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對)이란 제재를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란 핵무기 개발 커넥션 의혹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이 미사일 기술뿐 아니라 고농축우라늄(HEU) 기술까지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우리 정부에 대(對)이란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는 별개의 사안이 아닌 직결된 문제로 보고 있다.
이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기술이 성공단계에 이른 상태에서 북한으로 이전되면 북한의 플루토늄 핵무기뿐 아니라 우라늄 핵무기도 미국이 통제해야 하는 최악을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5월 이란이 최소 5.7kg의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일 방한한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차관보가 “이란과 북한의 행동으로 인해 둘은 연계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부 고위 소식통도 최근 “북한이 이란에 미사일 기술을 수출했다면 반대로 이란이 우라늄 농축 기술을 북한에 수출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선 외교통상부 대변인도 7일 “북한과 이란간의 WMD 협력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북한은 핵개발을 위해 플루토늄 추출과 함께 HEU프로그램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전문가들은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는 소형이어서 은닉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농축시설도 분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HEU프로그램을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3월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북한은 30~40㎏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HEU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6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2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반발하면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에 착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정부는 UEP는 핵무기 제조를 위한 ‘고농축우라늄’의 가능성과 연구용 ‘저농축우라늄’의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지만 HEU프로그램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우라늄 농축기술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여럿이지만 북한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공유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좁혀진다. 이중 이란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개발용이라며 북한과 ‘닮은 꼴’ 주장을 펴며, 우라늄 농축을 적극화하고 있는 만큼 미국은 이란-북한의 핵(核)커넥션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이란과 북한은 1983년 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상호지원협정을 체결한 뒤 미사일 개발 분야 등에서 적극적인 군사협력을 해오고 있으며, 핵무기 관련해서도 양국간 기술공유 등 협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1997년까지 노동2호 등 구소련의 스커드미사일 수백기를 개량해 이란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천안함 공격에 이용된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은 이란이 보유한 ‘가디르급’과 동형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1990년대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 20여 개를 파키스탄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핵무기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하려면 수천대의 원심분리기가 필요한 만큼 우라늄 핵개발을 진전시키기 위해 이란과 접촉해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4년 일본의 산케이신문은 북한과 이란이 우라늄 농축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북한에 원심분리기 제조시설을 공동으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여전히 이란은 북한과의 핵커넥션을 부정하고 있다. 모하마드 레자 바크티아리 주한 이란대사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우리 고유의 핵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이란과 북한 간에 정상적인 양자관계가 있지만 핵뿐만 아니라 미사일과 관련해서도 특별한 협력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HEU 기술이 일정정도의 수준에 도달했으나 농축시설을 갖추지 못해 HEU계획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이란과 협력했을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상황이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기술의 원천은 파키스탄이고 북한이 파키스탄에서 원심분리기를 들어왔다는 점에서 이란-파키스탄-북한 3국간의 커넥션은 이미 있어왔다”면서 “이란이 현재까지 우라늄 농축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북한도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북-이란 핵커넥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사회에서 서방 국가들이 북한에게 우라늄 농축기술 이전을 꺼린다는 점에서 북-이란간 서로 부족한 기술을 공유하는 등 상호보완적인 관계일 개연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물론 북한도 어느 정도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기기 기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이란으로 기술이 이전될 수 있고 북한은 원심분리기의 원료를 이란에서 들여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도 “유엔 안보리의 1718과 1874가 발동되기 전에는 북한에 대한 감시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북-이란간 미사일 거래를 비롯해 우라늄 농축 기술에 관한 협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근래들어 이란에서 북한으로 HEU 기술이 이전될 가능성은 낮으나, 과거 북-이란간 미사일 개발에 관련해서는 서로 협력을 해왔다는 점에서 눈여겨 봐야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