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흐르는 눈물의 강

저의 글은 대중들 앞에 내놓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 한 여인이 지나온 인생길의 한 부분에 불과할 뿐 교양가치도 없고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될 만한 내용도 없습니다. 그저 지난날 내 자신이 겪어 온 인생길을 다시 되새겨 보는 회상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야기를 통해 북조선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알려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부끄러운 글을 남조선 대중들 앞에 내놓습니다.

2005년 5월 장춘에서 리수희 씀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넌 후 삼 년 째 되던 해에 중국의 000이란 마을에서 살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너 어디가니?”
“나 북조선 사람 보러가!”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는 ‘북조선’이란 말에 흠칫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한참이나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앞선 여인들은 7~8명쯤 되었는데 손에 무엇인가 음식을 조금씩 싸들고 있었고 그 뒤에는 4~5명이 줄을 지어 갔습니다.

이곳은 중국땅입니다. 이곳의 조선족들은 북조선보다 특수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애착심과 동포애적 정신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날도 조선족 집에 잔치가 있어서 모였다가 북한 여자가 중국 사람에게 팔려와서 산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그집으로 찾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생활에 고생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여성은 임신한 몸에 결핵까지 걸렸다고 했습니다.

그 여성이 하는 말이 자신은 중국 돈 4천원(한화 약 80만원)에 팔려왔고 같이 탈북한 동무 셋은 처음에는 식당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으나, 한 여자는 중국 돈 8천원에 절름발이 남자에게 팔려가고 두 여자는 5천원씩 또 다른 남자의 집으로 팔려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북조선 사람’이라는 말만 들어도 불쌍하고 불쌍합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며 얼마나 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묵묵히 집까지 왔습니다. 가지가지 피눈물 나는 나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창문가로 먼 산을 바라보면서 좀처럼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씨는 지금 나라의 장군으로서 조금이라도 자기 백성들의 희생을 가슴 아파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곳의 평범한 여인들도 자기 민족이라며 북조선 사람들을 동정하는데, 과연 김정일씨가 조선의 역사에서 빚어 놓은 비극과 상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지금 북조선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는 천진난만한 어린애들입니다.

걸음마도 떼지 못하는 어린 것들이 “아버지 대원수님 어디 계셔요?” 하면서 기저귀를 차고 총총 걸음으로 고사리 같은 두손을 높이 들고 바람벽에 달아 놓은 김일성씨, 김정일씨 사진을 쳐다보는데, 그 어린 것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뼈에 가죽만 씌워놓은 모양으로 굶어 죽어갔습니다.

어린 것들이 ‘꽃제비’란 칭호를 받고 방랑생활을 하고 엄동설한에 옷도 변변히 못입고 맨발에 역전 대합실마다 여행객에게 얻어 먹기 위해서 줄을 섭니다. 행여나 떨어진 음식이라도 주워먹고 밥알이 한 알이라도 떨어지면 닭이 모이 쫒듯이 주워 먹습니다.

중국에 나오기 전에 마지막 기차를 탈 때 일이었습니다.

저는 역전 대합실에 웅크리고 있던 오누이를 불러 먹다 남은 떡 조각을 쥐어 줬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애들아, 아무쪼록 죽지 말고 살아서 먼 훗날에 이때의 고생을 이야기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오누이는 내말을 알아듣기나 했는지 연신 “고맙습니다”며 수 십 번도 더 허리를 구부렸습니다.

두만강을 건너와 고개를 들어 북조선 땅을 쳐다봤을 때, 내 가슴속에 두만강보다 더 큰 눈물의 강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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