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겹던 ‘충성의 외화벌이’

김정일의 비자금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알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당자금을 조성하는 궁정경제의 실체를 비밀에 붙이고, 주민들에게는 ‘충성의 외화벌이’라는 정치적인 운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앙당 38실, 39호실은 김정일의 비자금을 전문으로 확보하는 기관이다. 당자금은 인민경제계획이나 국가예산에 포함되지 않는 숫자로 예산 액수는 철저히 비밀이다. 규모도 내각총리가 관장하는 인민경제계획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북한에서 운영되는 경제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내각에서 운영하는 인민경제, 다른 하나는 군수공업위원회에서 운영하는 2경제 외에 중앙당이 운영하는 궁정경제(당 경제)가 있다. 당 자금으로 모아진 궁정경제의 외화는 중앙당 간부들의 생활지원에 일부 사용되고, 김父子 우상화 행사에 쓰이거나 김정일의 개인계좌로 흘러 들어간다.

북한경제의 서열을 보면 1순위가 궁정경제, 2순위가 군수경제, 3순위가 인민경제다. 인민경제는 당경제와 군수경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부차적인 도구이다. 그마저 김정일이 인민경제까지 간섭하기 때문에 총리는 거창한 이름뿐이고 몇 십만 달러가 없어 외국과 합작토론 하나 제대로 못한다. 인민경제는 제일 바닥에서 당 비위, 군 비위를 맞추느라 여기저기 뜯긴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 자금을 생산하는 상원시멘트와 같은 공장들은 돌아가지만 내각산하 공장들은 멈춰선 지 오래다. 북한에 있는 대규모 굴지의 금광들은 모두 당 자금을 마련하는 중앙당 39호실 산하 당 기업소들이다. 평남도 신창금광과 평북도 천마금광은 유명한 금 생산기지인데 한 해에 5톤 이상을 생산한다.

‘충성의 외화벌이’를 통한 약탈

당 자금을 만드는 부서는 중앙당 재정경리부 산하 38호실, 39호실이다. 지방당에 이르기까지 자기 라인을 가지고 있는데 5호 관리부와 군중외화사업소를 운영하면서 그 지방의 고가품(금, 송이, 성게, 조개 등), 특산물들을 대대적으로 수취해가고 있다.

노동당에서는 매해 주민들에게 금 1g과 개가죽 한 장씩의 과제를 주어 바칠 것을 요구한다. 명목은 ‘충성의 외화벌이’ 운동이다. 그 돈으로 ‘학생들에게 줄 교복원자재와 김父子 생일날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자재를 사온다’고 구실을 붙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군소리 없이 바쳐야 한다.

중앙당의 지시가 내려오면 지방당 비서들은 매일과 같이 금을 내지 못한 주민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충성심’이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인다. 직장 일에 쪼들려 사금채취를 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암시장에 가서 금을 사서 바쳐야 하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다. 보통 북한 주민이 받는 월급의 10배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시내에서 개를 기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장에 나가 개가죽도 사다 바쳐야 한다.

금 장사는 용서가 없다

북한에서는 개인의 금 매매를 철저히 통제한다. 개인이 금을 소지하고 있으면 김정일의 주머니로 들어오지 않고 외부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에 형법상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외국인과 금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가 제기되면 반역자로 총살까지 한다.

1987년 여름 기자가 살던 지방의 강 둔치에서 금사건과 관련한 공개처형이 있었다. 범죄항목은 금 300g을 매매한 죄다. 그 사람은 자재인수원(자재를 끌어오는 사람)인데 수완이 좋아 국내에서는 물론 수입 자재도 잘 들여와 공장에서 ‘복덩이’로 사랑 받던 사람이었다.

사람이 수완 좋고, 인간성도 좋아 공장간부들도 안전부에 찾아가 구명운동을 벌였다. 안전부에서는 ‘비록 엄중한 죄이지만 용서받을 수 있다’고 공장간부들을 안심시키고는 갑자기 거리에 공시를 붙이고, 가타부타 없이 끌고 나가 쏴버렸다. 그때만 해도 공개처형은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희소’한 일이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나와 구경했다.

북한 당국이 공개처형까지 하는 목적은 주민들에게 금 매매는 아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금기물로 각인시켜 암암리에 금 장사하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장군님의 돈주머니를 넘보는 놈들은 가차없이 처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북한 주민들을 속여 돈주머니를 불리고 한 끼에 수만 달러 이상의 산해진미만을 탐닉하는 김정일을 어떻게 인민의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영진(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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