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와병 1년> 단기대북정책 무용론 경계해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질환으로 쓰러진지 1년이 돼가면서 이른바 `김정일 건강 변수’에 대한 대책도 화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작년 8월 중순 뇌졸중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와병설은 작년 9월 정권수립 60주년 기념일(9.9절) 불참을 계기로 본격 제기됐고 이제는 정설로 굳어졌다.

김 위원장의 건강 변수는 결국 북한에서 현재 김 위원장이 가진 독보적 리더십의 변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가 각별히 신경을 쓰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전문가들은 작년 건강 이상설 제기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을 되짚어보면서 몇가지 `고언’을 내놓고 있다.

우선 김정일 와병설이 ‘단기 대북정책 무용론’으로 연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모든 북한의 정책이 김정일의 와병에서 비롯된 것으로, 우리가 할 일은 없다는 식의 자세는 경계해야한다는 것이다.

작년 `와병설’이 제기된 이후 국내에서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정도에 비례해 현재 `김정일 영도’하의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대북정책의 `무용론’이 힘을 얻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후계자’의 권력기반을 조기에 확보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북한이 대남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로서는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식의 인식이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일부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4일 김 위원장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일행을 직접 만나 건재를 과시하면서 김위원장의 결단 하에 전개될 북.미간 `담판’과 그에 따른 한반도 정세의 변화 가능성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즉 대북정책의 포커스를 `포스트 김정일’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힘이 빠진 반면 오바마-김정일이 만들 정세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커진 것이다.

그런 만큼 가변성이 큰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단기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정일 와병’ 1년의 교훈 중 하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9일 “김 위원장이 사망한 후 북한이 조기 붕괴의 길로 나갈지,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운을 중심으로 내구력을 보일지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김정일 건강 변수가 단기 대북정책 무용론으로 연결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건강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전보다 조급해진 것은 사실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알려졌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게 이번 클린턴 방북에서 확인된 이상 북한이 당분간 정상적으로 갈 것이라는 전제하에 차분하고 냉정하게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철저하고도 은밀하게 대비하되, 그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과 급변사태 등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작년 김 위원장 와병설이 제기된 후 “김 위원장 건강이 칫솔질을 할 수 있을 정도”라는 당국자의 민감한 발언이 알려짐으로써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초래되고 대북정보 수집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그런 만큼 `상생.공영’과 `원칙있는 포용정책’을 표방하는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북이 알게 하려면 그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최고 지도자의 건강 문제와 급변사태 등에 대해서는 `조용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정부 관계자는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는 과거 각 정권별로 그 수준은 달랐지만 계속 해왔던 작업”이라며 “이 작업은 민감성 때문에 절대적으로 은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건강이상’을 `김 위원장 조기 사망-북한 붕괴-자동적인 남북통일’로 연결짓는 단선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의 여러 변화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되, 남북관계도 현재의 긴장국면을 조기에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지적과 맥이 닿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 헌법이 북한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지만 급변 사태시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국제사회에서 그것이 존중될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며 “한중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통일된 한국이 `친미반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중국에 심는 한편 북한 붕괴때 미.중이 중심이 돼 한반도 운명을 좌지우지하지 않게끔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우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전직 통일부 간부는 “만약 북한에 급변사태가 오더라도 남북한 주도로 통일될지 여부에는 북한 주민들의 결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급변사태 대비를 하면서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우리가 통일에 대비,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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