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내가 지었는데 국가에 왜 바치나”

▲ 추수하는 북한 주민들

최근 몇 년간 ‘북한이 많이 변했다’는 말이 북한 내부와 탈북자 사회에서 자주 흘러 나온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북한은 10년 전 상황이 아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요즘 사람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한다. 또 정당한 주장은 당국자들에게도 당당히 한다”고 말했다.

지금 북한에서는 장사꾼을 ‘기회주의 분자’로 손가락질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90년대 중반 닥치는대로 이것저것 장사하던 때와도 다르다. 시장에서도 품목을 전문화 시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도 배급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분조 관리제'(소규모 가구단위 자율운영제)를 공장 기업소 등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물론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주민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남의 집 가정부나 ‘머슴’으로 들어가서 살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굶어 죽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람이 한번 혼 났으면 됐지. 소도 한번 빠졌던 구덩이에 다시 안 빠진다는데…”라고 말한다. 90년대 중반 대아사와 같은 참혹한 일은 이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국내 입국한 5인의 탈북자에게 북한 주민들의 변화상을 들어봤다.

▣ “농사는 내가 지었는데 국가에 왜 바치는가?”= 지난 3월 입국한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 탈북자 김경식(가명) 씨는 “지난해부터 땅세가 인상됨에 따라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7.1조치 이후 농장원 이외에 노동자들에게도 가구별로 농지를 지정해 농사를 짓도록 하고 수확량 중 일부를 국가에 내도록 하는 분조관리제를 확대 시행해왔다.

이 조치가 개혁개방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 북한은 직장 단위로 농장 밭을 분할해 지정해주고, 다시 직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일인당 300평씩 땅을 나눠주었다.

김씨는 “자기 땅에서 직접 농사를 짓기 시작하자, 노동자들이 죽을 둥 살 둥 일을 해댄다. 밭에 가면 풀 한포기가 없다. 어떻게든 비료를 구해 뿌려주니까 씨알 크기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가을이 되자 땅을 지정해 준 경영위원회(협동농장 지도단위)와 협동농장이 ‘상부에서 곡물상환 기준이 내려올 때까지 가을(수확)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져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항의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 출신 탈북여성 최 모 씨도 “온성 탄광에서도 수확량의 10%를 국가에 상환하라고 하자 노동자들이 ‘농사는 누가 지었는데 국가에 바치라고 하느냐’며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 이후 굶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며 “앞으로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북한 각지에 ‘녹상청’ 늘어나= 최근 북한의 대도시에는 영상 CD나 비디오를 상영하는 속칭 ‘녹상청'(錄像廳, 비디오방에 해당)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소극장처럼 꾸며진 50평 규모의 방에서 영화를 틀어주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지난해 7월 탈북한 함경북도 청진 출신 서강철(가명) 씨는 “청진시 역전 주변에 녹상청이 세 곳이나 생겼다. 영화 한편 보는데 50원이다. 한번 들어가면 2∼3편은 보고 나와야 직성이 풀린다. 이 돈도 적은 돈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의 녹상청은 건물의 내부장식을 개조하고 ‘북한이나 러시아 영화’ 상영을 명목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 중국이나 홍콩 영화를 틀어준다. 남한이나 미국, 일본 영화, 포르노 영화만 아니면 크게 처벌 받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녹상청을 찾는 이유는 24시간 동안 정전 없이 상영되기 때문이다.

서 씨는 “만약 정전되면 가게 주인이 재빨리 자동차 배터리로 전환해 영화를 돌린다. 주민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정무문’과 ‘당산대형’에 나오는 리샤오룽(李小龍·이소룡)이나 태극권 리렌제(李连杰·이연걸)의 액션영화들이다”고 말했다.

외국 영상물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강력한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복제한 CD도 음성적으로 북한전역에 ‘한류’를 전파하고 있다. ‘겨울연가’의 배용준은 북한에서도 유명한 탤렌트로 인정 받는다.

수년 전부터 ‘109 상무'(VCD, 비디오 단속반)가 조직돼 불법 영상 단속에 나서고 있고 지난달 3일에도 인민보안성 명의로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국가의 승인없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노래방, 영화방, 컴퓨터방들을 모두 없애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 선호가 급증함에 따라 한 몽둥이로 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서 씨는 말했다. 즉, 주 시청층 대부분이 보위부나 보안서의 친인척과 연루돼 뿌리뽑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퇴폐문화 척결’ 등의 포고문을 내리지만 실제는 단속기관도 피동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것.

북한 내부 소식통도 2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개성지역 일대를 대상으로 벌이던 대조선 비방방송을 두만강 일대로 옮겨 방송할 예정이니, 그 방송에 속아 넘어가 조국을 배반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내용과 최근 한국영화를 많이 보고 환상을 갖게 되어 월경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엄중 처벌할 것이라는 주민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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