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썬’ (neo-Sun)의 등장과 이명박 정부 대북전략

게이츠 미 국방부장관이 북한의 대포동2호 탄도미사일을 요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한국의 몇몇 보수언론이 당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3월 31일 사설 “오바마 정권의 대북(對北)정책이 정말 있긴 있는가”에서 미국이 북한의 도발 앞에서 별안간 꼬리를 내리는 듯한 태도가 “한반도의 남·북쪽과 모든 국제사회에 ‘미국도 별수 없다’는 인식을 퍼뜨리게 될 것이고, 근본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에 관한 의문과 혼란을 확산시키게 될 것”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는 “미국만 쳐다볼 뿐, 현실적으로 사용할 지렛대라고는 전혀 없는”의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표류하는 것을 매우 착잡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은 이번 사태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행위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사일 요격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능력과 나아가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 대응을 반대한다는 것”을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결정이다. 한국 국민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미국이 요격으로 대응할 것을 바란다는 점은 충분히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군사적 대응이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을 가져올 수는 없다. 이 점은 이미 몇 주 전의 필자의 칼럼에서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미국의 오바마정부의 대북정책이 무엇인지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보즈워스 대북특사와 클린턴 국무장관의 지금까지의 입장표명을 볼 때, 미국이 대북협상으로 가고자함은 분명하다. 특히 보즈워스의 김정일 면담희망이나 북핵이 결국 “거래(deal)”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발언들을 볼 때, 오바마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싫더라도 협상 이외에 다른 수단이 있느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핵해결을 위해 6자회담과 같은 협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문제는 “네오썬(neo-sun)”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미국의 ‘친북 햇볕주의자’들의 행태이다. 셀리그 해리슨, 레온 시걸, 도널드 그레그, 브루스 커밍스 등이 바로 네오썬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오바마 정부의 출범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도가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정권이 거부할 수 없는 당근을 제시해서 시험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휴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 미북수교, 경수로 2기, 막대한 경제원조 및 금융지원 등과 함께, 심지어 이들은 6.15와 10.4 선언의 이행까지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2. 북한은 핵을 미국과 한국의 위협이 완전히 제거된 후에나 포기할 것이다.

3. 설사 북한에 막대한 반대급부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핵을 포기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설사 그렇더라도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

4.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시정부의 네오콘들은 북한과의 협상보다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기를 더 바랬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02년 10월 우라늄 농축문제로 제2의 북핵위기가 시작된 후에도, 네오콘은 북한의 핵을 제거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즉 네오콘의 문제는 그들의 이상이 아무리 옳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할지에 대하여 전혀 방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부시는 네오콘의 대북협상 무용론과 미 국무부의 협상주의 사이에서 어떠한 결단도 내리지 않았고, 이 사이에 북한은 플루토늄 추출과 함께 핵실험을 할 수 있었다.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이 네오콘의 실행수단 없는 이념 때문에 실패하였다고 비판하며 출범한 오바마 정부에 미국판 친북햇볕주의자들인 네오썬이 몰려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 미사일 발사가 곧 6자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DJ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나아가 김정일이 저렇게 마음 놓고 위성을 빙자한 미사일 장난을 할 수 있는 것도 실은 “협상밖에 나는 몰라~”라는 노래를 부르는 네오썬과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대책 없음’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부시정부 임기 중에 핵무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네오콘의 경직된 이념중심 대북정책 때문이 아니다. 네오썬의 햇볕정책도 결코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지 못하리라는 점을 우리는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다. 미국의 네오썬도 이 점을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들은 북한의 핵포기에 미국과 한국의 존재하지 않는 ‘대북위협정책’의 전환을 전제로 할 뿐더러,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김대중식 햇볕주의자 임동원의 “미리 주고 나중 받기”와 다른 표현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미국과 한국의 불충분한 대북정책전환과 부족한 대북지원에서 이유를 찾기 위한 핑계임은 명백하다. 한마디로 네오썬은 그들의 주장이 실패하였다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를 이미 자신들의 주장 속에 집어 넣은 것이다. 물론 이런 잔꾀를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보아 왔다.

사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네오콘보다 네오썬의 실패가 더 끔찍하다.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은 적어도 2007년 이전에는 북한이 스스로 붕괴되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특별히 없었다. 따라서 채찍도 당근도 개입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북한에게도 이 기간은 핵개발 이외에는 잃어버린 세월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네오썬은 아주 막대한 당근 제공을 통한 개입정책으로 이들의 대북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살찐 북한정권이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고 있다는, 한국으로서는 악몽 같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물론 네오썬의 대북전략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은 이제 이 컬럼에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북핵폐기 실패의 원인은 한·미·일이 중국을 북한으로부터 떼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 북한을 계속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잘 알려졌지만, 실은 생각만큼 김정일정권의 존속이 중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북한정권 붕괴시 쏟아지는 북한 난민을 중국정부가 두려워한다는 주장은 그냥 되풀이될 뿐이지 사실 설득력이 없다. 탈북난민문제는 한시적이며, 한국정부가 충분히 협조하여 해결할 수 있다. 핵심은 북한정권의 존속이 중국에 주는 이익과 북한정권이 동북아에서 일으키는 문제거리와의 비교에서 중국은 후자를 눈감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은 미국과 한국이 북핵이라는 썩은 이빨 문제로 고통 받고 출혈하는 것이 아마도 그렇게 싫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를 위성이라 내세우면서 중국의 입장을 배려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한국이나 미국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3국은 당연히 유엔안보리에 북한의 미사일도발을 의제로 올려야 한다. 중국의 입장이 틀린 것이지 우리들의 입장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요한 점은 한·미·일 3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중국이 북한에 갖고 있는 ‘특수한 지렛대’를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북한에 가하는 경제 및 군사제제에 중국도 다만 일원으로 참여하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책임 있는 국가가 취해야 할 행동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지금부터다. 우선 미국과 한국과 일본은 6자회담을 북한이 먼저 제의하도록 기다리면서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만일 보즈워스나 클린턴이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에 먼저 협상을 구걸하면 미국은 앞으로 어떤 성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 한시가 급한 것은 북한이다. 이들은 북핵포기라는 신기루를 미국 앞에서 흔들면서 그 반대급부를 뜯어먹는 일을 빨리, 그리고 대규모로 실행해야 2012년 강성대국의 문패, 아니 그 그림자라도 북한 인민에게 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뇌졸중으로 죽다 살아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가 더 실감하겠는가?

북한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는 것, 이러한 전략도 오바마정부와 네오썬들이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럴 경우 북한정권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차 핵실험과 같은 것, 핵연료 재처리의 재개 등.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김정일 정권의 핵개발이라는 종기는 곪아터져야 국제사회가, 특히 중국이 움직일 것이다.

여기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책 없는 큰소리나 희망보다는 낮은 목소리, 그러나 분명한 행동 쪽으로 옮겨져야 한다. 북한이 천방지축으로 발광할 때, 한국은 PSI에 전면 참여해야 하며 한국과 미국은 북한인권 강조와 대북방송강화, 탈북난민보호 등에 지금보다 훨씬 더 집중해야 한다.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날뛸 경우, 그 끝은 반드시 국제사회의 공조에 의한 북한정권의 붕괴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또 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핵해결에 대해서 특별한 묘안을 갖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어쩌면 미국의 국운을 건 관심까지는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북한과의 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니 일단 그런 방향으로 가보자는 정도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의 국익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네오썬의 대북정책보다는, 이명박 정부의 조언을 얻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한국에게 북한의 핵은 국운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에 북핵폐기를 위한 미국의 대북정책을 결합, 내지는 포함시키는 것이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군사행동 반대’와 미국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미사일요격 배제의 발언’이 서로 간의 긴밀한 논의 끝에 나왔다고 믿는다. 특히 이 대통령이 영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은 네오썬의 활발한 움직임을 볼 때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 런던에서 이명박-오바마 정상회담이 한 차원 높은 한미 대북정책공조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부시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실패했다. 2002년 10월 미국정부는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며 북한에 중유제공을 중단하면서 이른바 제2차 한반도 핵위기가 시작됐다. 부시정부가 끝날 무렵의 대차대조표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 문제의 발단이었던 우라늄 농축문제는 이제 언급조차 없고, 오바마정부는 과연 우라늄문제가 정말로 존재했는지조차도 의심하고 있다. 그 사이에 북한은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은 물론, 핵실험까지 하였지만, 북핵폐기과정은 검증문제로 중단상태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