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플라톤의 탄식과 대한민국 3류 건달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노년에 장탄식을 내뱉는다.

“……이집트에서는 아주 어린아이들이 할 수 있는 산술 게임이 고안되었다. 이집트의 아이들은 그 게임을 즐기며 재미 있게 배운다. 나는 노년에 와서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무지함에 놀랐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인간보다는 돼지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포함해 모든 그리스인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플라톤 ‘법률’ 7권 중).

노년에 든 플라톤이 이웃나라 이집트는 어려서부터 알파벳도 배우고 수학도 열심히 하는데, 우리 그리스 사람들은 너무 공부를 안한다고 탄식한 것이다.

나이 든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 걱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돼지에 더 가깝다’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플라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플라톤은 그래서 ‘그리스의 모든 자유인은 배워야 한다’며 사람들을 많이 질책했다.

플라톤이 크게 열받는(?) 바람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리스, 로마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조선 정조 때의 문인 유한준은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보이는데, 그때 가서 보이는 것은 그 이전과 다르리라’고 했다.

사실이 그런 것 같다. 사물과 현상은 아는 만큼 보이게 되어 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수준만큼, 대학총장은 대학총장의 수준만큼 보이고, 자기 수준에서 보이는 만큼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헤겔은 ‘자유란 인식된 필연’이라고 했다. 철학자가 아닌 ‘필자의 수준’에서는, 그 사물을 알게 되면 그 사물의 필연성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 사물의 필연성을 알게되면 그 사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으로 해석해본다. ‘물’이라는 사물의 필연성을 알게 되면 물에 빠지면 위험하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물의 필연성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물을 모르면 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북한문제는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문제

고백하자면, 필자는 학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농담이지만, 대체로 모르는 것도 없고 또 대체로 제대로 아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신문사 기자 노릇을 하면서 눈치밥으로 때려잡은 게 하나 있다. 박사과정이나 포스닥(박사후 과정)을 끝내고 10년 내의 학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해서 받아보면, 대체로 그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 말도 어렵게 한다. 왜 그럴까. 알긴 아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큰 학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큰 학자들의 공통성은 사물과 현상을 그대로 꿰뚫어보면서 아주 쉽게 말하고, 아주 쉽게 글을 쓴다.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을 이룬 대가들은 대체로 그런 공통성이 있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필자의 주변에서는 황장엽 선생과 안병직 선생이 일가를 이룬 대학자로 보인다.

황장엽 철학(인간중심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사실 어렵다. 고생 좀 해야 그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철학 저서에 나오는 문체와 어휘는 매우 검박(儉薄)하고 일체의 꾸밈이 없다. 그림으로 치면 모든 색깔을 없앤 묵화와 비슷하다. 필자는 그런 소박한 어휘들로 어떻게 그렇게 큰 철학의 대문을 열어젖혔는지 한때는 불가사의하다는 생각도 했다.

필자는 글이란 그 사람의 정신적 지문(指紋)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큰 학자의 글은 크고 분명한 지문이 나오고 작은 학자들은 작고 어수선한 지문이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실력은 별로 없으면서 운은 억세게 좋은 편이어서, 정부산하 연구소에서 황장엽 선생으로부터 그의 철학과 마르크스주의, 북한 문제들을 가까이서 공부하는 호사(好事)를 6년간이나 누렸다.

나는 큰 학자들의 말과 글이 쉽고 명쾌한 이유는 그 분들이 사고하는 방식이 인간이 살아가는 문제, 인간의 사회적 생활과 철저히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과학 국제관계 등등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문제와 철저히 결부되지 않으면 결국 뜬구름 잡는 이야기밖에 안 나온다.

그분들의 말과 글이 쉽고 명쾌한 또 하나의 이유를 들라면 쓸데없는 데 욕심이 없고, 정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직한 사람들의 글은 대체로 이해하기 쉽다. 글을 잘 쓰고 못쓰는 문제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북한문제 해결에 ‘고졸’이 무슨 상관인가?

그러면, 꼭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만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는가. 소위 학력이란 게 중요하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어렵고 가난하던 시기에 우리의 부모들은 누구나 인내하고 근면한 생활을 했다. 그 시기 대한민국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대체로 소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어려운 시기를 헤쳐가는 지혜는 놀라웠다. 학창시절 어느 순간 어머니의 숨겨진 지혜를 발견하고 코끝이 찡했던 경험, 어느날 혼자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두 어깨가 태산보다도 더 무겁고 커 보이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부모님들의 지혜는 삶을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지, 책 읽고 나온 게 아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것도 한 가정을 운영하는 것과 공통성이 있다. 공부 많이 했다고 꼭 유능한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다. 학력과 상관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국정을 잘못 운영하자, 한나라당의 속칭 명문대 나온 어느 여성 의원이 ‘대통령은 그래도 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힐난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여성 의원이 무식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하는데 상고를 나왔건, 일제 때 소학교를 나왔건 큰 문제가 이니다. 핵심은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느냐이며, 그 능력을 높이기 위해 책 공부와 인생공부와 사회공부, 세계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졸업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든 박사학위 인증서든 대체로 원료는 ‘펄프’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뇌 세포속에 얼마나 잘 훈련되고 통찰력 있는 컨텐츠가 많이 들어 있느냐이다.

무슨 문제가 됐든, 그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면 해결책이 보인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 우리의 어머니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밤이고 낮이고 고민했다. 그래서 현실에서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았다. 공부하는 사람도 비슷할 것이다. 오죽 하면 어느 화학자는 밤이고 낮이고 벤젠의 분자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길래, 어느날 잠자다가 갑자기 벤젠의 구조를 보았겠는가.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에 북한문제, 남북문제를 풀어보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안 했는지, 이번 정상회담 기간 중에 그 몸뚱아리가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노대통령은 4일 저녁 도라산 국민보고대회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것이 진정 일정한 의미를 담은 인간의 ‘말'(言)인가, 아니면 생물학적 유기체가 순간 뱉은 ‘발성(發聲) 또는 ‘공기의 파동’인가.

모든 북한문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핵심 과제이다. 또 끝내 실패로 증명되었지만 9년 전 김대중 전대통령이 햇볕정책 시동을 걸면서 내놓은 선전문구도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이다. 그런데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문제라니? 대통령 직(職)에 대해 미안한 표현이지만, 도대체 ‘제 정신’으로 한 말인지 황당하기만 하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방북 기간중 한 말과 행동을 보면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 이미 신념화된 것이 아닌가 강력히 의심되는 대목이 있다.

노대통령은 만수대의사당 방명록에서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고 썼다. 또 서해갑문을 참관하면서 ‘인민은 위대하다’고 서명했다.

필자는 처음에 김정일 수령독재 정권을 빙 둘러서 비판한 것으로 착각했다가, 나중에 비로소 노대통령이 진짜로 만수대의사당을 인민이 주인인 ‘의회’로 생각하고 있으며, 서해갑문이 진정으로 ‘인민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노대통령의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정말로 이 정도라면, 그는 나이만 60세가 넘었지, 흔히 하는 말로 80년대 ‘단무지'(단순 무식 지x발광)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러니까 노대통령이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일’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이미 신념화됐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설사 그런 말이 그냥 김정일에게 던져준 ‘립 서비스’였다면 북한 인민에 대해서는 모욕을 준 것이다. 막말로 ‘북한 인민들이야 굶어뒈지든지 말든지 수령독재정권이 알아서 해라’는 뜻 아닌가?

‘변태 좌파’들과 ‘3류 학삐리’

필자는 노대통령이 이같은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그동안 국제주의 서구 좌파가 아닌 남한 땅에서만 ‘서식’하는 ‘친김정일 맹동 변태좌파’들, 그리고 학벌과 학력만 그럴싸한 ‘3류 학삐리’들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노대통령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수구보수’- ‘진보’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서, ‘쟤(보수)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무조건 나쁜 것이야’라는 생각이 내면화된 것 같다. 그러니까 노대통령의 뇌세포는 옳고 그름(是非)을 분별한 뒤 ‘옳음’ 쪽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작용하지 않고, 즉 실체적 진실이냐 거짓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한 내에서 ‘내 편이냐, 네편이냐’ ‘보수적이냐, 이른바 진보적이냐’로만 갈라서 파동(pulse)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학적으로는 ‘광인’이 아니겠지만, 선악, 시비, 이해(利害), 사회적 진보-퇴보 등을 갈라서 보려고 하지 않는 일종의 ‘사회적 자폐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같은 현상은 노대통령의 학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소학교만 나온 지혜로운 대한민국 어머니라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노대통령이 정말로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학력과 학벌은 일류대학에 그럴싸 하지만 속이 빈 3류들의 말을 따라서 그냥 적당히 북한문제를 한번쯤 ‘고민’이나 해본 것이다. ‘건달정부’라는 말이 딱 맞다.

북한문제도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문제’이다. 노대통령은 북한문제를 인간이 살아가는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 겉 멋만 들었다. 그러니 아무 생각없이 만수대의사당에 ‘인민 주권’ 어쩌니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번 방북에서 완전히 ‘뽀록’ 났다. 플라톤의 말을 차용하자면, 북한문제에 관한 한 ‘인간보다는 돼지에 더 가깝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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