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필 공연, ‘北核 터닝포인트’ 해석 무리”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평양 공연을 하루 앞둔 25일 북한당국은 ‘북미관계 개선 희망’을 암시하는 선전활동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당국은 뉴욕필 평양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한 외국 취재진을 의식, 평양시중심지역에 위치한 반미선전물을 철거하는 한편, 각국 취재기자들의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 프레스센터를 설치하고 기사송고에 필요한 인터넷 라인도 준비를 끝냈다.

뉴욕필 공연이 열릴 동평양대극장에는 TV 뉴스 송신 장비도 설치가 완료됐다. 이 설비는 NTSC(한국방식)와 PAL(유럽방식)이 모두 가능하며, 뉴스 생방송을 위한 부스도 별도로 마련된다.

뉴욕필에 대한 북한당국의 배려도 파격적이다. 북한당국은 26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리는 뉴욕필 공연에서 북한과 미국 국기를 나란히 게양할 예정이며, 미국 국가(國歌)인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연주도 허용했다. 뉴욕필은 관객들로부터 앙코르 요청이 있을 경우 우리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연주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번 공연을 전 세계로 TV 생중계 하고, 북한 내부에서는 라디오만 중계하기로 결정해 뉴욕필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유선을 통해 북한 전역의 인민반, 집단농장, 개별 가구에 방송이 전달되는 북한의 라디오 송출 방식의 특성을 고려해 볼 때, 뉴욕필의 연주는 거의 모든 북한주민들이 실시간으로 청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문화예술관계자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환영행사도 준비됐다. 송석환 북한 문화성 부상이 주최하는 뉴욕필 단원과 취재진에 대한 환영만찬이 25일 양각도 호텔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 김정일의 깜짝 출현이 이루어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욕필은 본 공연 다음날인 27일 오전 9시30분부터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실내악 협연을 예정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 관람여부는 경호하기가 좋은 모란봉극장에서 열리는 뉴욕필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의 협연을 관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지 취재진의 보도내용이다.

이에 앞서 북한의 선전매체들도 연일 뉴욕필을 상세하게 소개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앞장섰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노동신문 등은 “미국의 뉴욕교향악단은 오스트리아의 빈교향악단, 독일의 베를린교향악단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꼽히고 있다”며 뉴욕필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북한당국이 뉴욕필 평양공연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향후 북미관계가 해빙무드에 접어들 때를 대비해 그동안 북한주민들에게 강조했던 반미의식을 일부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일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평양거리에 본격적으로 성조기가 휘날리기 전에 문화행사로 완충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은 뉴욕필의 아시아 순회공연 중에 평양도 한번 방문함으로써 북한주민들의 대미 적대감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라며 “미국보다 오히려 북한이 뉴욕필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 이번 공연을 향후 북핵문제의 터닝 포인트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반면, 뉴욕필의 평양 공연은 단순한 문화교류 차원을 뛰어 넘어 북미 사이에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뉴욕필의 평양공연은 향후 북미관계 개선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정치적 행사”라고 강조했다.

서 소장은 “북한주민들은 공식교육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배워왔으나,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경제와 문화가 가장 발전해 있고, 동맹국가인 남한을 잘살게 해준 국가’라는 이중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며 “미국은 이번 공연을 통해 미국이 북한에 적대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호의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서 소장은 또 “미국은 김정일에게 북미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며 “이는 핵신고 및 불능화 문제에 있어 북한이 최소한의 성의만 보여준다면, 미국은 북한이 원하는 국교정상화까지 갈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북한이 갖고 있는 미국에 대한 불신감에 대해 미국은 뉴욕필을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우리를 신뢰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다만, 북한이 과연 미국이 보낸 메시지에 대해 미국이 원하는 핵신고 및 불능화로 대답할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