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견제로 `불발’‥北 7·1조치 전말

`시장경제’ 수혈을 겨냥해 북한 내각이 주도했던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노동당과의 권력투쟁에서 내각이 패배하는 바람에 결국 `불발’로 끝났다.


한기범 전 국가정보원 3차장(대북 담당)은 경남대학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북한의 경제개혁과 조직.관료정치’에서 7.1조치의 추진 과정과 시행상 문제점, 방향 수정의 굴곡, 좌절까지의 전 과정을 세밀히 분석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북한이 한계 상황에 처한 경제난 타개와 식량난 완화를 위해 부분적으로라도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기로 정책방향을 잡은 것은 2000년부터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해 5월과 이듬해 1월 중국을 잇따라 방문해 `실리주의 경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또 내각의 경제부처 전문가와 학자들로 이른바 `6.3그루빠’를 만들어 경제정책 수정 방향의 검토에 착수토록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2001년 10월3일 당과 내각 간부를 모아 놓고 행한 `10.3담화’에서 임금의 평균주의 철폐 등 경제개혁 원칙을 제시했고 이는 그 이듬해 가격 및 생활비 현실화, 독립채산제 도입, 분조관리제 중심의 협동농장 운영을 골자로 하는 `7.1조치’로 귀결됐다.


대북 전문가로 통하는 한 전 차장은 “2000년대 초에도 북한의 신흥 재력가나 전주들이 화폐를 대량 보유한 채 내놓지 않아 돈흐름이 극도로 느려지자 `6.3그루빠’ 내부적으로 화폐교환(화폐개혁)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국가 신용도가 떨어지고 7.1조치의 효과도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유보됐다”고 말했다.


그후 북한은 만성적인 재화공급 부족으로 `7.1조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2003년 3월 시장 장려 조치에 이어 5월에 내각의 `시장관리운영 규정’을 발표, 시장과 개인 상거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04년부터 대규모 종합시장이 조성되기 시작해 2007년에는 그 숫자가 300개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북한의 실세였던 장성택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중국 어우야 그룹의 양빈 총재와 만나 신의주 특구 조성을 추진한 것도 당시 북한이 경제개방에 상당히 몰두해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경제개혁개방 기조를 급격히 가속시킨 계기가 바로 2003년 박봉주 내각 총리의 기용이다.


`7.1조치’의 부진한 성과에 조급해진 김 위원장은 내각 화학공업상으로 있던 박봉주를 전격 총리로 기용, 내각 인사권 등 파격적인 권한을 위임하고 당.정 조직 및 인력 구조조정, 당.군 경제사업 축소, 내각 전문화 및 연소화 같은 일련의 개혁성 조치를 강행했다.


이에 힘을 받은 박 총리는 2004년 6월 일종의 태스크포스인 `내각 상무조’를 가동해 가족영농제 도입, 기업경영 자율화, 당의 사회적 노력동원 금지, 물자교류 및 상품도매 시장 토대의 유통구조 구축, 상업은행과 무역은행 신설 등 훨씬 더 파격적인 경제개혁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박봉주의 경제개혁안은 1년도 못 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2005년에 들어서면서, 노력동원을 금지하려는 내각 움직임에 자극받은 노동당이 강력히 제동을 걸고나섬에 따라 당정 갈등이 본격화됐고, 급기야 같은 해 3월로 잡혔던 최고인민회의 제11기 3차회의가 돌연 한달 가량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 있는 대의원들의 제의에 의해 회의를 연기한다”고 사유를 밝혔지만, 사실은 그 해 봄에 열린 당정 회의에서 경제개혁 방향과 농업예산 배분 문제를 놓고 보수 원로들의 반대로 의견이 갈라져 회의 진행이 어렵게 되자 박봉주 총리가 최고인민회의 연기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건의한 것이라고 한 전 차장은 비화를 공개했다.


반격에 나선 노동당은 2005년 4월부터 9월까지 권력층의 업무과오와 뇌물수수 등 비리를 대대적으로 내사했고, 박봉주 총리는 그 이듬해 6월 자금전용을 이유로 `40일 직무정지’에 처해진 데 이어 2007년 4월 해임됐다.


박 총리의 내각 축출은 그후 `박봉주 라인’으로 분류되던 내각 상(장관 해당)들의 무더기 해임으로 이어져, `파격적 그림’으로 기대를 모았던 북한의 경제개혁 정책은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은 당의 반격이 시작된 2005년을 전환점으로 양곡전매제 시행(2005년 10월), 부동산 전면 실사(2006년 4월), 개인 서비스업 실태조사(2007년 초), 종합시장 통제 개시(2007년 10월), 종합시장 개장일수 및 판매품목 제한(2008년 10월), 종합시장 공간 축소(2009년 6월) 등 `7.1조치 반동’ 성격이 강한 반시장적 조치들을 잇따라 내놨다.


지난달 30일 전격 단행된 화폐개혁은 `반시장’ 시리즈의 중간결산이었던 셈이다.


한기범 전 차장은 “200년대 초 김정일은 극도로 악화된 경제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경제개혁을 독려하다 성과가 부진하자 내각의 경제관리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면서 “하지만 내각과 당이 갈등을 빚자 애매한 태도를 취하다 결국 당의 손을 들어줘, 정책 추진 과정의 제반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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