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소재한 조중 친선병원이라면 평양시내에서 지명도 높은 병원이라고 짐작해도 무리는 아닐 게다. 눈에 띄는 건 의사가운을 입은 김정은의 모습이 아니라 시뻘건 녹이 그대로 드러난 병상이다. 한국의 그 어느 시골병원도 저런 침대를 쓰지 않는다.
어디 전쟁터도 아니고 환자가 눕는 병원 필수품에 저만한 ‘녹’이라니! 이 한 장으로도 북한의 열악한 의료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젊은 병사의 복부에서 나온 커다란 기생충 다발이 북한 보건의 심각성을 고발했듯 녹슨 침상은 많은 걸 담고 있는 거다.
북한의 인민 생활이 저렇게 무너진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북한 경제는 R&D란 개념이 부재하다.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고 발전하지 않으니 과거의 것은 침체되고 노화될 뿐이다. 둘째, 전시(Wartime)를 가정한 생존유지, 곧 전시경제체제 강화에 경제계획의 목표를 두었다.
하루라도 빨리 미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남한을 해방시키는 ‘민족적 과업’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실존적 목표였다. 이를 위해 수령이 절대권한을 갖고 인민을 훈련해온 거다. 어정쩡한 분단의 시간이 70년을 넘어 3대 세습까지 이어 올 줄 김일성도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금융산업이 부재하니 자본이 축적될 수 없다. 축적된 자본이 없으니 투자와 생산의 선순환이 구축되지 않는다. 지역별 자립경제란 전쟁의 상황을 가정한 고립경제체제의 구체적 실행방안이었다.
장마당이 많아졌다 한들, 체제가 원하는 경제시스템은 장마당이라는 시장에 있지 않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계획에는 시장이란 개념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핵 무력은 자체적으로 완성했으나 경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함은 그들도 안다. 이제 그들은 다시 한번 ‘빅딜’을 꾀하고 있다. 그들이 평화를 사랑해서? 동북아의 긴장완화와 안정을 위해? 자칭 ‘외교 운전자’에 동승하려고 핵 거래에 나선 것이 아님은 모두가 안다.
사회주의 맏형이던 소련도 1980년대 말에 이르니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이 극에 달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경제개혁)는 낙후된 소련경제의 비효율성을 타파하기 위해 중앙계획 경제체제에 사유화를 일부 도입한 극단적 충격요법이었다.
소비에트 경제에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선언(1985년)했을 때조차도 그의 목표는 ‘완성된 사회주의’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시장이 없는 기업의 자율성은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이다. 그 결과는 소련의 갑작스런 몰락으로 이어졌음을 현대사는 생생히 기록한다.
북한 지도부가 과연 기껏 개발해 놓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서 오로지 내부 경제발전을 위해 긴급한 외부수혈에 ‘올인’ 할까? 아니면 다시 한번 ‘호구’의 등에 ‘빨대’를 꽂기 위한 재주를 부리려는 걸까? 어쩌면 이 양극단의 어디쯤에선가 타협을 기대할지 모른다.
이론은 복잡해도 현상은 단순한 법이다. 상황을 보는 당신의 상식적인 생각이 곧 그들의 이성적인 판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