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도 세운다…北 국가안전보위부는 어떤 곳?

▲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외국 정보기관의 정보요원과 이들의 조종을 받은 첩자를 체포했다며 5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연합

5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가 북한 내 중요한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외국인 간첩과 북한주민들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보위부는 한국의 국정원과 같이 국내외 정보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다. 김일성 부자의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주민의 사상과 동향을 감시하며 반체제사범 색출과 김일성 부자에 대한 비방사건 수사를 전담한다.

보위부는 또 체포된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정치범수용소 관리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반탐(反探)업무 즉 대간첩 업무와 해외정보의 수집, 해외공작 임무를 수행하고 국경경비 및 출입국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1945년 11월 19일 김일성이 평안남도 남포시에 있는 ‘보안 간부 훈련소’를 현지지도 했다고 하여 이 날을 창설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8·15 광복 직후인 1947년 2월 북조선인민위원회 보안국으로 출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보위부는 정권 수립과 함께 내무성으로 이관되어 특수정보처로 있다가 이후 정치보위국으로 개칭, 1951년 신설된 사회안전성(경찰) 산하로 흡수되었다. 1952년 10월 다시 내무성으로 이관되고 1962년 10월 사회안전성으로 복귀하였다. 보위부는 1973년까지 사회안전부 소속이었다.

이후 김정일의 후계자 내정 시기인 73년 5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사회안전부의 기능 가운데 정치 보위에 관한 부문만 분리하여 국가정치보위부로 탈바꿈하였다.

이후 초대 보위부장인 김병하가 애매한 군중을 처형하는 것은 물론 당 위에 군림하여 당과 대중을 이탈시켰다는 이유로 처형되면서 1982년 ‘정치’를 뺏기고 국가보위부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 1993년 다시 지금의 국가안전보위부로 승격되었다. 일각에서는 1990년 국가보위부 창립 45돌을 맞이하며 국가안전보위부로 승격됐다는 설이 있다.

보위부는 1962년부터 1973년까지 사회안전성 정치보위국으로 있으면서 간첩, 反체제 인사 색출과 검거 및 대남공작을 주도해왔다.

정치보위국은1967년~68년 내각 부수상 박금철, 前여맹위원장 박정애, 무력상 김창봉 등 이른바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들을 숙청했다. 1970년대까지 김일성의 정적들과 적대계층 6천여 명을 처형하였고, 7만 여명의 정치범들을 집단수용소에 감금하여 관리했다.

1973년 5월 국가정치보위부가 독자적인 정보기관으로 출범하여 1980년대 초까지 김 부자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사건, 반동 선전선동죄에 대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처벌하였다.

보위부의 사업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김 부자의 지위와 신변을 최고의 수준에서 안전하게 보장하는 것이다. 김 부자에 대한 근접경호는 3개 대대로 구성된 호위총국의 친위대와 지방시찰시 테러분자 색출을 위한 국가안전보위부의 5총국(행사총국이라 함)이 맡아 수행한다.

보위부는 북한의 유일한 정보기관이면서도 해외첩보 수집이나 대남공작보다 북한의 세습체제 보위를 가장 주된 임무로 하고 있다. 대남공작은 속칭 ‘3호 청사’로 불리는 통일전선부, 사회문화부(대외연락부), 작전부와 35호실(대외정보조사부)에서 진행한다.

이에 따라 보위부는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과 제도에 반항하는 사람 등을 위험대상으로 선정,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5일 외국인 간첩 사건을 ‘공화국 체제위협’ 사건으로 간주하고 보위부에서 발표한 것이다.

지금 북한은 노동당의 권위가 떨어지면서 국가안전보위부의 김정일 정권 보위 역할이 더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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