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는 북한 김정은 신년사

▲ 2015년 북한 신년사 영상. /출처=유튜브

2015년 1월 1일, 북한 김정은이 세 번째 ‘신년사(新年辭)’를 발표했다.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는 조부(祖父) 김일성의 선전선동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대중연설에 능숙했던 김일성은 20대 초반부터 ‘말(言) 정치’를 좋아했던 것으로 북한 기록에 나온다. 1946년 1월 1일 0시 평양에서 재야 타종식 후 김일성이 ‘신년을 맞으면서 전국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했던 것이 북한 신년사의 시작이다. 60년대 말까지 노동당 내부 정적(政敵)들이 모두 제거된 후 김일성이 ‘수령’으로 신격화되자, 신년사 역시 북한 전체인민들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교시(敎示)’로 급부상됐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달랐다. 그는 직접 신년사를 발표한 적이 없다. 1995년 1월 1일, 죽은 김일성을 대신해 신년사 발표에 나설 것으로 기대됐지만, 김정일은 돌연 군부대 방문을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잡았다. 북한이 김정일 선군정치의 본격 행보라고 자평하는 ‘다박솔 초소’ 방문이다. “신년사는 수령님(김일성)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감히 내가 수령님 흉내를 낼 수 있겠냐”는 식으로 핑계를 둘러댔다는 후문(後聞)이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노동신문·조선인민군·민주조선 등 당·군·정 기관지들이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우리 장군님(김정일)은 수령님만큼 언변이 좋지 못해서 신년사를 안 한다”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됐다. 

흥미롭게도 김정은 역시 아버지(김정일)와 다른 선택을 했다. 사실 그는 후계자 시절부터 ‘김일성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김일성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살을 찌우고, 수십 년 전에 평양에서 유행하던 머리모양과 의상까지 뒤집어 썼다. 김정일이 죽고 나자 신년공동사설 발표 대신 본인이 직접 신년사를 발표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그 자체가 가장 효과적인 선전선동 수단이 된다. 최고지도자가 말하는 것은 국정목표가 되고, 그가 방문한 곳은 ‘혁명사적지’로 관리된다. 최고지도자를 직접 만난 사람은 ‘접견자’로 불리며 노동당의 배려와 출세가 보장된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의 김일성화에 매우 유용한 도구가 될 것 같았다.   

1일 조선중앙TV에 공개된 김정은의 신년사 발표는 실패의 그림자가 무척 짙어 보인다.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권력이 안정화 추세를 보인다고 하지만, 북한 매체에 드러난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불안스럽다.

조선중앙TV에 보도된 김정은 신년사 영상은 녹화 편집된 것이다. 신년사는 1월 1일 전국에 배달이 완료돼야 하는 노동신문에 게재되어야 하니, 해가 바뀌기 전에 작성되는 것이 상식이다. 이번 신년사 역시 해가 바뀌기 전에 발표 영상을 녹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영상은 총 28분 50초 분량인데, 청중이나 사회자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청중은 없는데도 박수 소리는 필요 했던지, 박수 소리는 효과음으로 대체했다. 김정은 연설 중간 중간에 박수 효과음이 편집된 것이다. 세어보니 총 39회다. 박수 효과음이 나올 때 화면은 노동당 청사 이미지로 고정된다. 영상이 아니라 고정된 이미지에 수 초 동안 어색한 박수 효과음이 나오는 것이다. 박수 효과음은 총 4분 30초 정도 되는데, 이 영상 시간의 1/7이 박수 효과음과 노동당 청사 이미지로 채워진 셈이다.  

김정은은 원고처럼 보이는 서류철을 들고 연단에 등장해서 간혹 원고를 읽는 것처럼 행동했다. 김정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카메라 앞에 두 개 정도의 프롬프트가 놓여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김정은의 발음은 정확치가 못한 데다가 빠르기도 무척 빠르다. 영상이 10분을 넘어가면서 김정은의 목소리가 슬슬 갈라지기 시작한다. 때때로 힘들게 호흡을 내뱉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 프롬프트를 읽기만 하는 일인데도 호흡조절이 쉽지 않은 듯하다. 

방송 용어로 ‘NG’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김정은의 실수로 인한 화면 편집의 흔적도 4회나 발견된다. 김정은 육성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화면은 김정은의 모습이 아니라 노동당 청사 이미지로 고정된다. 박수 효과음이 나올 때 사용됐던 그 이미지가 김정은 육성 중에도 4번이나 등장한다.

화면 속의 김정은은 시종일관 불안해 보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체질 같다. 제일 민망한 장면은 양손으로 연단을 짚고 엉덩이를 뒤로 죽 빼는 모습이다. ‘건들거린다’는 표현 외에 그 느낌을 잡아낼 단어가 없다. 연단에 가려 가슴아래 하반신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손과 어깨와 시선이 앞으로 쏠렸다가 뒤로 밀려나고, 어느 순간에는 좌우로 요동친다. 흡연 때문인지, 과체중 때문인지, 김정은의 상반신은 계속 흔들린다. 김정은이 움직이니 그를 따라 가야하는 카메라 앵글도 함께 흔들린다. 김정은의 ‘1호 영상’은 이렇게 흔들림이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전하는 메시지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그 소리에 담긴 ‘의미’가 해석도 되기 전에 이미 비언어적인 메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UCLA 심리학 교수는 메시지를 전달받는 사람의 첫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시각(55%), 청각(38%), 내용(7%) 순이라고 말했다. 피터 데스버그(Peter Desberg) 캘리포니아 주립대 심리학 교수는 연설에 대한 불안감을 ‘무대 공포증’으로 표현하면서, 이를 “자신의 연설이 부정적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믿는 두려움”이라고 정의했다.

관련 전문가들의 이론을 참고해보면, 영상에 비친 김정은은 여전히 우리에게 설익어 있다. 김일성의 이미지를 상상하라는 것은 정말 우격다짐이다. 

문자로 읽는 김정은의 신년사는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년도 성과에 대한 과도한 자평을 늘어놓고, 이어서 당, 군, 과학, 경제, 사회, 대남·대외관계 순으로 상투적인 당부를 이어간다. 사실, 이런 식의 화석화된 신년공동사설과 신년사도 북한의 구태(舊態) 중 하나다. 더구나 퍼포먼스의 주인공 격인 김정은 마저 시원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과도한 신년사 해석이 오히려 우리를 ‘오판(誤判)의 덫’에 빠지게 만들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미 적지 않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신년사를 지킬 의지가 과연 있을까’라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의지가 있다고 한들 관철할 능력이 실제 있을까’ 등의 문제까지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고 있다. 북한 신년사의 내용적 함의와 논리적 완성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다. 

여전히 북한 신년사 자구(字句) 해석에 골몰하고 있는 독자가 계시다면, 먼저 김정은 신년사 동영상부터 살펴보실 것을 권하고 싶다. 김정은 자체가 주는 시각정보가 만만치 않다. 마음은 30년 전으로 되돌아 가고 싶지만, 몸은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는 북한 정권의 딜레마를 김정은이 몸소 보여준다. 특히 김정은이 마지막에 “희망찬 새해 2015년을 맞으며 온 나라 가정들에 행복이 깃들기를 축원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고개를 숙인 것은, 김정일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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