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흴 두고온 아비·어미를 용서해다오”

“정옥입니다. 정실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너희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긴 아비를 용서하길 바란다. 너희 어머니는 너희 생일만 되면 하루종일 너희 얘기만 한단다.”

“정신없이 너희 아버지만 쫓아 나왔어. 남쪽에 와서 어린 애들만 보면 마음이 아파서 어쩔 줄을 몰랐어. 너희들 미워서 두고 온 게 아니야.”

전쟁 당시 `젊은 사람들은 먼저 내려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맏딸과 둘째딸을 부모님께 맡기고 당시 1살짜리 막내딸만 업고 남쪽으로 온 박동혁(93)씨와 권보현(84)씨 부부와 북쪽에 남겨진 두 딸 정옥(63), 정실(61)씨는 56년만에 이렇게 만났다.

두 딸을 북쪽에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과 두 딸의 안부에 대한 걱정으로 지난 세월을 눈물과 한으로 살아온 박씨 부부.

헤어질 때 7살, 5살이었지만 이제 환갑이 넘은 정옥씨와 정실씨를 이날 다시 만나게 된 박씨 부부는 화면에 나타난 두 딸의 모습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특히 두 딸을 만나게 됐다는 얘길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 권씨는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주 금요일에야 퇴원, 기력을 잃은 상태에서 두 딸을 보게 되자 너무 가슴이 떨리는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정옥씨와 정실씨 쪽이었다.

역시 울먹이던 정옥씨와 정실씨가 손수건으로 잇따라 눈물을 훔치며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자 울먹이는 박씨 부부 대신 남쪽에서 낳은 두 딸 정선(53), 정남(52)씨와 아들 인수(45)씨가 울먹이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언니들 말씀 놓으세요. 우리 언니들 동생이예요. `정선아, 정남아’ 이름 부르세요. 엄마가 언니들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단 한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늘 우리 곁에 함께 있는 것 같았아요.”

정선씨가 대표로 말했고 정남씨는 “어머니, 아버지는 언니들한테 사랑을 못준게 안타까워 우리들한테 더욱 극진한 사랑을 쏟았어요. 언니들이 그 마음을 이해해 주셔야 돼요”라고 전했다.

양쪽의 흥분이 다소 진정되자 아버지 박씨는 북쪽에 두고온 부모와 형제에 대해 물었다. 정옥씨와 정실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지난 80년대에 돌아가셨다고 전한 뒤 부모없이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해 얘기했다.

두 딸이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는 얘기에 그제야 박씨 부부는 얼굴이 밝아진다. 남쪽 딸들 역시 좋은 사람과 결혼해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잘 살고 있다는 얘기를 전했고 서로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이들 가족은 마침내 하나가 돼 가슴을 쓸어내리며 2시간 내내 정담을 나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음꽃을 피우는 가운데 2시간은 금방 흘렀고 “얼른 통일이 돼서 우리 딸이 일하는 평양 옥류관에서 우리 다같이 냉면 먹자. 아직 결혼 안한 막내 동생 인수 결혼식을 평양에서 꼭 올리자. 어머니, 아버지 건강 지키시라”는 북쪽 딸들의 당부와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다짐이 수차례 오간 뒤 정씨 가족은 어쩔수 없이 또 작별해야 했다.

2시간동안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어머니 권씨는 상봉장 문을 닫고 나와서야 복받친 눈물을 쏟아내며 통곡하기 시작해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