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이 굶주리면…” 권용찬총장

“북한에 아무 관심 없었어요. 처음엔 아프리카에서처럼 굶주린 사람 돕는다는 생각으로 평양에 갔죠. 막상 만나보니까 그곳 사람들이 나랑 같은 말을 쓰는 거에요. 생김새도 우리 삼촌이랑 비슷하고. 아프리카와는 다른 느낌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국제구호 단체인 기아대책 한국법인에서 5년째 대북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권용찬(39) 사무총장은 한달에 평균 일주일은 북한이나 중국에 머문다.

그는 1996년 기아대책에 들어가 모잠비크를 비롯한 아프리카와 캄보디아, 미얀마 등을 돌며 재해 지역이나 난민촌에서 긴급 구호와 식량 지원을 해온 ‘베테랑’ 활동가.

하지만 입사 8년만인 2003년 5월 대북협력팀으로 발령받기 전까지 북한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는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기업체에서 2년간 일하다 ‘사회봉사는 젊을 때 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아대책에 들어왔다”면서 “원하던 일을 하고 월급도 받아 만족하면서 일해왔는데 인사 형편에 따라 북한 업무를 맡게 돼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굶주린 사람을 돕는 일에 큰 차이가 있을까” 하던 생각이 깨진 것은 2002년 8월 처음 평양을 방문하면서부터.

그는 “아프리카에 갈 때와 비슷하다고 예상하고 처음 평양에 갔는데 그곳 주민들이 나와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고 생김새도 나와 비슷해 스스로 깜짝 놀랐다”면서 “아프리카에서는 통역없이 시장을 다니기도 힘든데 평양에서는 ‘김치 주세요’라고 말하면 김치를 주더라”고 말했다.

“6.25 전쟁을 겪지도 않고 이산가족도 아닌 동시에 반공의식이 투철하지도 않은 ‘중립’이었지만 막상 북한 주민들을 만나보니 ‘같은 식구’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20여차례 북한을 방문하면서 만난 민화협과 조선의료협회 관계자, 농장 주민들도 이제는 “잘 지내다 왔느냐”고 먼저 안부를 물어오고, 공사 진행이 약속했던 일정보다 지연되면 “미안하다. 좀 늦었다”고 사과하기도 한다.

기아대책은 1994년 평양 제3병원에 의료기기를 지원하면서 대북 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에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씨감자와 밀가루, 의류와 의약품 등을 전달하는 구호 활동에 집중하다가 2003년부터 “근본적인 자립 기반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개발 지원 위주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권 사무총장은 이때 대북 사업에 뛰어들어 2003년 평양 정성수액약품공장 착공, 2004년 황해북도 봉산군 등의 지하수개발 및 함경북도 라진 빵공장 가동, 2006년 평양 락랑섬김병원 착공 등을 이끌어냈으며 지난 2월 세운 기아대책 산하 재단법인인 ‘섬김’의 사무총장으로 발탁되면서 이 단체의 대북 사업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그는 “현재까지 기아대책이 북한 사업에 지원한 돈은 전체 예산의 5%인 약 90억원”이라면서 “대북 사업을 강화하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북한 전담 조직으로 ‘섬김’을 세웠지만, 국내나 해외 사업과 달리 누군가를 돕고도 후원자로부터 항의를 받는 경우는 북한 사업이 유일하다”고 귀띔했다.

북한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지만 여름철 폭우로 수해가 나도 북한 사회의 폐쇄성과 남한내 여론 분열로 인해 오히려 가장 ‘먼 길’을 돌아야 구호 물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것.

권 사무총장은 “남한의 모든 사람이 북한에 대해 동포애나 민족애를 느껴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호소할 수는 없”지만 “방안에 홀로 남겨진 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이웃이 있다면 그 책임을 제일 먼저 지게 되는 것은 가장 가까이 사는 옆집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남북간 교류가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됨에도 7-8월 북한의 대규모 식량난을 막기 위해 기아대책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함북 빵공장의 하루 생산량을 5천개에서 8천개로 늘리겠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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