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에서 `평화’의 국제제관광도시로

올해로 개항 100년을 맞은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가 19일부터 사흘 간 ‘압록강 국제관광절 행사’를 개최하며 ‘냉전의 흔적’을 평화의 이미지와 중첩, 국제관광도시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와는 인연을 뗄 수 없는 단둥시의 원래 지명은 안둥(安東)으로 1962년 북중 변계조약 체결에 즈음해 오늘날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압록강 하구의 작은 어촌이었던 단둥은 1882년 청(淸) 정부에 의해 잉커우(營口), 다롄(大連)에 이어 랴오닝 지역에서는 세번째로 개항됐다.

한반도와 만주가 철도로 연결된 직후인 1906년 무역항으로 다시 개항했다.

역사적으로 단둥 인근 지역은 조선시대 연행사들이 베이징(北京)을 방문할 때 반드시 거쳐가는 길목 중의 하나였으며, 불과 강 하나를 두고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접경도시이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 중국의 인민지원군은 단둥에 집결해있다 압록강을 건너 전쟁에 뛰어들었다.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절반이 잘린 압록강단교(斷橋)는 아직까지 전쟁의 상흔을 일깨워주는 단둥의 대표적 상징물로 남아 있다.

이런 냉전의 상처는 역설적으로 단둥시 주변에 소재한 고구려 유적과 수풍댐 등 다른 관광자원과 어우러져 단둥을 한국인에게 친숙한 관광도시로 만드는 데 톡톡한 한 몫을 담당했다.

매해 여름철이면 단둥 시내는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며, 관광객들도 아직까지는 한국인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일본과 러시아 등으로 서서히 다양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지난해 11월초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5차 6자회담에 참석한 뒤 짬을 내 단둥을 방문해 압록강철교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2004년 4월 북한의 룡천역 폭발사고는 단둥을 일약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도시로 만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열차가 통과하는 도시로 김 위원장의 방중설이 불거질 때마다 세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기도 한다.

특히 단둥은 북한의 대외교역 창구로 북중 교역량의 80% 가량이 단둥을 통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단둥해관(세관) 부근은 늘 양국을 오가는 인원과 물자로 항상 붐비고 있다.

현재 단둥에서는 1천명이 넘는 북한의 무역일꾼과 근로자 등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측면에서 단둥은 북한의 경제를 지탱하는 생명줄인 동시에 북한에는 자본주의 경제를 배우는 교실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단둥시는 올해 국제관광절 행사를 통해 냉전의 흔적을 생생하게 간직한 도시로서 평화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해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단둥시 고위간부들이 압록강단교 부근에 ’爲了和平(평화를 위하여)’라는 글귀를 새긴 기념비를 세운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단둥=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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