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의 19일 방한을 계기로 서울에서 한.미.일 3국 외교장관이 회동할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응징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이후 미국의 외교수장이 첫번째로 찾은 곳이 한국과 일본이라는 점에서 특히 국제사회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한 손에 유엔 결의안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게 되는 라이스 장관이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을 과시하는 외교공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특히 ‘압박과 제재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논리로 미국.일본과는 다소 맥락이 다른 북핵 해법을 추구하는 우리 정부가 결의안에 기초한 ‘조율된 조치’를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과연 한미일 외교장관 회동을 계기로 한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와 압박에 참여하게 될 지, 아니면 한미간 신경전이 극대화되는 계기가 될 지 주목된다.
◇어떤 의미있나 = 한국과 미국이 9.14 양국 정상회담에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추진키로 합의한 뒤 애초 이달 초쯤 이 방안의 구체화를 위한 3국 6자회담 수석대표간 협의를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북한이 지난 3일 핵실험을 예고한 데 이어 9일 실험을 강행하면서 `포괄적 접근방안’을 논의하려던 3자간 회동의 의미는 사라졌다.
오히려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한 대북 제재방안 논의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고 한미일 3국 역시 이에 직간접 참여, 관련 논의에 역량을 모았다. 이 결과로 안보리는 북한의 핵실험이 있은 지 단 6일 만인 15일 대북 결의를 채택했다.
이번 회동은 대북 제재 수위를 놓고 미.일과 중.러가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압박하는 5자 회동이 당장 개최되기는 어려운 만큼 라이스 장관이 아시아를 방문하는 계기로 한미일 3자만이라도 만나 의견을 조율하자는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도 핵 실험 전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에 무게를 두는 동안 압박 기조 중심의 미.일과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받았던 만큼 3국 공조 균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한.미.일 3국 외무장관 회담은 지난해 9월 6자 협의 공동성명에 합의하기 직전 뉴욕에서 개최된 이후 1년 1개월 만에 처음이다.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움직임이다. 실제로 미국내에서는 `이번 기회에 북한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강경론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3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북한을 악동(bratty child)에 비유하며 북한의 나쁜 행태에 대해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당근이나 보상은 없다고 공언했다.
그는 “오늘날 국제 사회는 나쁜 행태에 대해 더 이상 당근이나 보상은 없어야 하며 그에 대한 결과와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모두 동등한 동반자들로서 이런 점에 일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볼때 미국은 이번 3자 회동을 통해 ‘악동(북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확인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이 지난 13일 라이스 장관의 동북아 순방 계획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더이상 진전될 수 없도록 만들고 북한에 발길을 돌려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북한의 명백한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동맹들을 보호하는데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일본 역시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기존의 금융제재를 뛰어넘는 추가적인 독자 제재안을 마련하기로 하는 등 미국과 같은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5일 안보리 결의안에 언급, “북한에 핵보유를 허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국제사회와 함께 핵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고민이 커져간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 선언 직후 정부 일각에서 대북 포용정책의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후 고민과 치열한 토론 끝에 포용정책은 다소 조정하되 ‘압박과 외교적 해법’을 병행하기로 내부 방침을 굳힌 상황이다.
따라서 3국 공조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외교 이벤트의 형식 속에 담긴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과 미.일간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 구체적인 현안은 =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에 명시된 사항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3국이 협력한다는 내용이 대외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안으로 들어가면 한국과 미.일의 입장은 매우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및 이전을 차단키 위한 자산동결 및 해상 화물검색, 사치품의 대북 판매 및 이전 금지라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는 각국의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첨예한 사안은 역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안보리 결의 8조 f항은 `모든 회원국들은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라 핵 및 화생방 무기의 밀거래와 이의 전달수단 및 물질을 막기 위해 안보리 결의가 이행될 수 있도록 북한으로부터의 화물 검색 등 필요한 협력조치를 취하도록 요청(call upo n)한다’고 적시했다.
이는 곧 해상과 공중에서의 WMD 이전 차단을 목적으로, 국가간 협력을 통해 WMD 운반이 의심되는 선박.항공기 등을 검색하자는 PSI의 취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따라 참관자 수준의 비공식 참여만 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PSI에 정식 참여하거나 참여의 수준을 높일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물론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참여 확대를 적극 요청하고 있다. 한국의 PSI 참여확대는 참여국 수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국제사회에 주는 상징적 효과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PSI에 대한 국내 반발 여론은 물론 남북 물리적 충돌 가능성 등을 고려해 고심을 거듭해온 정부는 최근 ‘묘안’을 강구했다.
정부 당국자는 15일 “이번 안보리 결의가 PSI와 직접 연관은 없다고 본다”고 선을 그은 뒤 “우리는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여러 비확산 노력에 적극 참여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당국자는 PSI와 별도로 우리 정부가 `남북해운합의서’라는 강력한 장치를 갖추고 있음을 강조했다.
결국 남북해운합의서를 대안으로 제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만일 미국과 일본이 한국 정부의 뜻에 동의한다면 별 탈이 없겠지만 이의를 제기할 경우 PSI는 한국과 미.일의 입장차이를 극대화하는 뇌관이 될 공산이 크다는게 외교가의 전망이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철학적 문제도 도마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지만 `3국공조’를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가급적 직접적인 언급은 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개성공단 사업이나 금강산 관광 문제는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
지난 7월 초 미사일 발사 당시 한국이 북한에 사전 경고한 대로 쌀 차관과 비료 추가 제공을 유보하는 조치를 취한 점을 들어 핵실험을 강행한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미국과 일본이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두 사업은 유엔 결의안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안 내용을 보면 대량살상무기 계획 등에 기여하는 물자, 사치품의 공급.판매.이전 금지, 대량살상무기 등 계획을 지원하고 있다고 인정된 개인과 단체가 해외에 소유.관리하는 금융자산 동결 등이 담겨있다. 일반 경제 관계 및 무역은 제재 범위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은 일반적인 민간 상거래인만큼 결의안 금지 규정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미국이 앞장서서 두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할 경우 논란의 여지는 남을 수 밖에 없다.
이미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는 “북한 정권에 혜택을 주는 모든 프로그램을 재검토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두 사업의 중지를 요구한 바 있다. 또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들이 두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자금이 핵개발 등에 전용된 것이 아니냐고 공세의 고삐를 당길 경우 정부로서도 속도조절론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3국 외교장관 회동이 한국에 무조건 불리한 자리만은 아니다.
3국 외교장관은 비록 한미 정상회담 직후 공개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아니더라도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등도 협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