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민들이 ‘남북관계 경색’ 못견딘다 하느냐?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제안한 비핵·개방3000을 “역도·패당의 헛소리”로 거부한 데 이어, 남북연락사무소 설치 제의도 “삶은 소대가리 꾸러미 터질 소리”라는, 실로 ‘감동스러운’ 욕설로 일축했다. 아마도 북한의 창조적 두뇌들은 욕설공장에 총집결한 모양이다.

여기서 김정일의 생각은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를 장기간 상대하지 않으면, 결국 한국정부가 무릎을 꿇고 햇볕정책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주민의 삶이 더 고단해지거나 심지어 다시 기근이 발생하더라도 김정일 정권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이고, 차라리 한국정부를 곤혹스러운 지경으로 몰아가는 수단으로 간주할 것이다.

실제로 햇볕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인 백낙청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천민 자본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면서, 부시 정부가 클린턴의 대북정책을 무조건 거부하다(ABC:Anything But Clinton) 결국 대북유화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었듯이, 이명박 정부 역시 김대중류의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다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거나, 비핵·개방3000과는 별도로 실질적인 남북교류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김정일 정권이 비핵·개방3000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만일 이명박 정부가 이처럼 실현 가능성이 없는 대북정책을 고집한다면, 남북대화나 교류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며, 남북관계의 장기간 냉각은 여론악화를 가져와 한국정부가 절대로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장관이나 외교통상부장관 모두 햇볕정책을 내심 지지하는 사람들로 보이고, 현재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이 장관들이 존재를 알 수 없을 만큼 아무런 입장표명도 없는 것을 보면, 이들 역시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종의 소강상태 혹은 행동의 방향이 상실된 듯한 진공상태가, 출범후 불과 2개월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지적되었듯이 비핵·개방3000에는 김정일이 이 정책을 거부했을 때의 대응책이 전혀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햇볕정책 지지자들이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북한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김정일에게 돈과 물자를 다시 쥐어 주면서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대안일까?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앞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점들이 있다:

1. 지난 10년간 햇볕정책식의 남북교류가 북한주민들의 의식 변화를 가져왔는가?

2. 북한주민들의 의식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김정일 정권에게 돈을 대주면서 남북교류를 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는가?

3. 한국국민들이 진정으로 일정기간 남북관계의 경색을 반대하며, 남북관계 경색현상을 견디지 못하는가?

지금부터 대북방송 활성화 매우 중요

첫 번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현지여론조사라도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전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그 의견을 물어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놀라운 점은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분노를 감안하더라도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햇볕정책을 극도로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햇볕정책식 남북교류’를 통해 북한주민들의 의식에 심대한 변화가 있었다면, 탈북자들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아직 북한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런 변화를 인정하고 그 필요성을 강조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퍼주기를 통한 남북교류가 북한주민의 의식변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전혀 검증이 되지 못한 주관적 상상이라고 보인다.

차라리 북한주민의 의식변화에는 밀수입된 한국 드라마 알판(CD)과 휴대폰이 훨씬 더 큰 역할을,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북한의 장마당일 것이다. 바꿔 말해 자발성이 결여되고 통제된 한국국민과 북한주민의 접촉보다는 북한주민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닌 한국드라마가 북한주민에게 훨씬 객관적인 정보의 원천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먹고 사는 문제를 김정일 정권에 의해 통제당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각심, 그 이상의 의식변화를 현 단계 북한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할 수 있다. 한국드라마가 북한주민의 의식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듯이 공영방송 뿐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다원화된 대북방송이 활성화될 경우 북한주민의 의식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방의 대중음악이 과거 동구권의 젊은이를 사로 잡았듯이 한국의 대중문화가 북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나서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면 민간차원의 대북방송의 활성화를 국가가 간접 지원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나아가 우리는 라디오 뿐 아니라 대북TV방송을 또 다른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동독 전역에서 시청된 서독TV방송이 독일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듯이, 만일 북한에 한국의 TV가 방영된다면 그 효과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클 것이고, 북한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선전에 불과한 ‘조선중앙방송’이 한국TV와 경쟁해서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매우 큰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또 장마당이 갖는 엄청난 의미를 북한정권이 잘 알고 있는 만큼, 김정일은 과거의 통제경제로 돌아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며, 결국 그것은 돈과 물자로 귀착된다. 따라서 남북교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정권에 돈과 물자를 대주는 것은, 그만큼 북한이 통제경제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한국 정부는 북한주민들의 장마당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필요하면 민간차원에서 개발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이명박 정부가 결국 햇볕정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친북좌파들의 ‘희망 어린’ 예측의 최종근거가 되는 국민여론의 악화가 과연 현실인지를 살펴보자.

필자가 볼 때 한국국민들 상당수, 아마도 과반수는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난 10년 친북좌파정권은 언론과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들을 동원해 북한의 현실에 대하여 엄청난 오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즉 북한인권문제의 실상을 국민들에게 전혀 전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한국국민들은 북한의 현실을 모르고 있고, 이런 바탕에서 남북교류에 대하여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식의 자기기만, 자기최면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북한인권문제의 현실에 대하여 좀 더 지속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무조건 남북교류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이 ‘이명박 역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며 증오에 찬 욕설을 해대고 있는 지금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북정책의 인프라를 조용히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대북방송, 북한의 장마당 활성화 그리고 북한의 인권유린을 기록하고 한국국민에게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전해줄 수 있는 민간차원의 단체를 지원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북한인권재단’의 설립이 그것이다.

김정일의 희망, 즉 이명박 정부를 왕따 놓으면 결국 과거의 좋은 시절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오만에 냉수를 쏟아 부어 정신이 들도록 만들고, 대북정책 부서에 아직도 득실대고 있는 영혼 없는 관료들, 그리고 햇볕정책을 ‘지조’로 착각하고 있는 간부들에게 이제는 대북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분명한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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