.

60~70년대까지 전통적 국제주의 원칙을 준수해 온 국제사회주의 진영은 대변동기인 80년대부터 국가별 민족주의로 급격히 전환했다. 종전의 사회주의 국제진영에 기생하여 경제적 공급사회를 전개해 왔던 미숙아형 조선의 소아경제에 그 젖줄이 100% 끊어지고 만 것이었다.

한가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조선 화력발전소들의 대부분이 국내에 매장된 석탄에 의존한 미분고형물 연소보이라(보일러)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지 연료의 구성에 석탄 비중이 많다는 의미일 뿐이다. 기술 원리상 조절 부하시 안정 연소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다량의 중유비말 분사가 절대 필요하다.

교류전력 주파수가 떨어질수록(정격 정상은 초당 60헤르츠인데 발전-부하의 불정합 상태에 따라 그 수치가 내려가는 현상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발전기의 회전수가 떨어진다. 발전소에서는 이때 자동 속도조절기를 분리하고 위험운전을 한다) 로운전(증기보일러 가열로의 운전)은 조절 부하 상태에 놓인다. 이때 중유분사가 요구된다.

이 상황에서 중유가 보장 되지 않으면 설비의 노후화가 가속되고 설비 효률과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져 보이라는 페물로 되고 만다. 그래서 수력 발전이 선호되긴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방대한 건설자금 투자가 목에 걸린다.

그 원가를 낮추려고 인민군대를 동원시키는데 그들은 마구잡이로 토목공사를 벌린다. 태천이나 안변의 실태가 보여 주듯이 수밀 피복공사를 무시한 탓에 낙차가 보장되지 않는 등 불량건설로 인민군대가 건설한 수력발전소들은 재시공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사정들로 해 중소형 수력발전소건설에 편중되고 마나, 그러고 보면 또 수력발전설비의 효율저하와 계절적 가동 의존성, 군중적 건설운동에 의한 낭비로 경제상황 개선은 커녕 더 악화만 된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전통적으로 사회주의 진영 등 국제 관계에 의거해서만 살아 올 수 있었고 그나마 구조적 제동을 받던 조선이 지금 국제적 공조에서 이탈하고 구조개혁에 역행하며 내용이 텅 비고 허황한 ‘우리식 경제’를 부르짖는 행위는 과거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반경제적 행동으로 된다. 우리는 민간에 경제를 양도한 중국의 경험으로부터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

질문: 고난의 행군 시기 당이 보여준 모습은 어땠나?

계명빈: ‘미공급’이라는 국가 권력의 반윤리성으로 하여 일어난 식량난 즉, ‘고난의 행군’시기 사회 참상을 본다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사와 방랑에로 내몰렸고 극단적으로 식인(食人) 현상까지 발로된 것이다.

그러한 윤리 상황에서 경제체계도 여지없이 파괴 당했다. 예금자들로부터 신용을 잃은 조선 중앙은행의 전국 지점들은 실질상 파산하였다(북한에서는 1962년 상업은행이 폐지 되고 모든 일반 예금자들은 발권 은행인 중앙은행에 직접 예금한다). 교통운수망, 전력망 등 사회의 물질 기술적 기반은 최악의 상태로 되였다.

대부분 생산기업소들이 도난으로 설비 파괴와 재고 손실을 당했다. 지배인 이하 전 종업원이 항시적으로 공동재산 절도의 기회를 노리는 비생산적 기업문화 및 기업환경에 전 조선이 빠져 들었다. 인민봉사 위원회 산하 상업과 양정은 변질 마비 되였다.

국가 행정체계에서 중앙과 지방의 신뢰관계가 깨져 중앙은 비상설적 검열 소조를 지방에 상주 혹은 교번 파견하도록 되였다. ‘비정상지역’에 당과 국가가 파견하는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 그루빠(비사그루빠)’조차도 현지의 부패 토착관료들에게 매수 되거나 역으로 뇌물을 요구하고 허위보고를 하는 반국가적 비법 행위에 상습화 되었다.

군인들과 보안원들은 보급물자가 부족해지자 저들의 특권을 이용해 강탈 및 수탈 행위를 일상화 하고 있다. 법적 구속을 받지 않는 보위원들은 마약 장사를 해야만 능력 있는 일꾼으로 평가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절망적인 사태 하에서도 일부 간부들과 당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살인적인 감시체계 속에 아직까지 포로가 돼있다. “붉은기를 지키다가 순직하라”는 인정 사정 없는 조직의 명령에 꼼짝 못하고 복종하는 등 무거운 사회 저기압에 한껏 짓눌려 있다.

질문: 국가가 미공급 사태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자 주민들이 스스로 마련한 대책은 무엇인가?

하지만 눈 여겨 보면 고난의 조선은 비관적이고 암담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제 재생의 출구를 시사하는 희망과 가능성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펼쳐졌다. 장사가 국가 이전에 발생한 인간의 삶의 방식이었으며 우리는 그 무궁무진한 힘을 자기 자신 속에 분명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 부릅뜨고 다들 자각했다.

그전까지 오로지 배급제 밖에 몰라온 인민은 고난의 행군 초기 ‘미공급’의 충격에 쓰러지게 되자 국가 앞에 더더욱 엎드렸다. 당과 국가는 그런 인민대중을 싸늘한 얼굴로 외면했다. 핵심 계층이 내미는 애원의 손길에까지 묵묵부답했고 권력자들은 그 틈을 타서 개인축재에만 더욱 열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만이 붉은기를 안고 굶어 죽고 만다”는 백성의 통곡에 정신이 버쩍 든 듯 했다. 당과 국가의 본색을 깨달은 인민이 분연히 일어 섰다. 당과 국가의 본색을 깨달은 인민들은 장마당으로 달려갔다. 수십 년간 잠들고 있던 백성의 장사귀신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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