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최악 北, 南 노동계급 선동에 5·1절 이용

오는 5월 1일은 121번째 ‘국제 노동절(5·1절)’이다. 북한은 이날을 “전 세계 노동계급의 명절”이라며 1950년부터 공휴일로 지정, 기념해 왔다.


대규모 아사(餓死)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은 5·1절에 평양을 비롯한 전역의 경기장과 유원지에서 체육경기와 예술 공연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국가의 ‘미(未)공급’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평양 이외의 지역에서는 기념행사마저 자취를 감췄다.


한때 ‘혁명의 동력’으로 추앙받던 노동계급의 최대 명절이 만성적 경제난으로 버림받은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 따르면 5·1절은 ‘말로만 명절’이 된지 오래다. 주민들은 “배급도 안주는데 명절이면 뭐하고 휴식하면 뭐하냐”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국가의 지원이 있을 때엔 각 기업소·공장에서도 체육대회 등을 자체 조직하고, 분위기를 띄웠지만 ‘자력갱생’이 강조되면서 5·1절 행사가 부담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쥐꼬리만 한 임금을 주는 노동자들에게 행사 비용을 걷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동자들 역시 태양절(4월 15일) 등 각종 국가 행사에 동원돼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다 당장 먹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판국에 5·1절을 기념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5·1절이면 뭐하냐. 먹을 게 없고 직장에 출근해도 할 일도 없는데 즐거울 일이 없다”면서 “이전(고난의 행군 전)에는 자체로 직장에서 체육대회도 조직하고 상품도 주고 했는데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2006년 탈북한 최승엽 씨도 “1990년대 초반만 해도 5·1절을 성대히 했다. 경기장에 모여 춤도 추고 체육대회도 하고 즐겼다. 그날은 온 가족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게 없으니 명절이 즐거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탈북자 이동휘(2009년 입국) 씨는 “우리에게는 국가가 정한 명절은 의미가 없었다. 잘 먹는 날이 명절일 뿐이다. 직장에서 지배인(사장)이 5·1절 체육경기를 조직했는데 몇 사람만 나와 경기가 취소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노동자 명절은 달력에 표기만 되었을 뿐이다. 1년에 빨간 날(주말, 명절)은 우리끼리 정하는 셈이다. 명절 아닌 때도 밥상에 고기가 있으면 아이들은 ‘오늘이 무슨 명절 입니까’라고 묻는다”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여전히 5·1절 행사를 대규모로 경축하고 있다고 각종 대내외 매체를 통해 보도하고 있다.


평양에선 주민들이 한복을 입고 ‘5·1절 경축 무도회’에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전파되고, 노동신문은 매해 사설을 통해 ‘혁명적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추켜세우고 김정일과 그의 측근들이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상세히 보도한다.


2000년대부터는 한국의 노동계급 투쟁을 선동하는 데에 5·1절 행사를 이용하고 있다. 2001년에는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이하 직맹)에서 우리의 한국·민주노총 관계자를 대규모로 초청, 금강산에서 함께 기념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 행사는 2007년 창원대회로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민주노총은 노동절에 즈음해 북한의 직맹과 남북노동자 통일대회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대외용 ‘보여주기’ 행사에 양대 노총이 부화뇌동하고 있는 셈이다.


‘메이데이'(5·1절)는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요구한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고 5월 1일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로 1889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인터네셔널(국제노동자협회)에서 결정됐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과 노동조합 등의 제도적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이 바로 북한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을 가진 나라인 북한에서 5·1절마다 노동자의 권리를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 코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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