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익도 되고 상대 목표도 달성”

워싱턴 포스트가 21일(현지시간)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로 이번 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이례적으로 크게 소개한 기사에서 인용한 힐 차관보의 말이다.

힐 차관보는 외교 협상가로서 터득한 이같은 ‘진리’에 따라 협상 때마다 상대에 대한 가치판단은 최대한 배제하고 상대의 목표가 뭔지 분석, “내 이익에도 부합하게 상대의 목표를 달성토록 해주는” 방안을 찾는다고 자신의 협상술을 설명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힐 차관보의 협상가 면모를 보여주는 여러 일화를 소개하는 가운데, 부시 행정부내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등에 걸친 대북 강ㆍ온파간 대립과 갈등에 대해 힐 차관보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최선의 외교는 국내에서 시작돼야 한다. 직업 외교관으로서 이 문제(국내 갈등)를 다루지 못한다면, 내가 외국인들과 뭘 하겠는가”라고 국내 갈등 관리에 자신감을 나타냈다는 것.

주한대사 8개월만에 동아태 차관보로 승진 전보된 힐 차관보는 오랫동안 원했던 주한대사 자리를 떠나기 싫었지만, 중국과 일본을 포함해 태평양지역 모든 나라를 담당하는 동아태 차관보를 맡으라는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의 제의는 “정말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힐 차관보가 짧은 기간 주한대사로 활동했지만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가 안치된 광주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대학교를 비롯해 ‘반미주의의 온상’들을 자주 방문하고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접촉하는 등의 활동으로 “한국민을 매료했다”고 힐 차관보의 활동을 소개했다.

태미 오버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부회장은 “내가 한국에 있는 지난 18년간 거쳐간 미국 대사 6명 가운데 힐 차관보가 가장 짧은 임기였지만 가장 큰 족적을 남겼다”며 “그는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도전하는 자세였다”고 평했다.

폴란드 대사로 있을 때 당시 주폴란드 한국 대사였고 현 6자회담 한국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와 인연 덕분에, 두 사람은 라이스 장관에게 자신들 두사람이 6자회담에서 “바르샤바 조약”을 맺은 관계라고 농담하기도 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송 차관보는 이 신문과 전화통화에서 힐 차관보에 대해 “그냥 관리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일을 만들려는 사람”이라며 “우리 두 사람은 역사의 마당에서 무위도식하지 말고 역사를 만들자고 결의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외교관이 되기 전 21세에 평화봉사단원으로서 카메룬에서 활동할 때 수십 개 촌락과 농장의 신용조합 회계장부를 감사하면서 한 조합의 임원들이 조합 돈 60%를 착복한 것을 발견, 마을 주민 회의에서 정열적인 연설을 통해 이를 규탄하고 큰 박수와 감사 표시를 받았으나 문제의 임원들이 그대로 선출되는 것을 보고 깨달은 것을 그 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늘 잊지 않는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임원진은 그 부족 전체의 이해관계의 합성물이었으며, 따라서 그 구성엔 신용조합 운영의 잘잘못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는 것.

힐 차관보는 이로부터 “어떤 일에든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되, 내가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리처드 홀브루크 전 유엔 대사는 보스니아 전쟁을 끝낸 데이턴 평화협정 체결 때 함께 일한 힐 차관보에 대해 “매우 냉정하면서도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라며 상반된 두 면의 독특한 겸비가 힐 차관보의 협상술의 진수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기자들과 접촉할 때 익명 뒤에 숨는 다른 많은 정부 관리들과 달리 실명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등 언론과 관계에도 익숙하다고 신문은 평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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