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라선 경제특구에 건설 중인 새로운 살림집 소유권을 개인에게 유상으로 분양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분양가를 시세보다 훨씬 높게 산정한 데다 일시 납부만 가능하도록 해 당장 부족한 외화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평가된다.
내부 소식통은 11일 데일리NK에 “중앙당에서 라선 지역에 새로 건설하는 살림집을 유상으로 공급하겠다는 지시를 하달했다”며 “핵심 요지는 현재 거주 중인 집이 아니라 새로 건축되는 살림집을 유상으로 분양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지시는 지난 7월 말 하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북한 당국이 소유권을 판매하는 라선 살림집 가격은 위치나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로, 최고가는 중국 돈으로 1천만 위안(16억 545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약 9억 원)보다 비싼 것으로, 북한의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소식통은 “최고가에 해당하는 살림집의 경우 붙받이장, 주방 싱크대 등 내부 인테리어까지 모두 완료된 집들”이라며 “그동안 조선(북한)의 살림집에서 보여왔던 중국식 인테리어가 아니라 유럽풍으로 내부를 꾸며 놓았으며 여러가지 구조 중 구매자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분양금은 상당히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소식통은 “분양금은 외화로 내야 하고 할부는 불가하다”며 “어떻게 이렇게 큰 돈을 한 번에 낼 수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국은 라선은 물론이고 평양과 신의주 등지에 이 같은 거액의 자금을 일시에 지불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라선에 거주하는 외국인 투자자도 소유권을 살 수 있다”며 “당국은 라선 시민과 외국인에게 80%를 분양하고 나머지 20%는 평양이나 신의주 등 타 지역 사람들에게 분양한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즉 경제력이 있다면 누구든지 주택 소유권을 매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주택 소유권 양도는 비교적 간단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된다. 소유권 양도에 따른 자금 관리는 중앙당 조직지도부에서 파견된 지도소조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주택 소유권을 사려는 개인이 분양금을 지도소조를 통해 결제한 뒤 영수증을 라선특구 행정위원회 산하 국토관리부에 제출하고 ‘살림집 이용 허가증’을 받으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북한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살림집의 계획과 건설, 공급 및 관리를 하도록 돼 있다. 북한에서도 1990년 경제난 이후 주택 시장이 형성돼 주택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소유권이 아니라 국가가 부여한 ‘주택 사용권’을 매매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라선경제특구의 경우 지난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제209호 결정에 따라 외국인을 포함한 북한 주민 개인에게 주택 소유와 상속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법률화했다. 이 같은 결정으로 올 초부터 일부 기존 살림집에 대한 소유권 양도 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이번 라선특구에서 추진 중인 새로운 살림집에 대한 개인 사유화는 건설 단계부터 돈주(錢主)의 투자를 제한하고 당국이 직접 계획, 건설, 관리, 분양하면서 당국의 이익을 최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살림집 건설의 경우 돈주가 투자 비용을 대고 당국으로부터 ‘주택 사용권’을 받아 직접 매매하는 방식으로 차익을 챙겼으나 라선에서 새롭게 건설되는 살림집의 경우 돈주가 건설 비용을 대기는 했지만 당국이 건설 후 투자 원금과 약간의 이자를 다시 돌려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보통은 돈주가 건설비용을 대고 입주권을 받지만 이런 라선의 경우 돈주가 돈을 대긴 하지만 원금에 이자만 돌려받고 돈주와의 계약은 끝낸다”며 “당국이 개인에게 직접 분양을 하면서 더 많은 돈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당국이 분양가를 시세보다 높게 책정하고 일시 납부만 가능하게 해 당국이 당장 필요한 외화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식통은 “이 같은 정책의 의도는 외화난에 빠져 있는 당국이 간부 및 부유층을 비롯해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 축적된 상당량의 자금을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외국인도 주택 투자가 가능하게 함으로서 폐쇄국가가 아니라 정상국가임을 과시하려는 전략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지시에 대해 라선 주민들 사이에선 긍정, 부정적인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소식통은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내 것’이라는 소유 관념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주민들은 이런 주택 사유화 정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주민들은 ‘이걸 누가 보장해 주는냐’고 지적한다. ‘향후에 당국이 불순분자라는 틀을 씌워서 집을 빼앗아가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