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대북관= 김정일 눈높이 대북관…검증 철저해야

유시민의 입각 소동으로 정작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이 있다. 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하게 된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다.

그가 맡을 국정업무가 워낙 중대한 국가대사(國家大事)라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하는데 유시민 입각소동의 효과로 절반은 이를 날렸다. 노대통령이나 측근, 이종석이 미리 계산하고 장난친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경계 대상 1호 인물이 가장 쉽게 입각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라 망치는 일이야 유시민도 하고, 이종석도 하지만 이종석이 나라 망치는 일은 훨씬 심각하고 그 후유증이 크다. 유시민은 자기 입으로 떠벌리고 행동으로 잘 보여주지만 이종석은 국가를 넘나들며, 비밀정보를 가지고 수많은 은밀한 작업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대체로 대북사업, 외교로 위장되어 공개되는데 아주 뚜렷한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종류의 북한전문가인가 따져봐야

대북사업을 인기관리용 국내정치에 종속시키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이보다 더 위험한 일은 김정일의 존속을 위해 특수관계를 맺고, 김정일에 위협이 되는 국내외 정치세력, 법과 제도, 국민인식, 국제협정까지 다 바꾸려는 친북수구세력의 작태이다. 정동영이 앞의 경우라면 이종석이 뒤의 경우인데 이들이 필요에 의해 연합한 상황이다. 은밀한 장막 뒤에서 통일∙외교를 주무르던 이종석이 이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종석이 큰 일을 맡게 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분석이나 검증은 아주 미약하다.

흔히들 이종석을 가리켜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전문가 또는 대북통」이라고 한다. 언론이 앞장서서 그렇게 표현하고, 정부관계자들도 그렇게 말하곤 한다. 이종석 자신도 그렇게 불려지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이종석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있다면 필자는 이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이 전혀 없다. 상황은 이제 그가 학자가 아니라 고위급 정책행위자이기 때문에 어떤 대북관을 가진 북한전문가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북한전문가 이종석의 대북관은 아직도 ‘내재적 북한관’이다. 이종석의 대북, 통일외교정책의 키워드는 김정일이다. 김정일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긴장이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김정일에게 남한이 줄 선물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이종석의 핵심 대북전략이다.

서해교전 등 북방한계선 문제에 관해 이종석은 북방한계선 침범은 꽃게잡이를 위한 우발적 사건이므로 「남북공동어로구역설정」을 통해 해결하는 원칙을 제시한다. 결국 북방한계선 무력화를 위한 의도적 군사침범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우리 정부와 국군이 취해야 할 대응원칙도 무기력하게 만든다. 북핵문제가 남북관계를 넘어선 국제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주도성」과 민족공조의 원칙을 제시하여 동맹국가의 단일전략을 교란시키고, 북한이 장난칠 수 있는 외교적 전술을 넓혀주며, 남북정권이 공동의 운명을 맞는 내연관계의 상황을 만든다.

2001년 말 현대아산의 적자 누적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 사업이 어려움에 처하자 이종석은 정경분리의 원칙을 비판하며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제시하여 한국관광공사를 통한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한다. 대북사업의 위기가 닥쳐오면 정부가 정한 원칙을 깨더라도, 막대한 돈이 들더라도, 국민이 비판을 하든 말든 자신의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로 이종석이다.

이런 이종석을 누가 당해낼 수 있으랴. 상당수의 공직자, 통일∙외교 전문가들이 뒤늦게 이런 방식으로 대북카드를 만들어 노대통령에게 제시해 본들 이미 때는 늦었다. 이종석이 그동안 쌓아온 북한지식과 정보력을 통해 대북정책의 중심 아젠다를 이미 선점해 버렸고 김정일이 수용 가능한 대북정책의 눈높이로 방향을 이미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이를 가로챌 만한 사람이 현재는 없다. 노대통령도 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은 당분간 범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60대 외교∙안보 분야의 수장들을 이종석이 잘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종석의 업무 스타일이 매우 꼼꼼하고 철저하다는 점도 있지만 이종석이 설정한 대북∙외교의 방향과 아젠다를 뒤엎을 외교, 국방, 국정원 수장이 현재로선 없다. 더군다나 그 뒤에 고집으로 똘똘 뭉친 노대통령이 있는데 그 누가 이종석의 대북정책을 뒤집으랴. 김정일이 원하는 것에 맞춘 ‘김정일 눈높이식 대북정책’이 이종석의 대북관이라는 본질을 알아야 북한전문가 이종석을 바로 아는 것이다.

이종석의 행보 눈여겨 관찰해야

김정일이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하는 것은 북한전문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이다. 이종석의 문제는 이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북한을 잘 안다는 것은 김정일이 원하는 것과 더불어 김정일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리고 북한인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김정일은 핵, 마약과 무기판매, 위조지폐로 살아가는 범죄자다. 반면 북한인민들은 굶주림과 강제노역, 철저한 개인박탈 등 수령의 노예로 살고 있다. 이들은 자유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외부세계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김정일의 야만적인 인권탄압에 맞선 인권개선 활동을 비난하고, 북한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겠다며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요구를 외면하는 통일부장관은 우리 국민의 통일부장관이라 말할 자격이 없다.

복수의 북한학자들과 통일부 종사자에 의하면 남한의 관료와 북한의 관료가 만나서 협상을 하면 거의 북한의 관료가 이긴다고 한다. 왜 그럴까. 김정일의 지시에 철저히 응하는 북한 관료들은 자신들의 목표 달성을 위해 남한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때론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등 싸움에 능하지만 남한 관료들은 북한에 강력히 요구하지도 않고 또 저들의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김정일이 호통치고 북한이 협상을 깨고 돌아서면 정부 안팎의 좌파세력에 의해 수구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이종석이 통일∙외교∙안보의 수장을 맡는다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고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통일부장관 내정자에게 비판만 할 수 없어 이종석에게 한가지 제안을 드린다. 이종석은 장관에 오르기 전에 북한에 가장 정통하고 국제관계에 높은 식견을 가진 황장엽 선생을 찾아가 진심어린 조언을 청하기 바란다. 이것은 인권과 민주주의 정신을 회복하는 징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인민과 우리 민족을 위해 제대로 뭔가 해내리라는 긍정적 신호탄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人材가 될지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人災가 될지 이종석의 선택을 눈여겨 지켜봐야 한다.

허현준 논설위원

소셜공유