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민주화, 공산반군과의 협상이 최대 고비

▲ 갸넨드라 국왕 ⓒ로이터

네팔 국민들이 국왕의 독재에 맞서 마침내 민주화를 쟁취했다. 갸넨드라 국왕은 해산된 의회를 다시 소집하며 7개 야당연합에 국정운영 책임을 맡을 것을 요청한다는 대국민 연설을 발표했다.

그동안 네팔 국민들은 왕의 퇴진과 왕정 폐지를 주장하며 민주화 시위를 거세게 전개했다. 지난 4월에는 6일부터 20일 동안 장기 총파업이 이어졌다. 이러한 네팔 국민들의 민주화 항전에 국왕은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국민들의 저항을 이끈 7개 야당연합은 2002년 국왕이 일방적으로 해산한 의회의 복원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야당연합은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의 실시, 임시정부 구성, 공산 반군과의 대화 등을 주된 요구 사항으로 내걸었다. 야당 연합은 이번 기회에 제헌의회를 구성하여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헌법을 개정하고자 했다. 국왕의 승복을 받아낸 야당연합은 지난 30일, 4년만에 의회를 열고 새 헌법 개정을 위한 제헌의회 선거 실시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네팔에서 국민과 국왕과의 대치는 약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네팔은 왕의 힘이 아주 강한 나라다. 마치 봉건왕조국가처럼 국왕의 직접통치가 가능한 정치 체제였다. 네팔에서 복수정당제가 허용된 것도 1990년에 이르러서였다.

최근 네팔의 정치 지형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우선, 국왕과 의회 사이의 권력 다툼이다. 1990년 복수정당제가 허용된 이래 의회 세력은 꾸준히 민주화를 요구해 왔으나 정부해산권을 가진 국왕은 총리를 13번이나 교체하면서 의회와 대치했다.

두 번째 정치 지형은 1996년부터 등장한 모택동주의 공산 반군과 정부군과의 내전이다. 공산 반군은 급속도로 세를 불렸으며 현재는 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군은 모택동식의 농민혁명 노선을 취하여 봉건왕조의 폐지를 주장했다. 반군은 꾸준히 군대를 키워 약 1만 5천명의 병력 규모를 가지게 되었다.

대치 국면이 더욱 심화된 것은 갸넨드라 국왕이 즉위한 2001년 이후이다. 국왕은 무엇보다 반군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반군 소탕은 쉽지 않았다. 주로 험준한 산악 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어 작전이 어려웠으며 특히 산악 지역의 농민들은 반군의 편이었던 것이다. 반군 소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교전이 있을 때마다 수천명에서 수백명이 사망하는 등 희생자만 늘어 갔다.

한편 2002년 공산 반군과의 내전에 따른 국가 비상사태의 연장이 집권 여당의 거부로 실패하자 갸넨드라 국왕은 의회를 해산하는 강경 조치를 취했다. 이에 의회는 거리에서 국민과 함께 국왕에 저항하는 민주화 시위를 전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민주화 쟁취로 네팔은 의회의 복원과 함께 새 총리에 의한 새로운 정치 일정을 맞게 되었다.

일단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오던 국왕이 무릎을 꿇고 왕정 세력이 약화된 것은 네팔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7개 야당연합이 공산 반군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7개 야당연합은 공산 반군과의 합의로 네팔 전역에서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실시한다는 구상이다.

비록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7개 야당연합과 행보를 같이 해온 반군측이 향후 정치 일정에서도 순조롭게 협력해올지는 미지수다. 현재 공산 반군은 왕정의 완전 폐지를 주장하며 7개 야당연합에의 권력 이양을 골자로 한 왕의 시국 발표조차 ‘왕권 수호를 위한 음모’ 정도로 폄하하고 있다. 한편 일부 국민들도 야당연합을 비판하며 왕의 퇴진과 공화정 쟁취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