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회고록’에서 한국 정치인들 무엇을 읽어야 하나?

김정일의 ‘사람 다루는 솜씨’는 역시 한 수 위였나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미완성 원고를 모은 회고록이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목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대화가 될 수 있는 사람”이며 “북쪽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사람은 김위원장이고, 나머지는 대단히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또 “김위원장은 듣던대로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이었다. 만나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 제가 놀란 것은 국정 전반을 아주 소상하게 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개혁이니 개방이니 이런 것에 대해 말하면 자신의 소신과 논리를 아주 분명히 체계적으로 표현했었다”고 언급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노 전대통령은 ‘도라산 국민보고대회’에서 “우리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이후 통일부 홈페이지에도 ‘개혁개방’이라는 단어가 한동안 삭제됐다. 당시 필자는 “노 대통령과 김정일의 대화에서 아마도 김정일이 몇 수 위였을 것이며, 김정일의 개혁개방 불가 논리를 노대통령이 무너뜨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 칼럼에서 썼던 기억이 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의원,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등 김정일을 만난 사람들은 “김정일은 합리적이며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다. 김정일을 만나 대화를 해본 사람들은 왜 김정일이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착각을 하게 될까?

김정일이 정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인이라면, 핵을 폐기하고 개방해서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참여해야 ‘합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김정일에 대해 갖게 되는 ‘합리적 인상’과 ‘엄연한 현실’ 사이에는 어떤 괴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언젠가 필자는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에게 “만약 김정일이 한국에 와서 TV토론에 출연하여 한국 정치인들과 자유토론을 벌인다면 잘 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예상 외로 황 전 비서는 거리낌없이 “(김정일이) 아마 더 잘 할 겁니다”라고 즉답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있다. “김일성도 ‘사람 다루는 솜씨는 덩일(정일)이가 나보다 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당사업을 시작한 시기는 1964년이지만, 1974년 2월 후계자가 되었을 때부터 따져보아도, 2000년 기준으로 조직의 리더, 지도자로서 이미 35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런 사람이 대화 상대를 앞에 놓고, 또 반드시 설득시켜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가야 할 상대를 앞에 놓고, 그것도 자기 집 앞마당에 불러놓고,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겠는가?

고인에게는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인간적으로 솔직하고 진솔한 스타일이었던 노 전대통령 정도는 아마 김정일이 별 어려움 없이 ‘갖고 놀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노대통령이 정상회담이 끝나자 말자 “개혁개방 말도 꺼내지 말라”고 했겠는가?

김정일은 조직과 선전 분야를 오래 다뤄왔다. 여기에서 ‘선전’이라면 자신이 어떤 인물로 비춰지는 게 유리한가라는, ‘이미지 관리’ 정도는 낮은 차원에 속한다. 또 김정일은 이런 분야에는 이골이 나있다. 외부세계에서 볼 때는 웃기는 일이지만, 근 40년동안 영명한 지도자, 자애롭고 통 큰 지도자, 천출명장, 21세기의 태양이라는 거짓말을 계속할 경우, ’40년 된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상식화’ 되어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우상화 선전도 잘 알고 있는 정치인들이 김정일을 만나면 왜 ‘합리적 인물’이라는 착시현상을 갖게 될까?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한국 정치인들이, 자신이 김정일을 잘 모르는 줄 모르고, 김정일이 우리를 모른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북한은 폐쇄사회니까 김정일도 외부 사정을 잘 모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김정일은 한국과 외부세계를 잘 알고 있다. 간부들도 외부세계를 비교적 잘 아는 편이다. 선전분야를 총괄하는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간부급 이상만 보는 ‘참고신문’을 따로 만들어 열람시킨다. ‘참고신문’은 남조선 사정뿐 아니라 외국 정보를 소상히 알려준다. 물론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북한을 방문한 대북지원단체 인사들이 북한 간부급들이 ‘예상 외로’ 남한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놀란다고 한다. 그러나 내막을 알면 별로 놀랄 일도 없다. 김정일이 다루는 대외 정보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한국의 영화 ‘츈향뎐’을 언급하자 언론들은 ‘김정일이 그런 것도 알고 있었네’ 식으로 쓰고, 대체로 정치인들도 그런 수준에서 인식한다.

김정일은 한국사회와 한국 정치인들을 잘 안다. 한국의 대북정책 논리를 분쇄하는 논리도 잘 무장되어 있다. 대신 한국 정치인들은 북한과 김정일을 잘 모른다. 상대를 잘 아는 사람과 상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직접 만나서 전략적 대화 게임을 하면 누가 이기겠는가? 그리고 김정일은 상대를 ‘자기 마당’에 불러놓고 게임을 벌인다. 누가 유리하겠는가?

더욱이 한국 정치인들의 눈에는 ‘예상 외로’ 김정일은 온화한 표정과 소탈한 유머, 자상한 제스추어까지 팔방미인으로 해낼 줄 안다. 누가 누구를 설득해내는 데 유리하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눈에 비친 김정일은 ‘무지무지 합리적인 인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눈에 북한문제는 ‘전체주의 수령독재체제’가 만악(萬惡)의 근원이 아니라, 남북관계 내지 미북관계에서의 모순이 북한문제의 본질이라고 인식하며, 나아가 김정일이 잘못된 게 아니라, 북한문제를 둘러싼 한국내 보수-진보간의 모순이 잘못되었고, 결국 ‘보수가 잘못되었다’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로 하여금 이같은 착시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김정일은 게임 훈련이 잘되어 있고, 우리 정치인들은 게임 훈련이 덜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치인들은 자신이 북한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둘째, 우리 정치인들이 수령주의의 실제를 너무 모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북쪽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사람은 김정일위원장이고, 나머지는 대단히 경직돼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국정 전반을 아주 소상하게 꿰고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사실 이 대목의 ‘회고’는 북한 수령주의의 기초만 알아도 하나도 놀랄 일이 없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북한에서 절대 자유가 보장되는 사람은 수령(장군님-수령의 대리인) 한 사람밖에 없다. 나머지는 모두 ‘수령의 지도(영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하는 사람은 자유롭고, 지도받는 사람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 전대통령의 눈에 ‘김정일이 가장 유연하게 느껴진’ 것은 김정일이 유연하고 합리적인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 북한에서 김정일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 전대통령의 눈에 다른 사람은 경직돼 있는 반면, 김정일은 자유롭고 유연하게 대화를 하니까, ‘김정일은 합리적이며 대화가 되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쉽게 비유해서, 두 열차가 옆으로 나란히 서있다가, 저쪽 열차가 움직이는데 마치 정지되어 있는 이쪽 열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경우와 유사하다.

북한 수령주의의 실제를 짐작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

예를 들어, 어느 당원 또는 간부가 사업 제의서(정책보고서)를 올렸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김정일이 결재하여 통과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이후 매우 특별한 정치적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그 사업이 실패하든 말든, 김정일이 결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또 결재한 김정일은 그 사업이 실패하건 말건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

김정일은 권한에서는 무한하며, 책임에서는 완전히 자유롭다. 이것이 수령주의 체제에서 갖는 ‘수령의 절대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선전이론으로는 ‘수령은 사회역사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또 이 수령주의 때문에 김정일이 국정 전반을 소상히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인들의 북한에 대한 무지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바람에 고인에게 좀 미안하게 됐지만, 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든, 다른 정치인이든 북한 체제의 본질에 대해 잘 모르기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는 DJ의 경우는 알면서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기어코’ 역사에 남기기 위해 그러한 상황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이다.

김정일은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한국과 미국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제적인 감시에도 불구하고 지난 17~18년 동안 미국, 한국 등을 상대로 그 어려운 핵게임에서도 전술적, 또 전략적 승리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전략이 공식화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뉴욕에서 북핵 일괄 타결(grand bargain) 방안을 공식화 했다. 정부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일괄 타결은 과거의 ‘패키지 딜(package deal)’과 다르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과거에는 단계적 협상전략이었으나 일괄 타결은 한방에 끝내는 ‘원 샷(one shot) 딜’이라고 한다. 정부는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 행동을 하면” 400억 달러 규모의 국제협력자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비핵개방3000 구상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같은 방안을 ‘핵폐기-체제존속 보장 방안’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북한의 체제보장을 해주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언론은 “핵폐기와 북 경제개발” 또는 “핵폐기에 상응한 개발지원”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체제보장을 해주지 않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느닷없이 ‘체제보장 방안’ 언급이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17일자 아사히 신문이 보도한 ‘핵폐기-체제존속 보장’은 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필자는 북한이 핵폐기 행동으로 나올 때까지 유엔제재를 계속하겠다는 한미 정부의 정책공조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또 이번에는 과거의 일방적으로 손해보던 패턴에서 일정 수준 탈피할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게임에는 상대가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성과를 거두려면, 김정일이 미국과 한국의 전략을 알고 있는 이상으로 우리가 김정일의 전략을 더 잘 꿰뚫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내심 기대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김정일이 과거의 핵게임에서 이긴 방식을 계속 고집하려다가 결국 대내외적으로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경우다. 역사에는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하기 보다는 자신 또는 상대의 실수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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