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내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경선직 비례대표(14명) 후보 총사퇴’를 두고 치킨게임 양상으로 마주 달리고 있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이다.
당권파 내 주류인 ‘경기동부연합’ 이정희 공동대표는 9일 부정선거 파문과 관련하여 “(진상조사위의) 전면 재조사가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전국운영위 결정을 반박했다. 경기동부연합 몸통으로 불리는 이석기도 “엄청난 물리적 압박과 탄압이 있더라도 정치적 논리에 의해 사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사퇴불가 배수진을 쳤다.
반면 비당권파는 10일 열리는 전국운영위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의결, 당 쇄신안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12일 당중앙위원회에서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당 안팎에서는 양측간의 전운이 감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 여론뿐만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당권파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다. 특히 이정희 공동대표를 향해 종파의 얼굴을 드러냈다며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당 내외의 불리한 상황에서도 당권파가 결사항전을 고집하는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다고 당 관계자들은 토로한다.
이는 단순히 당 주도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 대표와 주요 보직 선출은 당대회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당원 숫자에서 앞서는 ‘경기동부+광주·전남’ 당권파가 당권을 장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는 지적이다.
당권파 주류가 내심 이석기 사퇴에 명운을 거는 이유는 배후 조직의 수장의 처신이나 의견을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민족해방(NL) 계열의 유일지도적 조직문화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석기 사퇴 찬성은 조직에 대한 배신=이석기 당선자는 당권파의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당선자는 ‘경기동부연합’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관계자들은 그가 경기동부연합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제일 먼저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논쟁을 벌였다고 말해 사실상 배후 조직 존재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당내 기반이 없는 그가 경선 비례대표 선거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도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석기가 이처럼 배후에서 움직이다가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일종의 ‘배후 공개화 전략’을 시도한 것은 과거의 지하조직 방식의 한계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러한 조직 노선에 따라 움직인 대부를 조직원들이 지켜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진다.
구 민혁당 관계자는 “민족해방(NL) 계열의 조직운영 논리상 하급 조직원은 지도부의 결정을 관철시키는 것은 기본적인 룰”이라며 “이석기가 공개화 됐기 때문에 다시 배후 역할을 하기도 어렵다. 경기동부가 지도선 공백 현상을 불러올 위기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패권, 부정세력’으로 낙인 찍힐 우려=구 민노당이 2008년 분당(分黨) 사태를 겪었던 이유는 바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였다. 당권파들 심리에 ‘우리는 무조건 선이다’는 의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부정선거 세력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조직 성원들이 우월의식과 패권의식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부정선거를 인정하며 향후 ‘부정세력’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점도 당권파들의 일보 후퇴를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내 엘리트주의에 무장된 그룹이 실패를 인정하게 되면 내부적으로는 패배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허현준 남북청년행동 사무처장은 “종북주의 밑에는 종북 지하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조직적으로 패권을 잡으려는 패권주의와 직결된다”며 비당권파들을 패권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보고 있다고 해석했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민노당 정책위의장 시절 “보통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다가도 수령제, 북한인권 등 북한체제 비판만 나오면 몸을 던져서 막을 정도”라며 “자기들의 특별한 교리를 가지고 있는 유사 종교집단화 모습”이라고 말했다.
◆벼랑끝 전술로 비당권파 타협 유도=당권파나 비당권파나 이번 사태로 분당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진상조사위의 “전면 재조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당내가 화합할 가능성 굉장히 적어질 것”이라면서도 “분당은 없을 것”이라며 타협의 여지를 열어뒀다.
당권파는 오는 12일 열리는 당중앙위에서 비례대표 당선자 사퇴 결정이냐도 이를 강제할 법적 근거는 없다. 비당권파가 이를 문제 삼아 탈당하기도 쉽지 않다. 곧바로 대선이 있는 마당에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권파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버틸 가능성이 적지 않다.
허 사무처장은 당중앙위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비당권파가 물러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양보할 수 있는 카드도 없다”며 “당권파들이 어느 선까지 물러나는가를 두고 일정한 타협점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