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 평양공연은 한 공연기획가의 아이디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은 한 공연기획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북미 수교를 원하고 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 공연기획가의 아이디어를 적극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뉴욕필은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평양 공연 제의를 거부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요청을 받고 뉴욕필은 마음을 바꿨다. 뉴욕필 평양 공연은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라기보다 북미 지도부가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준비한 합작품인 셈이다.

공연기획가인 배경환(58) 홍콩 대풍국제투자그룹 부총재는 22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색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다음 수순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제재를 받아 말라 죽든가 미국과 붙든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전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멸도 아닐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상황을 벼랑 끝으로 몰았으니 북한의 다음 수순은 미국의 샅바를 잡아 당겨 극적인 타협에 나설 것이며 그 타협의 목표는 미국과 손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황 분석을 마친 배 부총재는 북한에 대해 미국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을 제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6년 12월 지인을 통해 북한의 의중을 타진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삽시간에 반응이 왔다. 평양 공연이 무슨 얘긴지 들어보겠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은 지난해 1월 부랴부랴 베이징으로 직원들을 파견했다. 배 부총재는 이유를 설명했다. “북미 협상이 잘 안되는 것은 미국이 북한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그러나 미국이 오케스트라를 보낸다면 이는 국제사회에 북한을 믿어도 좋다는 메시지가 된다”고 강조했다.

배 부총재는 “나아가 미국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이 성사된다면 국교를 정상화하겠다는 미국의 의지의 표현”이라며 “이는 미국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며 외교적,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도 설득했다.

북한 노동당 관계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를 마치고 다시 베이징으로 나와 배 부총재를 만났다. 이들은 미국의 5대 오케스트라 가운데 뉴욕필과 접촉해 달라는 주문을 내놓았다. 그리고 8월 말 이전에 가능한 한 빨리 공연을 성사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배 부총재는 공연 추진을 위해서는 북한 정부의 공식 문서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는 “공식 문서 없이는 뉴욕필과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28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방미길에 베이징에 도착하자 북한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김 부상이 뉴욕 현지에서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정부 공식 문서를 발급하려면 공연이 정말로 성사될 것이라는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 부총재는 지인을 통해 대북 특사를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배 부총재는 “프리처드 소장은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며 힐 차관보의 보좌관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 전화를 걸어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자금 동결문제로 공연 문제는 진척이 없었다.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급물살을 탄 것은 지난해 6월 중순 BDA 북한 자금 송금문제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부터였다. 강능수 북한 문화상은 마침내 6월18일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공식 문서를 발급했다. 그리고 북한과 미국 정부는 직접적인 접촉에 나섰다.

힐 차관보는 BDA 문제가 해결된 직후인 지난해 6월21일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힐 차관보는 중국과의 ‘핑퐁 외교’를 떠올리며 체육교류를 제안했다. 그러나 김계관 부상은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먼저 하자고 역제의했다. 배 부총재는 “두 사람이 여기서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극적으로 합의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뉴욕필은 2009년 이전에는 한반도 공연을 할 수가 없다면서 평양 공연을 거부했다. 뉴욕필은 금호아시아나재단과의 약속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한반도 공연을 할 수 있다. 2006년에 공연을 했으니 2009년에 공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힐 차관보의 설득으로 뉴욕필은 결정을 번복했다.

중국의 북한 소식통들은 “뉴욕필의 평양 공연은 북한과 미국 정부의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진행되는 정치행사”라고 말했다. 이들은 “북한 지도부는 북미 국교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는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지원할 수 있는 북풍(北風)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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