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알 퍼거슨 교수 “美는 ‘리버럴 제국’에 걸맞은 역할해야”

(동아일보 2006-01-23)
《“미국은 제국(帝國·empire)이다.” 영국 출신의 신예 역사학자인 니알 퍼거슨(41)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언뜻 미국을 비판하는 좌파 진영의 발언인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제국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자기 역할을 계속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질서에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퍼거슨 교수는 이처럼 파격적이고 때로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견해를 펴는 데 거침이 없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에서는 그에 대해 “미국 중심주의와 강대국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영국 출신이면서도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던 독일을 좀 더 포용했더라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현재 휴가차 영국에 머물고 있는 그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가 보는 미국의 역할, 중국과 유럽연합(EU)의 미래, 부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조건 등을 들어 보았다.》

― 저서에서 미국이 ‘리버럴 제국(liberal empire·자유민주주의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내가 말하는 리버럴 제국은 시장경제, 법의 지배, 민주주의를 외국에 전파하려는 의지를 가진 강대국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제국에 대해 리버럴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한국은 35년간 일본 제국주의가 가져다 준 고통을 경험했기 때문에 리버럴하지 않은 제국이 얼마나 나쁜지를 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은 어떤 국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가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19세기 영국이 이 같은 역할을 했고 로마제국도 어떤 점에서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바로 그런 점이 ‘미국제국’의 이상한 점이다. 미국인들은 제국으로서의 아메리카를 부정한다. 국제 문제에 관여할 때도 압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단순히 해방시키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예로 들어 보자.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도 미국은 2∼4년 만에 이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독, 일본, 한국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모두 전쟁의 참화를 딛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이보다 훨씬 더 걸렸다.”

― 이라크를 보면 총선이 실시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라크인 다수는 사담 후세인이 축출된 것을 반기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미군이 가능한 한 빨리 철수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조기 철수하면 이라크가 내전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이라크 군대와 경찰을 빨리 훈련시켜야 하고, 이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는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

―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마치 대량살상무기(WMD)가 있는 것처럼 국민을 오도했다는 비판도 많다.

“나는 원래부터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에 존재한다는 주장에 대해 의심했기 때문에 전쟁을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세인은 제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역 안정과 이라크 국민에게 위협이었다. 그는 이미 12년 전에 제거됐어야 했다. 이라크에서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중동)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들어선 정부가 꼭 친미(親美)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 역사를 보면 모든 제국은 흥망성쇠를 겪었다. 미국 헤게모니가 얼마나 갈 것으로 보나.

“아무도 모른다. 로마제국은 1000년 동안 계속된 반면 나치는 12년에 그쳤다. 미국 헤게모니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결국 미국인이 강대국으로서의 의무를 얼마나 기꺼이 부담할지에 달려 있다. 물론 미국이 그런 위치를 원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 중국이나 EU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과거 냉전시대에는 소련이 미국에 위협이었다. 중국이 그 정도까지 부상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20∼30년 안에는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EU는 무시해도 된다. 무역 블록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역 협상 때를 제외하고 미국의 대항세력이 될 가능성은 없다.”

― 아시아 지역에서 느끼는 ‘중국의 힘’은 다르다.

“내 느낌은 경제적으로 기적을 이룩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경험했듯이 중국도 조만간 금융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로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 체제 전체에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많은 사회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 같은 대표적 도시를 한 발짝만 벗어나 보면 중국이 직면한 문제를 느낄 수 있다. 또 중국은 여전히 계획경제에 의해 움직이는 일당 국가체제이다. 재산권에 대한 개념도 이제 형성되는 단계다. 이런 체제가 미국을 추월하기는 어렵다.”

―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정학적 위치도, 종교도 아니다. 자연자원도 아니다. 정답은 올바른 제도이다. 특히 부패하지 않은 행정부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안정적인 금융시장과 자금의 원활한 흐름, 궁극적으로 정부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세계화 물결이 거세다. 세계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나. 혹시 위험 요소는 없나.

“세계화는 1914년 붕괴됐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조금씩 복원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전히 취약하다. 정치적인 위기가 세계화에 큰 위험 요소이다. 예를 들어 대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거나 미국이 중동에서 이란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 역사가 진보한다고 보나. 역사를 결정하는 요인은 뭐라고 보나.

“세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앞으로 움직인다. 그것이 전부다. 20세기는 과학적인 진보가 때로는 최악의 폭력과 잔인함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을 예로 들 수 있다.”

― 한국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사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언젠가 꼭 방문하고 싶다. 현재 내가 준비하고 있는 책은 일본제국의 몰락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강대국에 ‘적극적 행동’ 요구, 비판 받기도

미국 경제가 한없이 추락하던 1988년 미국 사회를 뒤흔들던 책이 있었다.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쓴 ‘강대국의 흥망’이 바로 그 책이었다. 미국이 지나친 확장정책으로 쇠락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니알 퍼거슨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거꾸로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역할에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는 ‘현금의 지배’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케네디 교수 같은 ‘거물들’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미국의 역할론을 강조해 학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경제사가 전공인 그는 국제사회엔 ‘선의(善意)’를 가진 강대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 진보적인 시각을 대변하는 신문인 가디언은 그를 가리켜 ‘미국 우파의 대변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 놈 촘스키 교수도 “퍼거슨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가 인도인에게 좋았다는 의미인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퍼거슨 교수는 이에 대해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무기가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가면 인류에 재앙이 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미국과 같은 ‘리버럴 제국’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반박한다. 한국에서는 ‘현금의 지배’가 번역돼 나와 있다.

―니알 퍼거슨은…

△1964년 스코틀랜드 출생 △1985년 옥스퍼드 마그달렌칼리지 최우등 졸업 △1989년 케임브리지대 크리스트칼리지 연구원 △1992년 옥스퍼드대 지저스칼리지 현대사 개인전담 지도교수 △2000년 옥스퍼드대 정치 및 금융사 교수 △2002년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금융사 담당) △2004년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 △2005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 선정 ‘최고 지성 100인’ △주요 저서: ‘제국-영국 세계질서의 흥망과 강대국을 위한 교훈(Empire: The Rise and Fall of the British World Order and the Lessons for Global Power)’, ‘현금의 지배(The Cash Nexus)’, ‘거인-미국 제국의 대가(Colossus-The Price of American Emp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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