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자회 後 대북전략’ 논의되고 있는가?

북한이 당대표자회를 개최하긴 하는 모양이다. 21일 조선중앙방송은 ‘조선노동당 대표자회 준비위원회’ 발표를 인용하여 “조선노동당 최고 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조선노동당 대표자회가 2010년 9월 28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열리게 된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그러나 당초 9월 상순에 열기로 했던 당대표자회가 왜 연기되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고위급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에서 당대표자회 같은 대형 정치행사가 연기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최고인민회의가 연기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당대회나 당대표자회에 비길 게 못된다.


지금 북한은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지만, 그래도 형식에서는 공산체제의 잔해가 많이 남아 있는데, 예컨대 대규모 군중동원 식의 대중 조작을 위한 극장형 정치(cinema politika), 그리고 이에 따른 정치선전(propaganda) 같은 것이다. 때문에 당대회나 당대표자회 같은 대형 정치행사가 제때 안 열린 것은 어쨌거나 ‘이상한’ 사건이다.  


만약 정말로 김정일의 건강이 안좋았거나, 예컨대 삐라사건 같은 체제 위해(危害)요인이 호위총국이나 국가안전보위부, 군 보위사령부, 보안부 등에 걸려 ‘상순 개최’가 부득이 연기되었다면,  방송을 통해 연기 사유를 밝힐 수도 없을 것이다. 지도자의 건강문제, 체제 위해요인을 스스로 밝힐 바보 정권은 없을 테니까.


따라서 우리가 여전히 주목해볼 대목은 ‘9월 상순에 열기로 했던 당대표자회가 제 날짜에 개최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북한이 김정일 개인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가 아니라, 국가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라면 적어도 평양에 모였던 대표자들에게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연기한다’고 발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한체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당적(黨的) 시스템에 의한 작동도 거의 파괴되었고, 이에 따라 북한은 통상적인 ‘나라'(국가)이기 보다는 김정일 개인이 대표자로 있는 ‘단체’ 비슷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비유하자면, 조폭단체 두목이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거나 다른 개인적 사정이 발생했다면, 전국의 중간보스들이 다 모이는 전체행사라도 ‘이유 없이’ 연기될 수 있는 것이고, 굳이 그 사유를 공개적으로 밝힐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대표자회 연기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것도 지금의 북한체제 성격으로 볼 때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무슨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구성문제나 개혁개방을 둘러싼 노선갈등 문제라기 보다는, 역시 ‘김정일 개인 사정’ 때문에 이번에 당대표자회가 연기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당대표자회 결과를  두고 보아야겠지만, 우리는 당대표자회 이후 북한 내부정세에 더욱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김정일 건강문제나 김정일에 대한 위해요인 발생 등에 관해 관찰을 잘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은 ‘북한정권이 권력 이양기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권력 이양기의 기본특징은 정권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권력구조가 예컨대 3권분립 등 국가 시스템에 기반한 분립형이 아니라, 완전히 개인독점 형태일수록 권력 이양에 따른 정권 불안정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권력분립형 시스템에서는 어느 한쪽에서 고장이 나도 권력구조 전체를 망가뜨리기가 쉽지 않지만, 완전독점 형태는 일단 한번 고장이 나면 단기간 내 정권 내부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민주적인 선거절차와 정권교체 경험이 전혀 없는 나라일수록 권력 이양기의 내부 갈등은, 어쩌면 거의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 김정일은 주민들에 대해서 과거 김일성과 같은 절대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당대표자회 이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은, 그것의 진폭이 어느 정도이든 간에, 분명히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1980년까지의 6차례 당대회, 1958년, 1966년의 두 차례 당대표자회를 기점으로 북한의 대내외 정책은 그전보다 많이 변했다. 따라서 이번 당대표자회도 대내외 정책의 변화가 시작되는 하나의 분기점이라는 각도에서 봐야 할 것이다.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일은 3대 후계체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 당의 지위와 역할 정상화, 내각 강화, ‘당의 혁명 무력’이라는 군 본연의 역할 중시, 대중관계를 베이스캠프로 한 대외관계 강화 등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내각을 강화한다는 사실은 일정한 한도 내에서 경제 중시, 대외경협 중시와 맥이 닿아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비핵개방3천’이나 ‘그랜드 바겐’ 같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지금부터는 ‘북한의 당대표자회 이후의 권력이양과 대책’이라는 항목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대북정책이 재점검 되어야 한다. 대북정책에서는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부분이 중요한데, 지금까지는 그 ‘남북관계 관리’라는 것이 주로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제하고 6자회담 등 외교적 방식을 통한 이른바 ‘상황 관리’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피동적 방식, 주어진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남북관계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사태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기획 사건’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치면 그때 가서 또 대처하면 되지 뭐’ 하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앞으로 닥쳐올 큰 문제들은 외면하고 국내 정치적으로 얽매어 작은 것에 목숨 거는 일이 허다하다. 


지난 13일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최종보고서를 공개했는데,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국방부의 조사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편’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합쳐 전체 응답자의 40.0%가 군의 최종보고서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이냐?’는 질문에 한나라당 지지층은 79.9%, 민주당 지지층은 42.8%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민노당 지지층은 46.0%가 ‘좌초’ 의견을 보였으며 북한소행으로 보는 의견은 17.7%였다.


천안함 침몰 원인은 무슨 ‘정치적 의견’이 아니라, ‘사실'(fact)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따라서 정당 지지별로 천안함 침몰 원인이 달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는 천안함 침몰 원인조차 ‘정치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굳이 비유하자면, 1+1= 2라는 공리(公理)와 ‘1+1= 정치적으로 볼 때 2가 아니다’는 ‘정견(政見)발표’가 괴상하게 대립되어 있는 형국이다. 서로 대치될 수 없는 문제가 대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냥 ‘우려된다’ ‘걱정된다’는 식으로 볼 게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질환’이라는 각도에서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사태가 이러한데, 앞으로 닥쳐올 북한문제를 어떻게 ‘국민여론을 모아 슬기롭게 대처’해 가겠는가?  


만약 앞으로 우리가 ‘북한문제’라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북한문제를 둘러싼 정쟁(政爭)’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에 혈안이 되어 내부 싸움박질을 계속 할 경우, 북한문제는 우리의 ‘관리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주요 남북관계 현안은 ‘천안함 해결’ ‘6자회담’ ‘식량지원 등 인도주의 문제’ 등이 있는데, 이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것이 당장에 중요하지만, 북한의 당대표자회 이후에 대비한 우리의 대전략(grand strategy)이 정부 내에서 제대로 논의되는 것이 본질적으로 더 중요하다. 


당대표자회 이후의 권력 이양기는 ‘김정일 1인독재 시기’보다 더 불안정해질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이것은 ‘천안함 공격이 북한 소행’이라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객관적 사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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