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자회 연기…김정일 건강 문제있나?

북한이 9월 상순 개최를 예고했던 노동당대표자회가 ‘상순’의 마지막 날인 15일에도 열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15일 밤 데일리NK와 통화에서 “당대표자회가 오늘도 개최되지 않았다”면서 “조선중앙TV 8시 ‘보도'(뉴스) 시간에도 당대표자회 관련 소식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북한이 지난 6월부터 예고했던 당대표자회가 15일까지 개최되지 않은 것을 두고 북한 내부에 중대한 사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정보당국을 비롯한 정부 주요부서에는 북한의 당대표자회 연기 배경을 분석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날 이산가족 위로방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은 (당대표자회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면서 “수해가 이유일 수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내부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 역시 “오늘까지 당대표자회가 열리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정확한 이유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족수 미달說…위장선전 가능성 높아


대북지원단체 ‘좋은벗들’은 이날 오후 “14일 저녘까지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당대표자회를 연기하기로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수해로 도로가 끊기고 교통이 두절되는 바람에 상당수 지방 대표자들이 평양에 올라오지 못해 회의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은벗들의 이러한 주장은 북한의 위장선전을 여과없이 전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정족수 미달이라면 총원의 1/3이 넘는 당대표들이 평양에 입성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지방대표들이 각 도(道)에 집결한 후 단체로 평양으로 이동하는 관행을 고려하면 최소 2~3개 도당이나 군단(軍團)이 아예 지방에서부터 발이 묶여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사회 인프라가 취약하다 하더라도 주요 철로와 도로가 일시에 복구 불능상태에 빠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과 탈북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김정일의 참여가 예정되어 있는 ‘1호 행사’에 도당이나 군단 차원에서 집단 불참하는 일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고 탈북자들은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당대표자회를 미루다가 내외의 여론을 의식해 임시방편으로 ‘수해’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7호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북한에서 수십 명이 사망하고 주택 8천여 세대가 파손됐으며 교통이 두절되고 철길이 끊겼다는 소식을 15일 오전 뒤늦게 전했다. 당대표자회 연기의 명분쌓기가 아니냐 의혹을 낳았던 대목이다.


수해로 분위기 다운?


수해로 인한 연기설(說) 중 또 다른 하나는 ‘사회 분위기 침체를 감안해 연기했다’는 소식이다.


연합뉴스는 15일 익명을 요구한 대북 소식통을 인용, “북한에 상주하는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북한 당국의 고위관리들로부터 ‘수해 때문에 당대표자회가 연기됐다’는 말을 듣고 알려왔다”고 보도했다.


후계자 김정은이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공식 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던 만큼 최근의 수해로 인한 민심이반 등을 고려해 연기한 것 같다는 해석이다.


남한에 먼저 손을 내밀 정도로 수해 복구가 절박한 상황에서 굳이 후계자 김정은의 공식 데뷰전을 치룰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말 김정일의 방중을 통해 중국과 김정은 후계와 관련된 모종의 합의를 도출했을 경우 김정은 후계 작업에 대한 속도조절은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닐 것으로 관측된다.


원세훈 국정원장 역시 지난 14일 국회 정보위 비공개회의에서 “김정일 방중에서 후계체제를 인정받는 데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은 또 남한의 적십자와 민간단체들이 북한의 수해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수해 피해로 인한 당대표자회 연기 결정이 꼭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당대표자회를 연기할 정도로 물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대외에 암시함으로써, 천안함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렸던 대외관계 상황을 타계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 내부에는 남한의 인도적 지원을 받아 들이는 명분이 되고, 남한 및 외부세계에는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일 건강 이상없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결정서’에 명시됐던 ‘9월 상순’이 지켜지지 않을 만한 특이사안으로는 ‘김정일의 건강 이상’ 밖에 없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특히 북한 선전매체들이 당대표자회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난 12일까지 김정일의 자강도 만포운화공장 현지지도 소식을 보도한 것도 일종의 연막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양강도 내부소식통은 지난 13일 데일리NK와 통화에서 “평양에 머물고 있는 한 당대표로부터 ‘아바이(김정일 지칭 은어)가 많이 아프셔서 대표자회가 미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양강도 사람들은 당대표들이 평양으로 떠난지 일주일이 넘도록 당대표자회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장군님 병이 도졌다’는 말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 건강 이상설은 최근 노동신문 등 북한 선전매체들의 ‘당대표자회 임박’을 암시하는 보도를 꾸준히 내보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이 더해진다.


노동신문은 지난 9일자 사설에서 9월9일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을 자축하며 “올해 공화국 창건 기념일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자 향도자인 조선노동당이 창건된 65돐과 역사적인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맞이한 것으로 하여 더욱 의미있는 명절로 되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 신문은 또 지난 14일에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당 건설 업적을 끝없이 빛내어 나가자’는 제목의 1면 기사에서 “역사적 당 대표자회와 당 창건 65돌이 다가오는 지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당대표자회가 임박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특히 평양에 집결한 당대표자들의 동선이 좀처럼 파악되지 않은 것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부추키고 있다. 최소 1천명에서 최대 2천명 규모로 추산되는 당대표들이 ‘만경대 김일성 생가’ 방문 등 사전 일정을 갖지 않은 점에 비춰볼때 북한 당국이 당대표들을 집단 통제할 만큼의 ‘비상 상황’이 있었던 것 아니냐의 의혹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60주년을 맞아 대규모의 열병식 등이 준비됐던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는 김정일의 와병 때문에 행사 직전에서야  행사가 취소되는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


김정은 등장준비 아직 안됐나?


당대표자회의 목적이 노동당의 최고 수뇌부격인 중앙위원 선출이라는 점에서 향후 김정은의 당내 지위 및 그의 후계를 뒷받침할 간부 인선은 최고의 관심사였다.


때문에 장성택, 오극렬 등 북한의 주요 권력층에 대한 배치 등에 대한 세부조율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실제 지난 2005년 3월 예정됐던 최고인민회의 제11기 3차 회의는 ‘인센티브 제도’ 도입을 놓고  박봉주 당시 내각 총리와 노동당 및 군부 세력 사이에 빚어진 갈등으로 한달 가량 연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노동당 행정부장에 이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오르면서 사실상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지목돼 왔던 장성택의 존재가 당 중앙위원 인선이라는 당대표자회의 핵심 사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도 주목된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 김정은의 지위를 결정하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지만 그외 당중앙위원을 선발하는 것은 복합적인 포석이 필요하다”면서 “김정일 1인 권력만 존재하다 보니 오히려 고위직들의 권력서열을 분명히 구분하는 일이 더 복잡하고 여려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일에 대한 권력집중이 심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김정은을 뒷받침할 간부들의 지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이 나왔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대표자들 귀향해야 정확한 소식 확인될 듯


체크포인트는 평양에 집결했던 당대표자들이 언제 귀향하느냐 여부다. 이들이 평양에서 돌아올 경우 당대표자회와 관련된 정보들이 서서히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당대표자회가 북한의 선전매체들마저 함구할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것인지, 아니면 개최자체가 연기된 것인지 그 모든 속사정이 확인될 전망이다.


양강도 내부소식통은 15일 “지난 6일 평양에 갔던 혜산시당 비서가 14일 혜산시내에 잠깐 얼굴을 내비쳤다가 저녘에 다시 평양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당대표자회를 앞두고 당대표자 100대 서열안에 드는 혜산시당 비서가 잠시 평양을 떠났다는 자체가 심상치 않은 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혜산과 평양은 개인 자동차로도 10시간이 넘는 길”이라면서 “시당 비서의 움직임으로 볼 때 뭔가 중대한 일이 발생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