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 탈북여성, 아르바이트 1년만에 사장된 사연






▲가마솥 순대국 주메뉴인 순대국밥. 김봉섭 기자
올해 들어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1만 8천여 명에 이른다. 그 중  71%가 여성이다. 탈북 여성들의 분투는 스스로의 생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최근에는 천안함사건, 간첩 적발 등으로 남한 사람들에게서 냉대와 싸늘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많은 탈북 여성들은 작지만 의미있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현대시장 사거리를 지나 구암초등학교 쪽으로 조금 가느라면 갖가지 음식점과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 끝자락에 ‘가마솥 순대국집’이 보인다.


50대 초반의 여성이 푸석푸석한 얼굴에 다정한 웃음을 담고 맞아준다. 그녀는 지난 2008년 가을에 하나원을 퇴소, 이 ‘순대국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1년만에 사장이 된 김영숙(51) 씨다. 


북한에는 ‘작아도 고추’란 말이 있다. 이는 김 사장과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수년을 한국에서 생활한 탈북 선배들도 이뤄내지 못한 것을 단 1년사이에 이뤄낸 ‘악돌이’다.


“처음은 이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일하면서 한식과 양식을 가르치는 직업전문학교를 다녔고 요리사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집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 1시간 거리에 있는 학원에 등교해 한식·중식 조리교육을 받았다. 공부가 끝나면 서둘러 ‘순대국’집으로 간다.


일하면서 짬짬이 공부하려니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6개월만에 학원을 졸업하고 요리사 자격시험에 도전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 그녀는 당당한 대한민국 요리사다.


학원공부가 끝나갈 무렵 몸이 좋지 않아 식당문을 닫으려는 사장에게서 식당을 세냈다. 혼자서라도 식당을 운영하고싶은 마음에 일단 세부터 낸 것이다. 한국에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왕초보’가 과연 식당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다.


책상물림에 탈북 후 3국을 거쳐 곧장 남한에 입국해 자본주의 영업분야에 ‘문외한’이 겁도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오기’뿐이다.


독립 이후 음식점은 예상보다 매출이 좋아졌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단골 손님들은 여전히 이 ‘순대국집’을 찾아온다. 물론 여기에는 손님들에게 진심과 정성을 다하는 김 사장의 노력이 담겨있다.


‘어서 오십시오’. 들어서는 손님들에게 김사장이 건네는 인사말은 투박한 북한사투리 그대로다. 이런 그녀에게 향하는 손님들의 물음, ‘혹시 조선족이신가요?’, 그러면 즉시 돌아가는 김사장의 대답 – ‘윗동네서 왔슴다’. 잠시 벙벙해있던 손님이 한참 만에 싱긋 웃으며 ‘아, 북한말씀입니까?’…


그녀의 음식맛과 투박한 북한사투리를 싫어하는 손님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부부가 김사장이 내미는 거스름돈을 사양한다. ‘언니, 다음에 더 잘해주세요’.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김 사장이 꾸벅 인사를 한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사장은 ‘너무 힘들어 집어 던져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해 한푼 두푼 쌓이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그냥 돈이 아니라 노력과 근면의 대가라고 생각하니 너무 뿌듯하다’는 것이 김사장의 생각이다.


‘그렇게 힘든데 탈북을 후회하지 않냐’고 묻자 “목숨과 바꾼 자유인데 후회는 없다. 북한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전해 성공하고싶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탈북자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외면하는 일부 사람들의 편견도 문제지만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탈북자들도 남다른 인내와 의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3년내에 1억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김 사장에게 1억원은 맨 몸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와 이뤄낸 첫 성공신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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