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배치 통보받은 北 졸업생…“만세?”

함경북도 회령시의 한 중학교에서 졸업예정자들이 군 입대탄원서 서명을 집단 거부한 초유의 사건이 발생해 중앙당에서 해당 학생들을 전원 ‘농촌배치’하라는 지시를 내려 파문이 일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회령시 간부층 자녀들에 한해 ‘농촌 배치’를 유예시키는 조치가 취해지자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북한 내부소식통이 20일 전해왔다.

사건은 2월 초 함경북도 회령시 오산덕 중학교에서 발생했다. 당시 회령시 군사동원부는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이 전쟁 도발 책동을 벌이고 있다’며 졸업을 앞둔 중학생들에게 ‘조선인민군 입대탄원서’에 무조건 서명할 것을 종용했다.

입대탄원서 서명이란 ‘조국보위를 위해 인민군에 자원입대 하겠다’며 자필 서명을 하는 것으로, 북한은 과거부터 주민들의 충성심 고취 일환으로 17세 이상 35세 이하 청년들을 상대로 반강제적인 서명운동을 벌여왔다. 북한은 2003년 병역법 개정을 통해 ‘징집제’를 실시하고 있어 입대탄원서가 갖는 실질적 의미는 거의 없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 가진 통화에서 “오산덕 중학교 졸업생들이 ‘인민군 입대탄원’을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바람에 모조리 ‘농촌배치’를 받게 됐다”며 “일부 간부들이 졸업생들의 농촌배치 과정에서 자기 자식을 몰래 빼내는 바람에 학부모들이 회령시당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요즘 중학교에서는 간부층 자식들과 평백성 자식들이 두 패로 나뉘어 따로따로 논다”며 “북한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입대탄원서’ 서명 문제를 갖고 서로 ‘너희들이 먼저하라’ 면서 감정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입대탄원서에 서명을 했다고 군대에 징집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면서 “요즘 군대에 가면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허약(영양실조)에 걸린다는 말이 많다. 국가에서 자꾸 정세가 긴박한 것처럼 떠들어 대니 학생들이 혹시나 진짜 즉시 군대에 가야 하는가라는 두려움에 서명을 꺼리게 됐고, 결국 패거리 다툼으로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없는 학생들의 자존심 싸움은 2월 16일을 거치면서 중대한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생일을 앞두고 당연히 마무리가 되어야할 입대탄원서에 오산덕 중학교 졸업생들은 단 한명도 서명하지 않은 것. 오산덕 중학교가 김정일 생모 김정숙의 고향 회령시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이 사건이 ‘혁명성의 문제’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사태가 중앙당에 보고되면서 학생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졸업생들의 담임 교원들은 물론 오산덕 중학교 교장, 부교장,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지도원을 비롯한 간부진 전원이 해임 철직됐다.

북한 당국은 또 사회적 기강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으로 3월 8일자로 졸업생 120여명 전원에 대해 ‘농촌배치’를 지시했다. 북한에서 도시의 중학교 졸업생이 농촌 집단농장으로 직업을 배정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추방’으로 간주된다.

북한에서는 군사복무를 하지 않았거나 집단농장에 배치되면 입당을 비롯한 모든 출세기회로부터 제외된다. 또한 출신성분을 중시하는 봉건적 제도 때문에 가족과 후손들의 발전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간부층 학부모들이 먼저 나섰다. 특히 지난 2월 24일 김정일의 회령 방문 당시 김정일을 곁에서 수행했던 회령기초식품공장 지배인 한 모 씨는 중앙당에 ‘접견자 가족’임을 내세워 농촌으로 배치될 졸업생들 속에서 아들을 빼내 인민군에 입대하도록 조치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을 직접 만난 사람들을 ‘접견자’라 칭하며 각종 사회적 특혜를 준다.

이후 간부들은 뇌물과 평양에 거주하는 친척들의 인맥을 동원해 농촌으로 배치되는 자식들을 구제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결국 중앙당은 회령시당 간부부 부부장의 아들을 비롯해 총 8명의 학생들이 농촌배치에서 구제돼 인민군에 복무하도록 승인했다.

자식들이 농촌배치를 받게 된 학부모들은 즉각 회령시당에 찾아가 항의를 벌이기 시작했다.

소식통은 “지금 회령에서는 두 사람만 모여도 이일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나라 밥(배급) 처먹는 놈들이 나라 지키러 간다니 잘됐다’ ‘어짜피 힘없는 집 자식들은 인민군에 나가도 건설부대 밖에 못 가는데, 차라리 잘된 일 아니냐’며 막 말들을 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또 “민심이 어수선 해지자 시당에서는 ‘인민반회의, 여맹회의들을 통해 사상교양 사업을 강화하라’, ‘쓸데없는 유언비어가 돌지 못하게 입단속을 잘 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소식통은 “부모들은 시당 간부들을 찾아다니며 어떻게 해서든 자식들을 빼돌리려하지만, 정작 농촌배치를 지시받은 학생들은 ‘군대에 나가지 않게 해준 장군님께 감사한다’라며 희희낙락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전했다.

그는 “옛날 같으면 농촌에 추방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굴도 못 들고 다녔겠는데, 이번 오산덕 중학교 졸업생 아이들은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기세등등해서 무리지어 다닌다”며 개탄스럽게 말했다.

‘군대에 가서 10년씩 썩을 바에야 사회에서 돈이나 벌겠다’, ‘돈만 있으면 몇 년 안에 농촌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북한 신세대들의 사고방식 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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