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정권재창출 원하면 ‘DJ 정치적 목’을 베라

북한의 핵실험으로 동북 아시아 정세와 이에 영향받는 남북관계는 국면이 완전히 바뀌었다. 유엔 안보리 결의내용이 실행될수록 북한문제를 둘러싼 힘의 추는 더욱 미-중으로 옳겨가게 된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미-중이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더욱 확실한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뜻이다. 안보리 결의의 대상은 북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표적이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김정일 정권’을 겨냥한 것이다.

안보리 결의 1718호는 북한에 대한 군사제재를 제외하고 경제-외교적으로 할 수 있는 제재를 거의 다 담았다. 핵이나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뿐 아니라 모든 무기관련 물품과 금융자산-무역 제재, 심지어 사치품 이전까지 막았다. 사치품 이전을 막은 것은 ‘선물정치’를 펴는 김정일과 그의 곁에서 특권을 누리는 측근들을 분리해버리자는 계산까지 담겨 있다. 미국은 김정일의 권력내부 시스템까지 꿰뚫고 결의안을 제출했던 것이다.

즉 이번 안보리 결의는 체제교체(Regime Change)든 체제변형(Regime Transformatin)이든, ‘김정일 정권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 대북제재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이 찬성했다. 중국은 무력제재가 가능한 유엔헌장 42조만 제외해준다면 나머지는 모두 받겠다는 뜻을, 미-일의 요구를 수락하는 형태로 찬성한 것이다.

현재 대북 식량, 에너지 지원 등 경제적 영향력의 비중은 중국이 70%, 한국이 20%, 나머지가 10% 정도다. 중국이 압도적이다. ‘사치품 이전금지’까지 생각한 미국이 이같은 사실을 간과할 리 없다. 즉 미국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통해 김정일 정권을 다루겠다는 전략을 분명히 했고, 유엔결의 형식을 빌어 이번에 국제사회에서 공식화 해준 것이다.

또 미국은 ‘제재위원회’를 두어 중국이 유엔결의를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감시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중국에 대한 지렛대를 좀더 높인 것이다. 만약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 경고와 대만문제에 대해 중국에 비협조적으로 나갈 수 있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로는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보리 결의, 中의 김정일 정권 다루기 ‘국제면허’

이렇게 볼 때 김정일 정권의 운명문제와 관련하여 그 해결의 주역이 더욱 미-중으로 압축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9일 북한이 핵실험 하던 날 노무현 대통령은 ‘포용정책을 더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고 했다가 사흘만에 ‘포용정책 지속’으로 유턴했다. 그러면서 안보리 결의안 채택과정에서 미-일보다 중-러 편에 섰다. 한국은 북한문제를 둘러싼 힘의 관계가 마치 미-일 對 중-러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중국 편에 서면 형식적이나마 ‘동북아 균형자’처럼 행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물론 대북 군사제재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한-중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그러나 지금 북한을 둘러싼 흐름의 본류는 그게 아니다.

동북아에서 전통적인 중-러-북의 ‘북방 3각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 남은 것은 김정일 정권의 운명문제를 둘러싼 미-중의 이해관계뿐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김정일 정권의 향방이 미-중간에 더욱 명백해진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노정권이 이같은 사태를 전혀 객관적으로 관찰하지 못하고 국내 정치관계와 연관지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이 사태가 내년 대통령 선거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DJ는 곧바로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DJ의 발언이 나오자 노정부는 일제히 ‘포용정책 지속’과 ‘미국 책임론’을 거들며 DJ를 따라갔다. DJ는 ‘노정권이 내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햇볕정책 성공-미국 책임론’을 선동하면서 ‘내 말을 들으면 산다’며, 정치적 하수(下手)인 노정권에 ‘한 수’ 가르쳐 주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DJ는 햇볕정책 실패의 기정 사실화를 막고, 자신이 ‘역사의 죄인’이 되는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발빠르게 노정권을 ‘정치적 인질’로 붙잡은 것이다. 또 북한 핵실험이 가져올 국제관계의 급변사태와 그것이 남한 정치판에 미칠 영향을 노회한 DJ가 먼저 보고 핵실험이 나오자마자 ‘미국 책임론’이라는 정치선전 용어를 선점하고 노정권에게 ‘우리 같이 살자’고 제의한 것이다.

노정권은 어차피 DJ와 정치적 운명공동체인 만큼 살길이 DJ와 합세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정권이 DJ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면 할수록 DJ와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죽는’ 길로 가게 된다. DJ는 지금 노정권을 인질로 붙잡고 물귀신 작전을 벌이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친김정일 포용정책, 중국도 환영 안해

북한의 핵실험으로 중국의 ‘한반도 관리’에 엄청난 허점이 생겼다. 특히 중국은 동북지방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지역의 안정적 관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중국은 그동안 동북지방의 안정적 발전 및 ‘한반도의 안정과 현 상태 유지’가 대북정책의 골간이었다. 그런데 핵실험으로 이 정책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중국은 ‘핵을 가진 새 이웃’이 발생했고, 이에 따라 일본과 대만이 잠재적 핵 추구국으로 등장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설사 일본의 비핵원칙을 믿어준다 해도 핵 보유국으로 가는 것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중국은 일본과 대만의 핵문제가 ‘현실적 고민’으로 다가온 것이다. 게다가 양국은 중국의 잠정적 적대국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동북아에 자칫하면 핵을 가진 나라들로 새롭게 둘러싸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인도, 파키스탄 등 서쪽이 핵보유국이었다. 만약 동쪽 지역마저 핵 도미노가 일어나면, 이는 중국의 근본 이해관계를 흔들 수 있는 장기판이 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동북지방에 ‘급변사태’가 터진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미국에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핵문제가 도미노가 되는 사태를 앞장서서 막아야 할 처지에서 미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고 또 미국과 협조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 됐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는 이같은 장기판에서 미국이 중국에게 김정일 정권 문제 해결에서 ‘맹활약’하라는 일종의 면허증을 준 것이고, 따라서 이제부터 중국은 북한문제 해결에서 한국의 입장보다 미국의 입장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하게 됐다.

이 말은 미-중 양국으로부터 동시에 한국 왕따현상이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동북아시아에서 북한의 핵실험 사태와 이후 전개될 양상을 냉철하게 보지 못하는 나라는 노무현 정부밖에 없다.

유엔 안보리 결의 국내정치에 영향

중국은 핵실험을 한 북한에 ‘징계’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징계의 수위가 고민일 뿐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DJ의 선동에 맞장구 치며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건 말건 포용정책을 계속하겠다는 태세다.

이같은 노무현 정권의 행보를 중국은 과연 어떻게 해석할까? 노정권의 그러한 행보가 중국의 국익에 맞는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욱이 DJ-노무현의 합작으로 내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남북정상회담 이벤트라도 벌인다면 중국은 ‘핵을 가진 수상한 민족공조’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남한의 내년 대통령 선거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미국은 DJ를 의심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에 유입된 DJ의 비자금을 수사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외부로 나가는 달러보다 국내로 유입된 달러를 더 추적하고 있다. 수상한 돈은 일단 테러와의 연계 가능성부터 의심하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역시 김정일 정권과 북핵문제에 좀더 투명한 입장을 가진 후보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당선되기를 바랄 것이다. ‘핵을 가진 민족공조’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는 후보에 호감을 가질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운명문제가 한반도 차원을 떠나 동북아시아화, 국제문제화 함으로써 내년 남한의 대통령 선거에 대한 주변국의 관심도 더 높아질 것이다. 어떤 후보든 미 중 일 러가 호감을 갖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유리할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 정세는 그만큼 사정이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친김정일 성향 후보’라는 이미지를 주는 사람은 적어도 이익보다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 현재 남한 내에서 국제적으로 ‘친김정일적’으로 알려진 인물은 단연 DJ다. 따라서 DJ와 거리를 두는 후보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차기 대선에서 호남표가 중요하다면 DJ에게 구걸할 게 아니라, 좋은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호남에서 정직하게 심판받으면 된다. 노정권이 진정으로 차기정권 재창출을 원하다면 DJ의 ‘정치적 목’부터 베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가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유태림/ 객원칼럼니스트(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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