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여성들을 死地로 내몰았나?

▲ 함경북도 유선 ⓒ데일리NK

2007년 4월 초.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함경북도 유선은 잿빛의 도시였다.

도랑 너비의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쪽에는 울긋불긋한 봄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강변으로 산책을 나온 반면, 북한 쪽에는 두터운 회색 솜옷을 입은 사람들이 생기 없는 얼굴로 줄을 지어 걷고 있었다.

수많은 탈북 여성들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 강을 건넜다. 물길 위에 그녀들의 그림자가 비춰지는 것 같아 스산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탈북 여성들에게 국경 지역의 사진을 보여주며 ‘고향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모두 ‘여기 사는 것도 힘들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세상이 뒤바뀌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도 앞에 달았다.

이들이 말 못할 사연을 듣고 있자면 마음 한 구석이 뻥 뚤린 기분이다. 인신매매의 그물에 걸려든 탈북여성들이 중국 남성에게 팔려가 겪게되는 성적 학대와 폭력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기자가 중국에서 만난 5명의 탈북 여성들은 모두 직·간접적인 ‘인신매매’의 피해자였다. 본인이 팔려오기도 했고, 팔려온 여자를 보기도 했고, 팔려온 딸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이들은 인신매매를 당한 후에 하나같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강제로 성 관계를 강요받았다.

더이상 참기 힘들어 맨 몸으로 야반도주를 시도하지만,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되팔리거나 도시의 유흥업소로 흘러들어 갔다. 여기서도 다시 돈 몇백원에 팔려다니는 신세가 됐다. 결국 지원단체나 교회의 보호를 받고 나서야 기나긴 인신매매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탈북 여성은 ‘여자로써 차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얘기’라며 기나긴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탈북 여성들의 증언들 중에는 기사로 옮기기 어려운 이야기도 많았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들 뿐이었다.

강제 북송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처벌도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 중 하나이다. 숨겨놓은 돈을 찾기 위해 알몸 수색을 벌이고, 중국인의 씨를 받아왔다며 임신한 여성의 태아를 강제 낙태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는 인터뷰 과정에서 이 탈북 여성들이 경험했어야 할 공포와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그간의 인생 역정을 몇 방울의 눈물과 함께 담담하게 풀어내는 여성들 앞에서 손을 맞잡고 울고 싶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강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기자에게 ‘돌아가시면 꼭 좋은 일 하라’는 당부까지 해줬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여성들은 왜 머나먼 이국 땅에서 이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탈북 행렬 초창기에는 이런 사실을 잘 몰랐다고 하지만, 지금은 북한 내에서도 중국에 가면 시골로 팔려가서 고생한다는 사실이 대부분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팔려가고 있다.

물론 인신매매단의 감언이설에 속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동생들 장가보내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장사 밑천을 대주기 위해 스스로 돈 몇백원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경우도 많았다.

북한 여성들은 북한의 식량난과 인권유린의 가장 큰 피해자다.

대아사 기간에도 여성들은 가족들을 죽음에서 건져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국가배급제가 붕괴되자 장마당에서 장사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여성의 몫이었다. 이들은 제 몸보다도 큰 짐 보따리를 매고 수십리 길을 걸어다니며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 내다 팔았다.

가족을 먹여살리는 사실상의 가장 역할을 하는 북한 여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봉건적인 위계질서와 여성차별의식이다. 이러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제 몸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있다.

탈북여성의 문제는 북한의 낡고 병든 체제가 곪고 곪아서 외부로 드러난 종기 같은 것이다. 탈북여성의 인신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체제 내부에 대한 수술이 전제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재중 탈북여성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보호 대책도 시급하다. 이시대 탈북 여성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뿐만 아니라 양심의 현주소도 말해준다. 탈북 여성들의 인권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한국 여성계 또한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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