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자 “소설같은 얘기 진행될것”

제4차 6자회담에서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가 협상타결을 위해 발휘할 수 있는 ‘재량권’은 어디까지 일까.

이 처럼 힐 대표의 재량권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은 북미가 서로의 견해차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기위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힐 대표의 운신 폭에 따라 회담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힐 대표는 이번 제4차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9일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베이징에서 전격 회동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는 등 1∼3차 회담 미측 수석대표였던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의 위상과는 대조를 이루었다.

켈리 전 차관보는 6자회담 당시 협상과정을 시시각각 보고하며 일일이 훈령을 받을 정도로 전혀 운신의 폭이 없었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힐 대표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북한 설득을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힐 대표의 재량권이 어느 정도인 지는 이번 회담에서 북미간 양자접촉의 빈도와 질적 내용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3차 6자회담 까지만 해도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접촉을 철저히 꺼렸지만 힐 대표는 이번 회담에서 29일까지 김계관 수석대표와 닷새 동안 모두 4번을 만났다.

또 그 성격도 단순한 접촉이 아니라 이번에는 무엇인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자는 의욕적인 태도를 보이며 모든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협상’을 하고 있다.

힐 대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체어맨 김’이라고 호칭한 것은 물론, 28일 24시간내에 합의문 초안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도 재량권에 기초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힐 대사에 대해 “이번 회담의 특징을 정리하면 전체회의 한 두번하고 나머지는 전부 양자접촉이다. 이는 북한이 원하던 것으로 과거와는 180도 다른 것”이라며 “힐 대표가 최대한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힐이 ‘플레이어’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힐 대표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워싱턴도 밀어주고 있다. 여하튼 재량권이 많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힐 대표가 부시 대통령 등의 신임을 바탕으로 상당폭의 재량권을 위임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부시 정부가 이미 설정한 일정한 틀내에서의 재량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대북 접촉에서 재량권을 최대한 발휘, 유연한 협상을 이끌어 나가려고 하고는 있으나 워싱턴내 대북 강경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북핵 문제 해결에 상당한 의지를 가진 힐 대표가 회담 자체를 껄끄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한국 정부의 바람과도 배치되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끄집어 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힐 대표의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은 우리보다 의사 결정과정이 복잡하다. 협상대표가 갖는 영역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6자회담은 한미동맹 및 동북아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힐 대표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소설같은 얘기가 진행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힐 수석대표의 재량권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고 말해 그의 ‘잠재력’을 기대했다.

“훈령만 읽는 협상자가 되지는 않겠다”는 힐 차관보의 공언이 이번 4차 6자회담에서 어떤 결과물을 끌어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